퇴사 9개월 차
퇴사를 준비하면서 퇴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접하려고 꽤 노력했었다. 책이든 인터뷰든 TV든. 여러 이유로 퇴사하고, 여러 방면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무척 다양했다. 퇴사하고 나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멋져 보였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을 먹으면 무언가 되는 경우가 반, 아무것도 안 되는 경우가 반.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안 되는 경우에 걸린 것 같다. 무지성의 결과로 이렇게 된 것뿐이라니, 조금은 슬프다.
그렇다. 퇴사를 한다고 해서 뿅 하고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게 튀어 오르는 것이 아니었다. 삶에 여유가 생기고 머릿속이 맑아지면, 무언가가 떠오를 줄 알았다. 하지만 퇴사 9개월 차인 지금, 내 앞은 여전히 흐릿하다. 즉, 나도 모르겠다. 흐르는 대로 흘러간다. 내가 제일 싫어하던 상황인데, 내가 자처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대답을 찾으려고 나름의 노력을 해봤다. 다양한 분야의 책도 읽어보고, 직업 인터뷰도 봤다. 코로나 때문에 직접 체험해본 것은 많진 않아서 그것은 좀 아쉽다. 그런데 모르겠다. 나는 뭘 하고 싶은 건지. 내 남은 인생, 일할 수 있는 나이 60세까지 남은 25년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 걸까? 발전 없이, 생각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게 정말 내가 원했던 것인가? 분명 아닐 텐데 말이다.
회사에 다시 출근하는 것을 상상해본다. 과거를 떠올릴 땐 좋은 기억만 남는다더니, 문득 그리움의 감정이 생겨났다. 회의에 참석하고 기획안을 만들고 예산을 집행하고 보고서를 쓰는 일련의 활동들. 그리고 매년 한 해의 평가를 받는 인사평가를 기다리는 마음까지. 아아, 그립다. 아마도 난 '회사원'이라는 직업을 좋아했던 건 아닐까.
나를 위한 작은 사업을 시작하는 것을 상상해본다. 초기엔 그 어떤 결과도 성과도 나지 않는, 지루한 레이스를 계속 달리겠지만 미미한 변화에도 기뻐할 내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더딘 발걸음을 견딜 수 있을 만큼의 동기를 줄 수 있는, 나만의 '것'은 무엇일까? 무엇을 해야, 나는 즐거울까.
전업투자자가 되는 모습도 상상해본다. 갖고 있는 건물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을 목표로. 조금씩 인맥을 넓히고, 안목을 갖추고, 다방면의 지식을 쌓아간다. 아이러니한 것은, 투자는 하면 할수록 그다지 여유가 생기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아마도 욕심이 점점 커져서겠지. 그래, 이건 어떨까. 임대업에 집중하는 삶. 직접 건물을 밸류업할 수 있는 내가 되는 것. 능력을 키워가는 것. 조금은 재미있게 들린다.
아직 답은 없다. 답을 내기가 두려운 것도 맞을 거다. 언제 답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삶이 계속될지도 모른다.
할 수 있겠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언지 알 수 있겠지?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