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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달 Nov 15. 2018

지력이 부족해도, 읽는 가치의 힘에 기대어


요즘 문장이 안 나간다. 오래도록 첫 문단을 완성하지 못해 끙끙대다 본문은 시간에 쫓겨 개판으로 쓰는 일이 잦다. 오랫동안 공부하며 준비해온 기획기사도 글이 도무지 나가지 않았다. 기사란 게 뭐 언제는 술술 써제껴졌느냐만은 요즘처럼 문장이 안 나간 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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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수습때부터 봐 온 선배가 오늘 내게 전화해 "문장이 어째 수습 때보다도 퇴화한 것 같다"고 했다. 안 그래도 그 생각을 하고 있던 차라 마음이 더 쿵, 했다. 변명이나 설명도 할 게 없는 일이라 그저 "네, 저도 그런 것 같습니다. 좀 더 다듬어놓겠습니다" 했다. 다시 고쳐놔야 할텐데 엄두가 나지 않아 뭉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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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안 써지는 건 우선 생각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다루고 있는 주제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글을 시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면 내가 문장을 끌고 가지 못하고 문장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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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까지 뻔히 아는데 개선이 안 된다. 생각하는 근육 자체가 약해진 것 같다. 무더기의 정보를 습득한 뒤 그 정보들에 파묻히지 않고 정리해서 흐름을 잡는 지적 능력도 현저히 떨어진 느낌이다. 적어도 문장을 벼리는 능력만큼은 꽤 존경했던 전 논설실장은 예전에 '지력이 약한' 내지 '지력이 떨어지는 자들'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그 '지력'이란 표현은 내가 생각하는 지적 능력과는 또 조금 다른 맥락이 있는데, 지력이란 단어가 워낙 강렬해서인지 나는 그 '지력이 약하다'는 표현을 자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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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에 울분이 쌓여서 그런지 도피는 '읽기'로 하게 된다. 업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문장을 많이 읽는다. 아, 그래서 더 기사문장이 안 나가나?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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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속초 문우당서림에 갔을 때 사장님이 주신 책갈피와 스티커 뭉치를 꺼냈다가 책갈피 밑에 써있는 {우리가 믿는 '읽는 가치'의 힘을 안다}란 문장에 눈길이 멎었다. 읽는 가치를 믿고, 그것의 힘을 안다는 것. 알 듯도 하고 어렴풋한 듯도 한데 이 문장 자체에 어떤 힘이 있는 건 확실하다. 그 힘을 아직 느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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