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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tabook Dec 14. 2022

Yesterday once more_캔모어

지나간 것은 또다시 그리움이 되리라

65세 고여사와의 북미 여행은 후반부로 접어들고 있었다. 에메랄드 레이크 다음 일정은 캔모어. 로키산맥의 중심 관광지 밴프와 가까운 마을이었다. 오늘부터는 고여사 외에 파티원이 +2가 되었다. 바로 대학원 친구 프랑수아와 그의 여자친구. 우리는 캔모어에 있는 한 브런치 가게에서 만났다.


"프랑수아! 이야, 우리가 캐나다에서 다시 만날 줄이야."


"그러니까 누가 알았겠어. 누나 그동안 잘 지냈어?"

(88년생 프랑수아는 나를 nuna라고 부른다)


"응 잘 지냈어. 안녕하세요, 저는 프랑수아랑 대학원 같이 다닌 친구예요."


프랑수아의 여자친구에게도 인사했다. 그녀는 한국인으로, 캐나다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캐나다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짧은 머리를 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프랑수아, 성공했구나. 이렇게 밝고 예쁜 여자친구라니.


프랑수아는 퀘벡 출신으로, 현재는 앨버타주 에드먼턴에 살고 있었다. 이 커플은 휴가 때마다 400km를 달려 이곳에 온다고 했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부산 거리라 멀긴 하지만, 같은 앨버타 주에 있으니 그리 멀게 생각하진 않는 듯했다.


주문한 브런치가 나왔다. 이것은 스케일이 다른 푸짐함이었다. 접시 하나에 계란후라이 4가 올라가다니. 내 표정을 보더니 프랑수아가 웃으며 말했다.  


"양 엄청 많지? 이 집이 맛도 있고 양도 많아."


역시 현지인이랑 다니면 진정한 로컬 맛집에 갈 수 있다.


마이쪄요.


"대학원 친구들이랑 연락하고 지내?"


내가 다닌 국제학대학원은 외국 학생 비율이 70%가 넘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 싱가포르는 물론 캐나다, 미국, 멕시코,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에서 온 많은 유학생들을 여기서 만났다.


"페이스북으로 가끔 안부 묻는 정도."


대학원을 졸업한 지도 벌써 5년이 되었다.


25살에 첫 회사에 취업한 후, 자유롭고 즐거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27살에 퇴사하고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다시 황금기가 왔다. 공부를 핑계로 학교 근처 하숙집에 살면서 처음으로 진정한 자유와 해방감을 느꼈다. 2년 넘게 직장인으로서 꿈도 재미도 없이 살다가 다시 살맛 나는 인생으로 돌입한 기분이었다.


대학교 때 원 없이 놀았다고 생각했지만, 대학원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놀았다. 친구들과 밴드 활동을 하고, 밤늦게까지 술 마시고, 외국인들의 단골 맛집에 같이 다니며 내 영역이 점점 더 넓어지는 것 같았다. 조금 더 자유롭고, 조금 더 가능성이 열려 있는 삶으로.  


대학원은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게 해준 동시에, 적성을 탐색할 수 있는 유예 기간을 주었다. 대학 졸업하면서 아무 회사에나 취업해서 얼마나 후회했던가.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와, 내가 평생 일해도 좋을 분야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대학원에 다니며 기자 시험을 준비하고, 페스티벌 기획사에 일자리를 알아보기도 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출판사에 취업해, 책 만드는 사람으로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했다. 대학원이 든든한 유예기간을 지원해준 덕분이다.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고 단순히 이직을 했다면, 나는 여전히 아무 회사에서 매일 불평하며 돈벌이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대학원 시기는 추억이 되었지만,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니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역시 사람은 예전의 좋았던 기억으로 사나 보다. 그래서 나이 드신 분들이 맨날 라떼, 라떼 하시나?(나도 슬슬 그 연배로 돌입 중)


"다 먹었으면 간단히 하이킹할래?"


프랑수아는 한국에 있을 때도 암벽등반 동호회에서 활동하며 주말마다 북한산을 찾던 열혈 클라이머였다.


"좋지!"


우리는 프랑수아를 따라나섰다. 우리가 향한 곳은 난이도가 쉬우면서도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그라시 레이크 트레일(Grassi Lakes Trail). 길 초입부터 눈이 쌓여 있었다. 우리가 캐나다에 도착한 날 내린 눈이 안 녹고 있는 것 같았다. 눈 쌓인 길이 너무 예뻤다. 이상기후야, 고마워.



우리는 풍경을 보며 천천히 걸었다. 경사가 높지는 않았지만 지금껏 갔던 곳들보다는 가팔랐다. 캐나다에서 우리가 가본 중 가장 경사진 길이었다. 드디어 우리나라의 산 같은 곳에 왔구나. 북한산 정도의 길이어서 힘들 정도는 아니라 기분 좋게 걸었다.


"엄마, 우리 계속 영어로만 얘기하는데 괜찮아? 심심하지."


"아니 전혀. 너희 얘기하면서 다녀. 나 신경 쓰지 말고. 난 경치 보면서 걸을래."


프랑수아와 정신없이 수다 떨다 보니 어느새 트레일 정상에 도착했다. 눈앞에 기가 막히게 멋진 경치가 펼쳐졌다. 저 멀리 설산과 전나무숲이, 아래로는 에메랄드 빛 호수가 보였다.



여기는 물이 죄다 에메랄드 빛이었다. 반짝반짝 영롱하게 빛나다가, 해가 구름에 가릴 때는 물 색깔이 또 확연히 달라졌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즐기려면 캐나다가 제격이구나. 


산에서 내려와 모라시 레이크를 직접 구경했다. 멀리서 보던 것보다 색깔이 더 예뻤다. 고여사도 탄성을 질렀다.


"어머 호수 너무 예쁘다!"


"그치 엄마! 물 색깔 좀 봐. 캐나다는 호수 색깔이 기본적으로 저런가 봐."


재스퍼에도 예쁜 호수가 많았는데, 이 호수도 굉장히 아름다웠다. 유명한 호수인지 주변에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재스퍼에는 어딜 가나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캔모어에 오니 관광객들이 많아졌다. 확실히 중심 관광지 밴프와 가까워서인 듯했다.


시리도록 멋진 겨울 풍경
좌프 우안

호숫가에서 산책을 하다 보니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슬슬 배가 고팠다.


"프랑수아, 배고프다. 우리 뭐 먹으러 가자."


"좋아. 피자랑 맥주 어때? 우리가 캔모어에 올 때마다 가는 곳이 있어."


"좋지. 가자."


프랑수아가 데려간 곳은 Grizzly Paw Brewing Company였다. 들어가니 자리가 거의 꽉 차 있었다. 점원이 우리를 문 앞에 대기시키고 한참 돌아다니다 테이블을 마련해줬다. 우리는 메뉴판을 보고 피자 2판과 각자 마실 것을 골랐다. 나와 프랑수아 여자친구는 일반 수제 맥주, 고여사는 콜라, 프랑수아는 시저를 골랐다.


"프랑수아, 시저가 뭐야?"


"캐나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료인데, 보드카에 토마토 주스랑 이것저것 섞은 거야. 아마 넌 싫어할걸?"


"그래? 내가 술을 싫어할 수 있다니 말이 안 되는데. 나도 한 잔 시켜볼래."


"음... 그럼 내 거 나오면 맛보고 시켜봐"


"오케이, 좋아."


대체 뭐길래 내가 싫어할 거라고 자신하는 거지? 피자와 음료가 나왔다. 내가 시킨 맥주보다 프랑수아의 시저가 더 궁금했다. 프랑수아는 맛보라며 잔을 내게 건넸다.


왼쪽이 시저, 오른쪽이 내가 시킨 수제맥주

"우엑!"


프랑수아, 프랑수아 여자친구, 고여사 셋이 날 보며 깔깔 웃었다. 난 오만상을 찌푸렸다. 시큼한 케첩과 보드카의 강한 향이 섞여 마실 수 없는 맛을 만들었다. 입에 있는 걸 뱉을 수 없어서 억지로 꿀떡 삼켰다. 캐나다 사람들이 이걸 그렇게 좋아한다고?


"넌 이게 맛있니?"


"응 엄청 맛있어."


처음으로 프랑수아와 문화적 차이를 느꼈다. 우리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군. 내가 서양 문화를 좋아한다고 해도, 미각은 완전한 한국인이었다. 숙소에 들어가 엄마가 한 고추장 멸치볶음이 먹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2주를 여행하면서도 한국의 맛이 그리운데, 프랑수아는 한국에서 2년 넘게 살면서 캐나다가 얼마나 그리웠을까?


"프랑수아, 한국에 있을 때 캐나다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


"아니 전혀. 나는 한국이 좋아. 캐나다는 너무 심심해. 나~중에 한 60살 정도 되면 캐나다가 좋을 수도 있는데, 젊어서 살기엔 지루해."


"그래? 나는 한국이 너무 복잡하고 경쟁이 심해서 캐나다에서 살고 싶은데."


"너 여기 막상 오면 심심해할 거야. 네가 얼마나 노는 걸 좋아하니."


내가 노는 걸 좋아하는 건 사실이었다.


"우리 예전에 락페 갔잖아. 넌 그런 페스티벌 다니면서 친구들이랑 어울리며 사는 게 어울려. 캐나다에 오면 심심할 거야."


"맞다 우리 락페 갔었지."


2012년 여름, 프랑수아를 비롯해 대학원 친구 몇 명과 지산락페스티벌에 갔다. 2박 3일을 캠핑장에서 캠핑하면서 페스티벌 내내 놀았다. 그때 진짜 힘들고 진짜 재밌었다. 새벽 3시까지 쿵쿵대는 음악을 들으며 설잠을 잤다가, 아침 8시쯤 되면 텐트 위로 쏟아지는 떙볕 탓에 쪄 죽을까 봐 텐트 밖으로 피신했다.


1시간씩 줄 서서 샤워실에서 찬물로 샤워하고 나오면, 또 금세 더워져서 근처 계곡에 가서 발 담그고 놀았다. 잠도 못 자고 더운 탓에 지쳐서 축 쳐져 있다가도, 공연이 시작하면 무대 앞으로 달려갔다. 7월 말 삼복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좋다고 놀았다. 키 큰 사람은 춤을 못 춘다는 편견을 깨기라도 하듯, 프랑수아는 춤을 정말 잘 췄다. 195cm에 달하는 이 거구가 춤출 때 모르는 사람들이 옆에서 환호하며 영상을 찍었다.


3일 내내 음식은 페스티벌 내 푸드트럭에서 파는 핫도그, 닭강정, 피자, 컵밥, 떡볶이로 해결했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맥스 생맥주를 마셨다. 이렇게 논 게... 내가 딱 30살 때였다. 페스티벌 마지막 날이 내 생일이어서 애들이 케이크를 사와 깜짝 생일파티를 해준 게 기억난다.


"정말 좋았는데 말이지..."


조금 슬퍼졌다. 지금도 좋긴 하지만,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올 수 없으니까. 특히 젊었을 때라 그랬지 이젠 그렇게 놀지도 못한다. 체력이 딸려서. 그리고 우리가 다 같이 다시 모이는 일도 없을 것이고.


그래도 세계 각국에서 태어나 평생 얼굴 볼 일 없었을 우리들이, 인연이 닿아 즐거운 시간을 함께했다는 사실은 변치 않을 것이다.


꼬여사 사진으로 캔모어는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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