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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tabook Dec 20. 2022

인연을 만나는 곳_레이크 루이스&리틀비하이브

좋은 곳에선 좋은 인연을 만난다.

아침에 늦게 일어났다.


"딸, 일어나. 친구 만나서 같이 아침 먹기로 했잖아."


"응 근데 너무 졸려. 오늘 일정 소화할 수 있을까?"


맥주를 마시고 자서일까, 아님 여행 막바지여서일까. 아침에 유난히 피곤했다.


프랑수아와 여자친구 혜진 씨는 벌써 브런치 가게에 나와 있었다. 고여사는 햄이 들어간 베이글을, 나는 훈제연어와 크림치즈가 들어간 베이글을 시켰다. 커피도 1잔씩 시켰다.


빵이 주식인 나라여서 그런가? 이곳도 베이글과 커피가 훌륭했다. 그러고 보면 캐나다에서 먹은 빵은 다 맛있었다. 왜 더 맛있을까? 우리나라도 북미에서 수입하는 밀로 빵을 만들텐데..(아닌가?)


메뉴판 글씨마저 맛있어 보인다


이제 레이크 루이스로 갈 시간. 캔모어에서 레이크 루이스까지 약 80km 떨어져 있었다. 레이크 루이스로 향하는 도로에는 차가 많지 않았다. 캘거리에 처음 도착해 밴프를 거쳐 재스퍼로 가던 날은 멀리 보이는 설산이 멋져서 계속 탄성을 질렀는데, 이제 설산도 익숙해졌다. 평생 쉽게 보지 못할 멋진 풍경도 이렇게 금세 익숙해진다니, 아이러니했다. 레이크 루이스에 1시간도 안 되어 도착했다.


레이크 루이스는 소문대로 경치가 끝내줬다. 유키 구라모토가 괜히 '레이크 루이스'를 작곡한 게 아니었다. 나는 핸드폰으로 유튜브에서 '레이크 루이스'를 찾아 고여사에게 들려줬다.


"엄마, 이게 유키 구라모토의 레이크 루이스라는 곡이야. 이 호수를 보고 영감 받아서 작곡했대."


"그래? 여기 유명한 호수구나."


그런데 유키 구라모토는 이렇게 추울 때가 아닌 봄에 왔던 것 같다. 겨울을 맞은 레이크 루이스는 이 음악처럼 부드럽고 살랑거리지 않았다. 쨍하고, 날카롭고, 하얗고, 강렬했다. 널찍하고 거대한 겨울 호수를 보니 가슴이 시원하게 탁 트였다.


다행히 호수가 얼지는 않았다


레이크 루이스를 천천히 산책했다. 날씨가 쨍하게 맑았다. 이렇게 투명하게 맑은 날 레이크 루이스를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엄마, 저긴 우리가 갔던 에메랄드 호수 숙소보다 훨씬 비싸겠지?"


호숫가에 있는 고급스러운 호텔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보이는데? 규모도 크고 굉장히 고풍스럽네."


"다음에 우리 여기 또 오면 저기서 하루 자자."


"좋지."


언젠가 고여사랑 저 호텔에 묵을 수 있을까? 아니, 레이크 루이스에 함께 다시 올 수나 있을까? 이번 여행 내내 다음 목적지로 출발하거나 아쉬운 일이 있으면 '다음에 또 오지 뭐'라고 말하며 떠났다. 하지만 그러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우리 둘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다짐을 해야 다음 목적지로 발길을 뗄 수 있다. 안 그러면 떠날 때마다 너무 아쉬워서 여행이 슬퍼지게 된다. 삶이랑 비슷하다. 행복했던 순간이나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면, 다음을 기약하며 고이 보내줘야 하는 것. 그렇게 과감히 떠나보내고 떠나야 또 좋은 게 오기 마련인 것 같다.


이제 산에 오를 예정이었다. 산의 이름은 리틀비하이브(Little Beehive). 층층이 쌓인 바위산이 마치 벌집처럼 보인다고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옆 큰 산은 빅비하이브(Big Beehive)이고, 조금 더 코스가 길고 경사가 가파르다. 우리는 설렁설렁 올라가며 경치를 즐기는 게 목적이라 리틀비하이브에 오르기로 했다.


리틀비하이브는 전체 길이 9km에 달하는 코스였다. 우리 넷은 따뜻한 패딩을 입고 등산화에 아이젠, 등산스틱, 갖가지 간식과 따뜻한 물까지 챙겨 출발했다. 해가 쨍쨍해 춥진 않았지만, 길이 중간중간 얼어 있어 미끄러울 수 있고 정상에 오르면 추울 수도 있기 때문에 꼼꼼히 챙겼다.


"엄마, 가다가 힘들면 얘기해. 쉬었다 가도 되고 중간에 돌아와도 되니까."


"엄마가 너보다 산에 훨씬 많이 다니거든? 그리고 걱정 마. 엄마 힘들면 무리 안 해."



유명한 코스라 그런지 경치가 정말 멋졌다. 뾰족뾰족한 나무에 눈이 그대로 쌓여 있고, 아래로는 레이크 루이스가 보였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물 빛깔이 더욱 짙은 초록색으로 보였다. 오르는 길은 눈 쌓인 산과 나무, 옆쪽으로 보이는 호수 경치가 어우러져 무척 아름다웠다. 한국에서도 겨울에 덕유산이랑 소백산 가서 설경을 원 없이 즐겼다고 생각했는데, 여기는 또 다른 세계였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같이 사진을 찍고 서로 찍어주면서 느긋하게 걸었다. 중간중간 경사가 가파른 곳이 있었지만 아이젠과 스틱이 있으니 끄덕 없었다.


가는 길에 본 작은 호수들. 모두 얼어 있었다.

어느새 정상에 다다랐다. 약 1시간 30분이 걸렸다. 많이 힘들지 않고, 적당히 숨이 찰 정도의 기분 좋은 산행이었다. 시간은 어느덧 열두 시가 넘어 있었다.


우리는 간단히 배를 채우러 매점에 들어가, 외부 테이블에 앉아 샌드위치와 따뜻한 커피를 먹었다.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한겨울 소백산에 갔을 때, 컵라면과 뜨거운 커피 한잔을 먹을 때의 딱 그 맛이었다. 음식은 달라도 산행 후 느끼는 맛은 비슷하구나.


샌드위치를 순식간에 해치우고 커피를 홀짝였다. 정상에 올라온 사람들은 우리처럼 커피와 빵을 즐기거나, 사진을 찍고 앉아서 가져온 간식을 먹으며 각자 즐겼다. 많이 힘든 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힘들여 올라온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앉아 있으니까 좀 춥네."


"그러게. 그리고 올라올 땐 햇볕이 쨍쨍했는데 이제 날씨도 흐려졌어. 설마 눈 오는 건 아니겠지?"


하늘을 보니 구름이 껴서 흐렸다. 우리는 혹시 모를 기상악화에 대비해 바로 내려가기로 했다.


곧 비가 섞인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기온도 떨어져 눈 쌓인 길이 얼어 미끄러워졌다. 날씨는 점점 더 흐려졌다. 이럴 때 아이젠과 스틱이 얼마나 든든한지. 우리는 조금씩 속도를 높여 내려갔다.


한 중반쯤 왔을까? 50대 초반쯤 되는 여자분이 앞에서 넘어져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으악!"


비명소리가 한국말이어서, 얼른 가서 일으켜드리며 물었다.


"한국 분이세요? 괜찮으세요?"


"어머 한국 사람이구나. 네 괜찮아요. 여기 많이 미끄럽네요."


"그렇죠. 조심해서 천천히 내려가세요."


우리는 앞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뒤에서 또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으악!"


뒤를 돌아보니 그분이 몇 발자국 걷지도 못하시고 또 넘어져 있었다. 돌아가서 다시 일으켜드렸다.


"괜찮으세요?"


보니까 계속 넘어지는 바람에 다리에 힘이 풀려서 잘 못 내려오시는 듯했다. 한 발씩 내딛는 모습이 위태위태해 보였다. 한두 번 넘어져도 겁 나서 다리에 힘이 풀리는데, 계속 넘어지면 발 디디는 것조차 두렵다.


신발을 보니 단화였다. 단화는 특히 밑창이 판판해서 계속 미끄러질 텐데.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어 내 등산화에서 아이젠을 풀었다.


"제 등산화는 한겨울용이라 이 정도 눈길은 끄덕 없거든요. 그러니까 제 아이젠이랑 등산스틱 쓰셔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살살 내려가 볼게요."


"저야말로 괜찮아요. 얼른 신으세요."


신발에 아이젠을 채워드리고 등산스틱도 건넸다. 그러자 고여사가 옆에서 아이젠 하나를 벗어 내 신발에 채워주고, 스틱도 하나 주었다. 이렇게 하니 우리 셋 모두 불안하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천천히 내려갔다. 조금 내려가니 비슷한 연배의 한국 분들이 보였다. 함께 오신 친구분들이라고 했다.


정상에서 출발할 땐 넷이었는데, 어느새 일곱이 되었다. 모두 조심조심 발을 디디며 천천히 내려갔다. 다행히 조금씩 내리던 비가 오래지 않아 그쳤다. 드디어, 무사히 평지를 밟았다.


어느새 날씨가 다시 맑아졌다. 하늘에 해가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우리 일곱 명은 레이크 루이스 앞 벤치에 앉았다.


"정말 고마워요. 아까 거기서 너무 난감했는데... 구조대를 불러야 하나 고민했어요."


"겨울 산에서는 그래요. 미끄러워서 넘어지고 다리에 힘 빠지면 겁 나서 더 내려오기 힘들어요. 그래도 우리가 도와드릴 수 있는 상황이라 다행이었네요."


고여사가 활기차게 말했다. 어려움에 처한 한국 분을 도와줄 수 있어서 기쁜 것 같았다. 평소에도 고여사는 누굴 돕는 걸 좋아한다.


"혹시 우리 호텔방에서 잠깐 쉬고 가시지 않을래요? 너무 고마워서 차 한 잔 대접하고 싶어요."


우리는 괜찮다고 사양했지만, 뭐라도 꼭 대접하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 결국 따라갔다. 호텔은 마침 고여사랑 내가 눈독 들였던 그 호텔이었다. 방에 들어가니 따뜻하고 아늑했고, 무엇보다 창밖으로 레이크 루이스가 훤히 보였다. 고여사랑 언젠가 여기 오자는 바람이 생각보다 빨리 이뤄졌네?


우리는 따뜻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세 분은 고등학교 동창으로, 함께 밴프 지역을 여행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도와드린 분의 남편이 내가 졸업한 대학원의 교수님(알지는 못한다)이고 아들은 내 대학교 후배(알지 못한다)라는 것. 그리고 다른 한 분의 딸이 캐나다 어디 대학교에 다니는데, 바로 혜진 씨가 이 대학의 조교수로 있다는 거였다. 심지어 같은 과였다. 어쩌면 그분 딸이 이번 학기에 혜진 씨의 강의를 들었을지도 몰랐다. 이렇게 세상이 좁을 수가 있나.


도와드린 분이 내가 아들과 학교 동문이라는 것을 아시고는 조심스레 물어보셨다.


"혹시 결혼했어요?"


"아뇨."


"얘는 남자친구도 없어요."


고여사가 재빨리 말했다. 어느 자리에 가도 '우리 딸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달라'고 말하는 고여사다웠다. (고마워요)


"아.. 혹시 몇 살이에요? 물어봐도 돼요?"


"저 서른다섯이에요."


"그렇구나. 동안이라서 훨씬 어린 줄 알았어요. 괜찮으면 우리 아들 소개해주고 싶은데."


"아드님이 몇 살이에요?"


고여사가 낚아채며 물었다.


"스물여덟 살이에요."


대답을 들은 고여사가 또다시, 내가 뭐라 하기도 전에 말했다.


" 그럼  되겠다. 5살만 어려도   감고 욕심 내보겠는, 7살이면   . 그건 양심도 없는 거야. 포기해."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하지만 연하는 소개받아본 적이 없어서 조금 아쉬운 것이 사실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나이를 먹어가지고!!! 하지만 티를 내진 않았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일정 때문에 떠날 시간이 되었다. 도와드린 분과는 번호를 교환했다.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큰 도움도 아니었고 나로서는 불편함도 없었는데, 이렇게 감사를 받아도 되나 싶었다.


그렇게 이어진 인연이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간간이 선물을 보내주시는데, 올해는 직접 찍은 사진으로 만든 달력을 선물해주셔서, 책상 위에 두고 보고 있다.


어느새 12월이 되어 딱 1장이 남았다. 해가 가는 것만큼, 이 멋진 달력의 수명도 거의 다했다는 게 아쉽다.


매점에서 든든히 먹고 기운 회복한 꼬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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