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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tabook Dec 22. 2022

밴프랑 관련 없는 추억 이야기_밴프 어퍼 핫스프링스

사진 한 장 없는 아주 짧은 밴프 여행기

호텔을 나와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바로 밴프 어퍼 핫 스프링스! 산행 후 온천욕이라니, 들썩들썩 신이 났다. 리틀비하이브가 많이 힘든 코스는 아니었지만 추운 날씨에 장시간 걸으니 몸이 으슬으슬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로키산맥 여행의 중심지 밴프에서는 단 한 곳, 핫스프링스에만 갔다. 이는 현지인의 선호도가 개입되어서인데, 프랑수아가 밴프를 그리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가도 비싸고 사람이 많다는 이유였다. 나도 이해한다. 나도 국내 여행 시 너무 뻔한 관광지보다 상대적으로 덜 붐비고 적게 알려진 곳을 선호한다.


차를 타고 남쪽으로 향했다. 레이크 루이스에서 밴프까지 약 60km 떨어져 있었다. 이 정도 거리는 지척이지. 아침에 올라갈 때보다 도로에 차량이 많았다. 그런데 중간에 차가 유난히 많아지고 천천히 달리는 구간이 있었다. 근처에 관광지가 있나?


교통체증의 주범은 바로 사슴이었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듯 사람들이 옆으로 와도 유유자적이었다. 캐나다에서 야생동물 하나 못 보고 가면 서운할 뻔했는데, 이렇게 보는구나. 운이 좋으면 사슴 중 가장 크다는 무스를 볼 수도 있다는데, 우리가 본 건 작은 사슴이었다. 조금 아쉬웠지만 차에서 내려 사진을 몇 장 찍고 다시 출발했다.

 

어퍼 핫스프링스는 설퍼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차를 타고 오르막길을 올라 주차장에 차를 댔다. 역시 유명 관광지라 그런지 입장하려면 줄을 서야 했다. 캐나다 여행하면서 입장 전에 기다린 것은 이곳이 처음이었다. 밴프라 그런가, 아니면 온천이 워낙 인기가 많아서 그런가. 다행히 회전율이 좋은 지 오래 기다리지 않고 입장했다.


탈의실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간단히 샤워를 하고 나왔다. 내 상상 속 온천은 목욕탕처럼 여기저기 좁은 탕이 있고 바위 같은 걸로 꾸며놓은 곳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마치 한강 야외 수영장처럼 보였다. 물론 산 중턱에 있어서 설경을 보며 온천욕 하는 기분은, 한강 풀장에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날이 다시 흐려져 눈발이 조금씩 날렸다. 추우니까 얼른 들어가야지. 발을 먼저 담가보았다.


"와 물 엄청 따뜻해. 엄마, 발부터 한번 넣어봐."


고여사가 앉아서 발을 슬쩍 넣더니, 그대로 풍덩 뛰어들었다.


"따뜻하고 좋다!"


고여사는 들어가자마자 헤엄치며 돌아다녔다. 원래 따뜻한 탕과 수영을 좋아하는 고여사는, 이 2가지를 합한 조합에 행복해 보였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난 서울 강서구에서 태어나, 5살 때 KBS 88체육관 예체능단에 다녔다. 내 생애 최초의 기억은 여기서 시작된다. 당시 예체능단에 5살짜리는 나랑 다른 1명밖에 없었고 나머지는 6~7살인 언니 오빠들이었다. 여기서 미술, 음악, 수영을 배웠다.


하루는 수영시간에 깊은 물 레인에 줄을 서 있었다. 깊은 물에 점프해서 선생님과 함께 얕은 물까지 수영해서 가는 활동이었다. 선생님은 앞 친구를 데리고 얕은 물에 가 있었다. 그런데 뒤에 서 있던 뚱뚱한 오빠가 빨리 가라고 재촉하길래, 선생님이 오지 않았으니 못 간다고 버텼다. 그러자 그 뚱뚱한 인간이 나를 뒤에서 밀었다.


88체육관 깊은 물 수심은 180cm로, 5살 꼬맹이한테는 엄청나게 깊다. 당시 상황이 생생히 기억난다. 팔을 허우적대면서 위로 올라오면 "살려..." 하다가, 다시 물속으로 잠겨 물 먹다가, 다시 위로 올라가서 "살려..." 하고 다시 빠졌다. '살려주세요'라는 짧은 문장도 완성할 수 없었다.


다행히 친구들이 소리쳐서 사태를 파악한 선생님이 허겁지겁 와서 나를 건져냈다. 그날 울면서 집에 온 기억이 난다.


그때가 생애 처음으로 '이렇게 죽는구나'를 느꼈던 순간이었다.   


여튼, 이 사고에도 불구하고 나는 수영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가족끼리 88체육관 수영장에 가면, 엄마랑 오빠랑 나는 수영장에 들어가고, 아빠는 2층 벤치에 앉아 우리를 지켜봤다. 내가 쳐다보면 간간이 손을 흔들어주면서.


핸드폰도 없던 시절에 아빠는 자식들 수영하는 걸 지켜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루하지 않았을까? 세월이 흐른 지금은, 자식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그 자체가 부모의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빠가 위에서 우리를 지켜봤다면, 엄마는 물속에서 직접 수영을 가르쳤다. 그중 고여사가 가장 자신 있던 건 평형, 일명 '개구리 수영'이다. 당시 엄마한테 열심히 배워서 평형을 완전히 마스터했다(라고 생각했다). 대학생 때 다시 수영을 시작하며 중급반에 들어갔는데, 내가 하는 평형을 보며 강사가 엄청 비웃었다.


"평형은 그렇게 개구리처럼 하는 게 아니에요."


고여사에게 배운 평형은 분명 깨구리처럼 다리를 옆으로 벌렸다가 가운데로 모으고, 팔은 옆으로 활짝 펴서 휘젓는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강사가 가르쳐준 평형은 다리를 거의 일자로 펴고, 팔은 거의 밑을 긁듯이 움직이는 것이었다.


강사에게 제대로 된 평형을 전수받고 접영과 오리발까지 영법은 거의 마스터했지만, 아직도 난 고여사형 평형을 고집한다. 깨구리처럼 팔과 다리를 옆으로 활짝 휘젓는. 왜냐? 재밌으니까.


고여사가 경치를 구경하며 헤엄쳐 다니는 동안, 나는 프랑수아와 혜진 씨랑 얘기를 나누었다. 핫스프링스를 마지막으로 이들과 헤어질 시간이었다.


"혜진 씨, 부러워요. 나도 캐나다에서 살고 싶은데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이민 와서 사는 것도 고충이 있겠지만 그래도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데… 그런데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면서 현실적으로 캐나다에서 살 수 있을지 고민이 되네요."


"캐나다에 이민 와서 사는 건 가능해요. 힘들 수는 있지만, 잘 찾아보면 방법이 있어요. 우선 출판사 시작하신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열심히 한번 해보세요. 캐나다에 오고 싶으시면, 40살 때 오셔도 전혀 늦지 않아요. 대학이나 대학원에 진학해서 기회를 알아볼 수 있고요. 찬찬히 잘 생각해 보세요."


여행 내내 느낀 건, '프랑수아 넌 정말 복 받았구나'였다. 혜진 씨는 자기 말을 하기보단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예의가 정말 발랐다. 잘 웃고, 똑똑하고, 사려 깊은 성격이었다. 프랑수아도 물론 좋은 사람이긴 하지만, 정말 괜찮은 여자를 연인으로 만났다 싶었다. 역시 사람 인연은 어찌 될지 모른다.


우리는 조금씩 어두워질 무렵 핫스프링스를 떠났다. 프랑수아와 혜진 씨와 아쉬운 작별인사를 했다.


"프랑수아, 우리 또 만날 수 있을까?"


"그럼, 당연하지. 가끔 한국에 갈 테니 연락하고 지내자. 그때까지 건강하고."


"그래. 덕분에 즐거운 여행 했어. 로컬 친구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네. 혜진 씨, 그동안 고마웠어요. 우리 언젠가 또 만나요. 꼭."


"그래요. 밴쿠버 여행도 잘하시고 돌아가세요."


나는 마지막으로 프랑수아와 혜진 씨를 꼭 안아줬다. 눈물이 날까 봐 일부러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렇게 프랑수아와 혜진 씨와의 캔모어-레이크루이스-밴프 여정이 마무리됐다.


(추가: 프랑수아와 혜진 씨는 결혼해서 예쁜 딸을 낳았다. 그리고 혜진 씨는 가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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