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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책 서점에 납품하기

내 이름이 찍힌 책이 서점 매대에 있는 걸 본 묘한 기분

by watabook

종이책 제작하기


예전에 출판업이 그럭저럭 잘나갈 때는 1쇄에 3000부를 기본으로 찍었다고 한다. 요새는 많은 출판사에서 2000부 이하를 찍는다. 예전에 다녔던 출판사에서는 학술서의 경우 1000부, 가끔은 500부를 찍기도 했다. 물론 인기 작가나 출판사에서 미는 핫 타이틀은 아직도 한 번에 3000부 이상 찍는다.


1쇄에 몇 부를 찍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1000부를 찍기로 하면 이 책을 딱 1000명짜리 책으로 본 거다. 혹은 아무래도 불안하니 1000부만 내놓고 간을 보겠다는 뜻이다. 3000부를 찍는다는 것은 적어도 3000명에게 팔 수 있다는 자신감을 토대로 한다. 애게, 겨우 3000명? ...한 번 팔아보세요. 책은 정말 안 팔린다. 1만 부만 팔려도 베스트셀러로 분류되는 오늘의 현실에서 3000부 팔면 잘한 거다.


그럼 보자. 일단 1000부 찍고 잘팔리면 또 찍으면 되지 않느냐? 1000부를 두 번 찍을 경우 비용이 딱 두 배 들지만, 한 번에 2000부를 찍으면 약 1000부 비용의 50%만 더하면 된다. 아주 러프하게 말하면, 신국판 300쪽 도판 없는 2도 무선제본 책을 1000부 인쇄한다고 했을 때 250만 원이 든다고 했을 때 2000부 인쇄 시 약 370만 원 정도 든다. 그런데 1000부씩 두 번에 나눠서 찍으면 500만 원이다. 큰 차이다.


그러면 아예 많이 찍어놓고 두고두고 팔면 되지 않느냐? 그것도 쉽지 않다. 물론 종수가 적으면 상관없지만(현재 왓어북처럼) 종수가 많아지면 재고 관리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10종의 책이 1000부씩 있으면 1만 부요, 50종이면 5만 부다. 이 책들이 창고에서 얼마나 자리를 많이 차지하겠는가? 그 자리는 다 돈이다. 매달 나가는 재고비가 부담된다.


그래서 <뉴욕서점>은 몇 부를 찍을 것인가? 인쇄소에 1000부와 2000부일 경우 비용을 문의했다. 본문은 4도(올 컬러) 인쇄, 종이는 미색 모조 평량 100g, 표지는 무난한 아르떼 울트라 화이트 230g. 한 백만 원쯤 차이가 났다. 1000부냐, 2000부냐.


1000부 팔아봐야 뭐 해. 잘해봐야 본전일걸?

2000부 찍었다가 남으면 어떡해. 다 불태울래?

혹시 잘팔리면 또 1000부 찍을 거야? 그럼 수익이 안 남아.

그래도 재고 남기는 것보다 1000부 찍어서 다 팔고 손 터는 게 낫지 않아?


모노드라마를 찍으며 고민하다가, 1500부를 찍었다. 중용의 미덕이여... (그로부터 2달 후 1500부를 더 찍었다. 그냥 2000부 찍을 걸. 책 찍는 것도 주식 같아서 늘 결과론적인 후회만...)


당시만 해도 따끈했던 신간



대형서점 계약하기


대형서점에서 책을 판매하려면 우선 거래 계약을 맺어야 한다. 예전에는 대형서점들이 1인 출판사와 계약을 잘 안 맺어준다는 말도 있었는데 요새는 웬만하면 다 해준다. 특히 1인 출판사 및 5인 이하 소규모 출판사에서 간혹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나오기도 하므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 같다.


그러나 은혜롭게 거래를 맺어주신다 해도 대형 출판사와 같은 대접을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만약 얼마 전 독립한, 알아주는 편집자이거나(출판계 아싸인 나는 그게 누군지 모르지만) 유명 저자의 책을 준비하고 있거나 출간 예정 리스트를 5종 이상 갖췄다면 대접을 좀 해줄지도 모른다. 여기서 말하는 대접은 바로 '공급률'을 말한다.


서점에 납품한 책이 팔렸을 때 출판사가 얼마를 받아가느냐는 바로 이 공급률에 따른다. 공급률이 60%인 출판사는 서점에 납품한 책이 팔리면 6,000원을 받는다. 공급률이 75%인 출판사는 7,500원을 받는다. 책 한 권당 1500원 차이다. 그깟 천 얼마지만, 책이 잘 팔려서 5천 부가 나가면 750만 원이요, 5만 부가 나가면 7500만 원이다. 50만 부면 7억 5천만 원이다.(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왜 걱정인가). 그러니까 차이가 이만큼 난다는 말이다.


나는 거래 담당자에게 열심히 어필해서 아주 푸대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극진한 대접도 아닌, 마지노선 수준의 공급률을 지켜냈다. 출판계 지인에게 물어보니 공급률 계약은 몇 년에 한 번씩 갱신하지만 올리는 건 쉽지 않다고 했다. 뭐 어쩌겠어요...



서점 매대에 책 진열하기


서점과 계약을 마친 후 들고 서점 MD를 만났다. 책이 나오면 MD에게 책을 소개하고 처음에 납품할 책의 수량(초도 물량)을 정한다. 이 경우는 공급률 설정 때와 다르게 개입할 여지는 조금 더 있으나, 역시 내가 가진 패는 별 볼일 없다. 아무리 이 책이 어쩌고 저쩌고 최고고 베스트셀러가 될 귀한 아이라고 말해도 MD는 귀신같이 알아본다. 그 책이 대충 어느 정도인지. 물론 그들도 매번 알아맞히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에도 몇 권씩 들어오는 책을 보면서 매일 데이터를 확인하기 때문에 감이 있다.


인터넷 서점은 받아온 책의 소개를 웹사이트에 평등하게 올려놓기 때문에(노출은 평등하지 않을지라도) 초도 물량에 너무 개의치 않아도 된다. 그러나 대형 오프라인 서점은 다르다. 교보문고를 예로 들어, 초도 물량을 너무 적게 받아가면 몇 개의 지점에만 소량 진열되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제대로 선보이지 못하고 반품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대형 오프라인 서점에는 초도 물량을 많이 따내면 좋다. 물론 잘 안될 책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가 반품되어 오면 책 상태가 엉망이 돼서 다시 팔 수 없게 된다. 그러니까 자신 있으면 반품을 각오하고 MD를 잘 설득하라는 이야기.


이 많은 책들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ㅜ


영업과 홍보 마케팅


책을 잘 만들어도 팔리지 않으면 무슨 소용일까? 팔리고 읽혀야 책의 존재 가치가 빛을 발한다. 판매에 중요한 것은 첫째는 콘텐츠요, 둘째는 '노출'이다. 이런 책이 세상에 있다는 걸 알리는 게 너무나 중요하다. 자신의 책을 직접 출간한 한 유명 작가의 경우, 서점을 하나하나 다 돌아다니면서, 가끔은 어디 카페를 돌아다니면서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자신의 책을 소개하고 권했다고 한다.


이뿐 아니라 오프라인 서점들을 계속해서 찾아다니면서 인사하고, 안부를 묻고, 책의 안부를 묻고, 책을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한다. 그 책은 출간된 지 한참 후부터 서서히 판매량이 늘기 시작해 지금은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나는 이 분야에 있어서 하수다. 쪼렙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쓴 책을 직접 영업하는 게 너무 민망했다. 홍보를 안 할 수는 없고... 서점에 가서 매장 직원에게 쭈뼛대며 명함을 내밀었고, 애매한 홍보를 하면서 돌아다녔다.


나: 안녕하세요. 저희 출판사에서 나온 신간인데요, 뉴욕의 서점 23곳을 취재해서 쓴 책이랍니다.

직원: 아 네 안녕하세요. (명함과 책을 번갈아 보며) 어, 직접 쓰신 건가요?

나: 아, 네. 하하 제가 써서 그러는 건 아니고요, 책이 정말 괜찮아요... (침묵) 그럼 이만.


다른 작가가 쓴 책이면 입이 마르도록 칭찬할 텐데 왠지 내가 쓴 책을 자랑하는 건 자신이 없었다. 이 결과 서점 영업도 제대로 못하고 알아서 팔리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잘 봐주셔서 대형서점과 독립서점에서 잘 보이는 평대에 놓이기도 했고, 서점 주인이 추천한 책으로 선정돼 예상보다는 많이 판매되었다.


교보문고 인문 베스트 평대에도 오르고
당인리 책발전소 주인장이 좋아하는 책으로 선정됐다


손해도 안 봤고 나름 2쇄도 찍었고, 아직 재고가 남아 있으니 추가 제작비를 신경 안 써도 되는 나름 괜찮은 결과지를 받았다. 만약 초반에 조금 더 홍보에 힘을 썼으면 좀 더 판매됐을까? 물론 이 책은 타깃층이 좁다. 많은 사람들이 두루 좋아할 만한 주제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책은 매우 협소한 타깃층을 겨냥했음에도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한다. 역시 베스트셀러는 신이 만드는 것인가...


서점과 거래하고 영업을 다니면서 할 만하다고 느꼈다. 책상에 앉아 책만 만드는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이제 또 무엇을 해볼까 하며 이것저것 궁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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