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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tabook Oct 17. 2022

프롤로그_65세 그녀와는 어디든 가지

모녀, 여행을 시작하다

몇 해 전, 65세 그녀와의 여행은 이렇게 시작했다.


"민혁이네 엄마가 캐나다에 단풍 보러 갔는데, 단풍이 너-무 예쁘더래. 단풍을 보다가 눈물이 나더래.

'아, 내가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지...'"


단풍과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고여사가 매년 가을 이 얘기를 하는 걸로 보아, 그녀가 캐나다에 로망이 있다는 건 확실했다. 처음 얘기를 들은 게 10년 전. 그러니까 민혁네 엄마는 50대의 나이에 단풍을 보고 눈물을 글썽였던 것이다.

10년째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는 우리 고여사는, 이미 60대 중반에 다다라 있었다. 자식 된 도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풍국에 가야 하나...'


마침 7년간의 사회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1년쯤 밍숭밍숭 놀던 차였다. 엄마에게 효도여행을 선사해야겠다는 생각은 아마 내가 심심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카톡을 켰다. 엄마를 찾아 대화창을 열었다. 카톡에 저장된 이름은 '고여사'.


- 엄마, 캐나다 갈래?

- 좋지~~

- 항공권 예매한다?

- 콜~~


다짜고짜 물은 것치고 대답이 즉시 나왔다. 엄마… 이 정도로 기다렸던 거야?


캐나다 여행은 간단해 보였다. 항공편을 예약하고, 캐나다에 가서 단풍을 보고, 추억에 잠기고, 돌아온다. 끝. 성공적.

그러나 계획을 세워보니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딸, 이왕 간 김에 좀 오래 있으면 어떨까?"

"캐나다 가는 길에 미국도 들르면 어때? 가깝지?"

"엄마 그랜드캐년도 보고 싶은데."

"요세미티 국립공원이 진짜 좋다더라."

"현실이 이모가 그러는데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은 꼭 가야 한대."


고여사는 캐나다에 단풍을 보러 가고 싶었으나, 콕 찝어 가고 싶다고 한 관광지는 모두 미국에 있었다. 미국과 캐나다를 넘나드는 최적의 동선을 짜느라 머리가 빠개질 듯 아팠지만, 나름 착착 들어맞게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도착하고서야 깨달았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어긋나 있었다는 것을.


캐나다의 눈물 겨운 단풍을 보려면 동부로 가야 했다. 서부가 아니라...


왜 애초에 여행지를 잘못 정했을까? 한국에서 단풍이 가장 멋진 곳이 어디인가? 설악산이다. '숲'이 아니라 '산'이다. 그러니까, 단풍을 보기에 가장 좋은 곳은 산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그럼 캐나다에서 단풍을 보기 가장 좋은 곳은? 당연히 산이겠지. 그럼 산 중의 산인 로키산맥을 간다면? 단풍을 원 없이 볼 수 있을 거야!


이렇게 뇌피셜에 근거해 로키산맥으로 캐나다 단풍놀이 장소를 정했고, 그에 따라 미 서부의 관광 명소 샌프란시스코와 라스베이거스, 그랜드캐니언이 여행지로 정해졌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큰 불로 인한 연기가 빠지지 않아서 패스,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은 너무 멀어서 패스했다)


"엄마, 비행기 다섯 번 타야 하는데 괜찮아?"

"응 괜찮아."


"캐나다에 도착해서 렌터카 타고 400km 한 번에 운전해서 가야 하는데 괜찮아?"

"응 괜찮아."


"나 캐나다 가서 친구 만나서 하루 이틀 같이 다니고 싶은데 괜찮아?"

"응 괜찮아. 너네가 불편하면 나 혼자 다니지 뭐."

"... 엄마 영어도 못하는데 괜찮아?"

"응 괜찮아. 엄마 문화센터 영어교실을 몇 년을 다녔는데. 그 정도는 할 수 있어."


모든 것에 완벽을 추구한다면, 정작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될까? 엄마와 나는 '원하는 게 있으면 일단 하고 본다'는 꽤 단순한 모토로 산다. 난 엄마의 DNA를 물려받은 건가, 아니면 양육된 건가. 아무튼, 미국과 캐나다는 여행 위험 국가도 아니므로 못할 것도 없었다.


여행 기간은 9월 26일~10월 11일. 날짜를 정한 후 한국-미국-캐나다-한국 항공편을 예약했다. 미국 내에서는 샌프란시스코-라스베이거스 항공편을, 캐나다에서는 캘거리-밴쿠버 항공편을 예약했다.


미국에서 갈 곳들: 샌프란시스코-라스베이거스-그랜드캐니언, 홀슈밴드, 앤텔롭캐니언, 파웰호수, 자이언캐니언


캐나다에서 갈 곳들: 캘거리-재스퍼 국립공원-밴프-밴쿠버


주위에선 모녀끼리 여행 가면 엄청나게 싸운다면서, 웬만하면 가지 말고, 가더라도 패키지 여행을 추천했다. 하지만 내가 엄마와 여행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한 이유는 명확했다.


우선, 엄마는  '괜찮아, 상관없어, 예스 예스 예스'였다. 내가  하자고 하면 반대하는 일이 거의 없기에 여행이 수월할  같았다.


둘째, 엄마는 심각하게 불편한 상황이 아니면 불평을  한다. 많은 상황에서 '그럴  있지'하고 생각한다.


셋째, 난 엄마랑 잘 통하는 편이다. 난 외향인이고 엄마는 내향인인데, 코드가 신기하게도 맞는다. 엄마랑 대화할 때 내 감정을 얘기하면 엄마도 비슷하게 느낀다. 무엇보다 내 생각을 말하면 그걸 판단하고 고치려 하지 않고, 그냥 이해하고 존중해준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의 기본적인 태도는 '네 생각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였다. 어린아이의 생각을 존중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만, 엄마는 그걸 해줬다.


나는 주저 없이 엄마와 둘만 가는 15박 16일 자유여행 일정을 세웠다. 드디어 여행 당일, 인천 사는 고여사와 연희동 사는 아뉴는 공항에서 접선하러 각자 집을 나섰다. 여행할 때는 클리셰적인 음악을 들어야지. 이어폰에서는 두번째 달의 '여행의 시작'이 흘러나왔다. 커다란 캐리어와 배낭을 메고, 홍대입구역에서 인천공항 철도에 몸을 실었다.  


'단풍을 보러 간 단풍국에 단풍이 없었다'는 것을 알고 우리가 얼마나 당황할지 까맣게 모른 채...


캐나다의 완연한 가을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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