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가장 설레는 장소는 이륙 전 공항이 아닐까
“히익! 엄마, 이민 가?”
고여사의 거대한 주황색 캐리어는 터질 듯 부풀어 있었다. 등에 맨 보라색 등산 가방 역시 지퍼가 튀어나올 정도로 빵빵했다. 어깨에 맨 크로스백마저 불룩했다.
“많지 않아~ 두꺼운 옷이랑 다니면서 먹을 컵라면이랑 밑반찬이랑 햇반 좀 쌌어.”
“라면이랑 밑반찬? 아니 엄마, 여행 다니면 그 나라 음식을 먹어야지. 뭘 이렇게 바리바리 싸들고 다녀? 여행의 기본이 안 돼 있네.”
“엄마도 여행 다녀봤거든? 너보다 더 다녔을걸? 영국, 프랑스, 스위스, 헝가리, 괌, 태국, 베트남…”
“아아 그래 그래요. 난 인생도 여행도 간소하고 가볍게 다니는 게 좋아서. 내 스타일이랑은 좀 다르다 엄마.”
우린 인천공항 맥도날드 테이블에 앉아 수속 시간을 기다렸다. 난 엄마가 비닐봉지에 담아온 대추를 입에 넣으며 말했다.
"여행 가면 현지 맛집에 가야지. 그것도 여행의 일부잖아. 며칠 한식 안 먹는다고 어떻게 돼?"
"그래도 나가면 요긴할걸. 너 두고 봐라."
10년 전 미국 교환학생 시절, 미국 문화에 푹 빠지겠다며 식습관도 미국 애들처럼 바꾼 나였다. 아침은 월마트에서 산 식빵에 양상추랑 햄이랑 치즈를 끼워 먹고, 점심은 교내 퀴즈노스나 미국식 중국음식 코너에서 때웠다. 저녁은 파스타나 피자를 먹거나 룸메이트가 해주는 현지 음식을 먹었다.
1년 후, 난 미국 스타일대로 살이 10kg 쪄서 귀국하는 데 성공했다.
여튼, 나는 해외여행하면서 김치랑 밥 찾는 건 좀 미련하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돌아가면 맨날 그거 먹을 텐데.
“엄마, 이제 시간 됐다. 슬슬 나가자.”
수속을 기다리는 줄이 꽤 길었다. 추석 연휴도 지났는데 해외 가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옆에 선 엄마를 봤다. 손에 여권을 꼭 쥐고 저 앞을 쳐다보고 있었다. 엄마는 어떤 기분일까? 설렐까? 기대될까?
난 이제 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혼자 다닌 해외여행과는 무게감이 달랐다. 엄마가 아무리 체력이 좋고 건강해도 65세였다. 어르신이란 말이다. 엄마가 힘들지 않은 일정이 되도록 머리를 많이 굴렸다. 항공편은 아주 이른 새벽과 늦은 밤을 피했다. 지역별로 동선을 짤 때도 너무 많은 일정을 넣지 않았다. (이건 사실 나를 위해서도...) 동선은 최대한 짧고 효율적으로, 여행 스팟은 엄마가 좋아하는 풍경 좋은 곳 위주로 넣었다. 엄마를 최대한 배려하긴 했지만, 엄마가 과연 좋아할까 걱정도 됐다.
가장 문제였던 건, 차 렌트였다. 엄마는 외국에선 운전을 못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장롱 면허 15년 인생의 내가 몇 달 전 운전연수를 받았다. 아직 초보 딱지도 못 뗐는데, 과연 한국도 아니고 외국에서 운전을 할 수 있을까? 나도 내가 무서운데 엄마는 천하태평이었다.
"뭐 어때? 괜찮아, 엄마는 걱정 안 돼."
그래 뭐, 엄마랑 같이 죽는 거면 괜찮아.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다. 예전에 일곱 명의 이모 중 한 명이 헝가리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난 엄마와 이모들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헝가리로 향했다. 잘 가던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나 심하게 흔들리다가 급 하강했다. 비행기가 흔들리는 건 많이 봤지만, 이번엔 심상치 않았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난리가 났다. 나와 엄마는 비행기 안을 불안하게 두리번거리다 서로 손을 꼭 잡았다. 아무 말 없이. 그때 그 생각이 들었다. 그래 뭐, 엄마랑 같이 죽는 거면 괜찮아.
엄마의 거대한 캐리어와 내 큰 캐리어는 티켓팅하면서 부쳤고, 작은 짐과 기내용 캐리어만 들고 출국 수속을 진행했다. 마지막 관문을 거치고 직원이 항공권을 바코드로 찍었는데 삐- 소리가 났다.
“아무래도 부치신 짐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요. 저쪽 가서 안내를 받으세요.’
안내받은 장소로 급히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엄마, 짐 바리바리 싸더니 혹시 금지물품 넣은 거 아냐?"
"글쎄 모르겠는데. 왜 그럴까? 내가 짐 싸다 뭐 잘못 넣었나?"
"아 엄마~ 잘 보고 넣었어야지. 항상 금지물품이 뭔지 확인해야 해. 안 그럼 이렇게 번거로워지잖아. 시간이 남았으니 망정이지 늦게 왔음 어쩔 뻔했어?”
안내받은 장소에 들어갔다. 바닥에 엄마의 짐이 아닌, 내 짐이 바닥에 놓여 있었다. 지퍼를 열어 캐리어를 쫙 펼친 후 여기저기 뒤적여서 뭔가를 찾아냈다.
"보조 배터리는 수화물로 부칠 수 없습니다."
"아 죄송해요 몰랐어요."
"네. 배터리 제외하고 짐은 다시 비행기에 실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아무리 엄마지만, 민망해서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았다. 사무실을 나오며 변명하듯 말했다.
“엄마, 나 진짜 몰랐어. 원래 여행할 때 보조배터리 안 갖고 다니거든.”
“그래 모를 수도 있지. 금방 해결돼서 다행이다.”
내 잘못인데 지레짐작하고 엄마를 타박했구나.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괜히 머쓱해서 엄마 팔짱을 꼈다. 엄마 팔꿈치가 이렇게 낮은 데 있었나? 어느새 키가 더 작아진 듯한 엄마였다.
"면세점 물건 찾으러 가자."
면세점에서 찾을 물건은 달랑 두 개였다. 향수 하나랑 크림 하나. 난 쇼핑을 별로 안 좋아한다. 돌아다니는 게 너무 귀찮아서다. 만약 옷이나 가방을 좋아하면 인터넷 쇼핑이라도 하겠지만, 인터넷에서 사는 것마저 귀찮다. 예쁜 옷을 고르고 구매하는 게 왜 이렇게 귀찮고 싫을까? 그래서 나는 옷이 별로 없다. 명품 가방도 하나 없다.
"엄마 있잖아, 나는 명품 가방 왜 사는지 모르겠어. 몇 백만 원인데 그거 하나만 메고 다닐 것도 아니고, 여러 개 있어야 하잖아. 그리고 옷이 후줄근하면 가방이 살겠어? 옷도 사야지, 거기에 맞는 구두도 사야지. 어휴, 그럼 돈 못 모아."
"근데 넌 왜 돈 못 모았어?"
"나는... 노느라 다 썼지. 엄마도 일주일에 다섯 번씩 사람들 만나고 술 먹어 봐."
"암튼 넌 가방도 없고 돈도 없네. 차라리 사치를 하지 그랬어. 물건이라도 남잖아."
"... 그러네."
쎄게 얻어맞았네. 엄마는 비꼬거나 핀잔 주려 한 게 아니었다. 진짜 사실이기에 말한 거다. 그래, 똑같이 돈 쓰는 거면 물건이라도 남는 게 낫지. 하지만 내겐 추억이 있다 이 말이야. 인생을 즐겁고 풍요롭게 산 거라고!
그런데 그 많은 술자리에서 사람들과 무슨 얘기를, 그렇게 많은 술을 마셔가며, 밤을 새워가며 나눴을까? 즐거웠던 건 기억나는데 어떤 대화를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래도 사는 데 알게 모르게 자양분이 되어 있겠지?
이윽고 탑승 시간이 되었다. 비행기에 올라 엄마와 나란히 좌석에 앉았다. 비행기는 거의 만석이었다. 그런데 이코노미석이 원래 이렇게 비좁았나? 혼자 탈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엄마가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좀 걱정됐다. 열 시간 넘게 가야 하는데 괜찮을까.
"엄마, 좁아도 이번엔 좀 참아. 나중에 내가 돈 많이 벌면 일등석 태워줄게. 이번만 이렇게 가."
"그래 다음엔 꼭 일등석 태워 줘. 딸 덕분에 일등석 한번 타보자."
사실 이번 여행, 내 비행기 티켓 외 모든 여행 비용을 엄마가 다 부담하기로 한 터였다. 이래 가지고 어느 세월에 일등석 태워드리나. 큰소리는 뻥뻥 쳤지만, 일등석은 고사하고 내가 여행 비용의 반만 부담해도 고여사는 감동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러나 고여사는 내가 언젠간 일등석을 태워줄 수 있다고 믿는 눈치였다.
(엄마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