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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 Jul 29. 2017

심드렁한 완벽주의

다 귀찮다고 전해라

 하나의 강박이 뿌리를 내리면 인생의 다른 부분에도 영향을 미친다. 직장에서 경직된 머리는 집에 와서도 쉽게  유연해지지 않는다. 직장의 나, 가정의 나, 연인인 나 등등 여러 가지 상황에 맞춰서 복잡다단한 모습을 가진에 자아다. 하지만 대체로 일관된 경향성을 지니고 있다. 



 완벽을 추구하는 장인 정신은 때때로 멋지다. 스위스 시계를 만드는 명품의 생산자. 사소한 터치에도 영혼을 갈아넣는 화가 등.. 일에서는 멋지지만 일상의 완벽주의는 멋지지 않다. 나는 그렇게는 안 산다. 너무 피곤하다. 모든걸 완벽하게 할 순 없다. 사람이 알파고였다면 완벽할 때, 풀어질 때를 마음대로 모드전환 할 수 있으련만. 이 부분은 오롯이 어렵다. 훈련되지 않은 일반인들은 특히 그렇다.


 직장의 문제로 주말 내내 끙끙 머리를 싸매기도 한다. 남친이 갑자기 지랄하면 하루종일 일이 손에 안 잡힌다. 딱히 손댈 수 있는 일도 없건만. 고민하고 머리아프게 된다. 


 연애는 어떠한가. 더더욱이다. 완벽한 이상형을 평소에 설정해둔다면 쉽게 상대를 찾을 듯 하지만 훠얼씬 어렵다. 절대 양보가 안되는 어떠한 소신. 다이아 정도의 고집. 그걸로 인해 다른 부분들도 슬슬 경도되어 상대와 제대로된 합일을 이뤄내지 못하게 된다. 


 사랑이 그러하다. 모든걸 놓거나 받아들이거나. 그래야 만날 수 있는 상태이자 행위이자 감정이다.


  완벽주의자라면 상대의 모습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보아야 한다. 완벽하게 있는그대로 관자놀이에 살짝 솟아오른 여드름 하나까지도 완벽하게 여기는 모습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한다. 말은 멋지다만 실체적으로 그리 되진 않는다. 수십년간 살아온게 '난 다 가져야해.'이거늘. 마치 '여자가 이쁘면 좋다. 이뻐지자', '원빈처럼 생기면 인기많다.'같은 소리랑 같다. 밥 아저씨가 어때요 참 쉽죠 하는 소리. 현실의 딜레마를 헤실헤실 조롱하는 명언의 향연.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 하루 아침에 완벽주의를 버리게 되면 오히려 위험하다. 지금껏 살아왔던 삶의 방식이 바뀌게 된다. 누가 그 이후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이 부분을 염두에 둬야 한다. 무작정 좋은게 좋은게 아니다. 직장에서 그러면 짤릴수도 있다. 


 완벽하게 불확실성만을 추구하기. 


 한 번 실험해볼 수 있는게 연애다. 직장은 짤릴수도 있고, 학교 성적은 한 번 망가지면 복구가 어려우니. 지금 애인이 없다면 사람 하나 붙잡고 연애를 시작해보자. 연애가 참 아이러니하다. 거창하게 사랑을 만들어보겠다는 각오가 없으면 오히려 시작이 쉽다. 


비유적으로 이해해보자.


  초등학교 방학계획표를 완벽하게 수행하고자 하는 방향성만 바꿔도 흥미로워진다. 완벽주의적으로 일부러 내려놓는 연습. 고의적으로 계획 안지키려고 노력해본다. 그거 전부다 꼬박꼬박 한다고 방학이 알찬게 아니다. 알 수 없는 피로감이 들이닥치기 마련이다. 


 차라리 전부 버리고 방학 그 자체를 느껴보는거다. 당장 삶이 무너져내릴 듯 하지만 별 일 안생긴다. 초등학교 시절에 나는 방학숙제를 아주 꼼꼼하게 다해가는 인간이었다. 무조건 그리 하다가 어느 시점에 깨달은 바가 있다. 굳이 그리 안해도 된다는 것이다 ㅋㅋ 끝까지 안해가고 버텨도 별일 안생긴다. 방학 숙제한다고 삼촌이랑 바닷가 가는걸 아쉬워할 필요가 없었다. 걍 놀러갈 걸.


 삶이 그렇다. 꼭 성공하거나 달성하지 않아도 괜찮다. 건당 100억짜리 로비스트들은 실패하면 킬러가 따라붙는다고 한다. 그치만 난 그런 일 안하니까 상관없다. 여유가 있어야 갑자기 들이닥치는 에피소드들을 만날 수 있다. 빈 공간이 있어야 뭐가 들어찬다. 


 가만 보고 있으면 카공족으로 가득찬 까페같다. 아메리카노 1잔 시키고 개시부터 문닫는 시간까지 자리지키는 카공족.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을 어찌하지 않으면 새로운 손님을 못 받는다. 가끔 완벽주의자들을 보면 이런 카페처럼 보인다. 엄청나게 열심히 사는데 정작 행복화폐는 안 쌓인다. 손님 회전이 안되면 돈이 안벌리는게 당연하다.


 그럼 연애적 고민도 답이 열리기 시작한다. 어차피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선악, 경중, 호불호는 내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사회로부터 학습된다. 아니, 날 때부터 김우빈보다 원빈이 잘생겼다는 인간은 없다. 그게 뭔지도 모르니까 ㅋㅋ 무엇이 더 좋다는 압박에 떠밀려서 형성된 부분이 너무나도 크다. 

 소개팅을 시켜준다고 생각해본다.  둘다 완벽주의면... 끔찍하다. 운이 아주 좋지 않는한, 서로가 생각하는 '완벽'이 일치하는 경우가 드물다. 자신의 완벽을 위해 서로를 들들 게 되어버린다.


 꼼꼼한 자에겐 대충대충 심드렁한 인간을 연결시켜주겠다. 그럼 당연히? 싸우고 성격차이가 어쩌네, 우리는 너무 안맞네 하게 된다. 주선자한테 욕도 한다. 그래도 재밌다. 헤어지지만 않기를 종용한다. 지지고 볶고 하기만 하면 어떻게든 뭔가 기분전환이 된다. 기존의 자신이 깨지는 경험.


 직장에서 학교에서 이리저리 긴장한 영혼을 이완시키는 연애가 필요하다. 연애에서까지 잘하려고 들면 인생이 너무 힘들어져 버린다. 완벽하게 놔버릴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공부할 땐 공부하고 놀 땐 노는 사람의 비밀은 이 부분에 있다.




P.S 상명학에서는 출계(出界) 라고 부른다. 뱅뱅 돌리고 있던 생각의 차원에서 나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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