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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Sep 18. 2022

[동화#6] 100만 번 산 고양이

  현재의 아이와,
  한때는 아이 었던 엄마에게 다가온
  동화책의 작은 울림을 기록합니다.


[책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얘들아...(눈치를 보며) 이 책 보지 않을래?"

"그거 재미없는데."

"싫어! 안 볼래! 그 고양이 못생겼어!" 

"그.. 그래..."


아이들이 싫다네요. 

하긴, 그럴만해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예쁜 그림도, 웃긴 장면도 없어요. 

온통 진지한 장면뿐이라 아이들이 도무지 좋아할 만한 구석이 없네요.


할 수 없이, 이 동화는 아이들을 재우고 혼자 보기로 합니다.


전 이 책을 다섯 번 넘게 읽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가끔 책장을 열어봅니다.

그런데 아직도 영문을 모르겠어요.

그 고양이는, 왜 다시 살아나지 못했을까요.

알듯 말 듯 아리송한데, 도무지 명쾌하게 해석이 되지 않습니다.


같이 고민해 주시겠어요?


누가 봐도 어른 동화.

[100만 번 산 고양이]입니다.



글, 그림 사노 요코, 김난주 옮김, 출판사 비룡소(*출처: 예스 24)






여기 백만 년이나 죽지 않은 고양이가 있습니다.

백만 번이나 죽고 백만 번이나 산 얼룩 고양이는,

백만 명의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죽으면서 백만 명의 사람을 울렸습니다. 

하지만 고양이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어요.


고양이는 한때 임금님의 고양이였어요.

뱃사공의 고양이 이기도 했고요,

때론 마술사, 도둑, 어린 소녀의 고양이 이기도 했어요.

사람들은 매번 고양이의 죽음에 몹시 슬퍼합니다.

고양이를 묻어주곤 하루 종일 울기만 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정작 고양이는,

죽는 것 따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물에 빠져주고, 개에 물려 죽고, 포대기 끈에 목이 졸려 죽어도,

까짓 것 죽으면 죽는 거죠. 



도도하다 냥



고양이는 처음으로 오롯이 자기만의 고양이가 됩니다. 

도둑고양이였던 거죠.

고양이는 자기를 무척 좋아했어요.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매우 좋아했죠. 

그래서 신부가 되길 자처하거나, 

생선을 선물하는 암고양이들에게도 매몰찹니다. 

백만 번이나 살아봤는데,

다 하찮고 시시하게 느껴졌던 거죠. 


딱 한 고양이만 빼고요.


"나는 백만 번이나 죽어 봤다고. 새삼스럽게 이런 게 다 뭐야!"



고양이를 본 척도 하지 않는 새하얗고 도도한 하얀 고양이였어요. 

고양이는 약이 바짝 올랐어요.

하얀 고양이는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거든요.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의 관심을 끌기 위해,

예전 서커스 고양이였을 적을 떠올리며 

멋진 공중 돌기도 하고,

백만 번이나 죽었던 과거를 무용담처럼 들려주기도 해요.

하얀 고양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습니다. 


소용이 없자, 고양이는 결국 담담히 고백을 해요.


"네 곁에 있어도 괜찮겠니?"

"으응."


그때부터 고양이는 늘 하얀 고양이와 함께 했습니다. 


하얀 고양이는 새끼를 많이 많이 낳았어요. 

고양이에겐 이제, 

자기 자신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생겼습니다.


새끼 고양이들은 자라서 다 독립을 해요. 

고양이의 곁엔 하얀 고양이만 남았어요. 

고양이는 조금 늙은 하얀 고양이와 함께 오래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느 날, 하얀 고양이는 고양이 곁에서 조용히 숨을 멈췄습니다. 

고양이는 처음으로 울었어요. 

밤이 아침이 되고, 또 밤이 아침이 되도록,

백만 번이나 울었습니다. 




그렇게 계속 눈물로 지새우던 고양이는 그대로 조용히 움직임을 멈춥니다.




그러고는 두 번 다시 되살아나지 않았습니다.






고양이는 왜 다시 살아나지 않았던 걸까요?


불교에선 윤회(輪廻)의 고통은 생의 번뇌와 업(業)으로 인해 반복되는 것이라 하더군요.

수레바퀴와 같은 삶을 끊어 내기 위해선 해탈의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고양이는 해탈의 경지에 이른 것일까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글을 쓰다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장면이 있었어요.

고양이는 먼저 죽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것을요.

아마도 죽기 전 사람들의 눈물을 봤다면 한번쯤은 고민을 해봤을 테지요.


"저 사람이 왜 울고 있지...? 그것도 날 위해?"


고양이는 사랑을 모른 채, 의미 없는 백만 번의 생을 삽니다. 

삶의 애착도, 주인에 대한 애정도 모른 채,

무의미하기 그지없는 삶을요.

그래서 죽음도 대수롭지가 않은가 봐요.

의미 있는 삶이 아니어서요.


하얀 고양이를 만나고 고양이는 새로운 세상을 만납니다. 

사랑이란 감정을 알고,

새끼를 낳고, 

나 보다 소중한 대상이 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닫죠.

고양이는 행복했을 겁니다. 

삶이 처음으로 아까웠을 거예요. 

그러니 늙은 배우자와 오래오래 해로하고 싶다는 꿈을 꿨겠지요.


하얀 고양이의 죽음 앞에,

고양이는 비로소 눈물을 흘립니다.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고,

세상에 둘이 될 수 없는 유일한 존재의

되돌릴 수 없는 상실 앞에서요. 


고양이는 울다 울다 하얀 고양이의 곁에서 죽음을 맞아요.

그리곤 다시 살아나지 않았죠.


고양이는 왜 영원한 잠을 선택한 걸까요?


하얀 고양이와 함께 하고 싶어서?

소중한 사람을 잃는 고통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아서?

아니면,

사랑할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무의미한 삶을 다시 살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무의미한 환생과 유의미한 죽음.

삶은 유한하기에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

상실과 영원한 잠에 대한 이야기


[100만 번 산 고양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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