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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Sep 12. 2022

[동화#5] 팥죽 호랑이와 일곱 녀석

  현재의 아이와,
  한때는 아이 었던 엄마에게 다가온
  동화책의 작은 울림을 기록합니다.   

    [책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팥죽할멈과 호랑이」를 읽고, 강물에 버려진 호랑이에 쾌재를 외치던 아이들이었는데요.

갑작스러운 사태 변화에 어쩐지 혼란스러운 표정이네요.

 

팥죽할멈 그 후의 이야기.


 「팥죽 호랑이와 일곱 녀석」 입니다.


 

최은옥 글, 이준선 그림, 출판사 국민서관(*출처: 예스 24)





여기 강물에 던져진 호랑이 한 마리가 있습니다.

네, 멍석말이를 당해 직뚝직뚝 지게에 얹혀 강물에 던져진 그 호랑이요.

뜨거운 알밤에 맞은 눈두덩이는 아직 부어있네요.

강물에 가라앉으며 호랑이는 결심을 합니다.

자기를 괴롭힌 일곱 녀석들에게 복수를 하기로요.


요놈들을 어찌한다...


호랑이는 며칠을 궁리하다 신령님을 찾아가요.

그리곤 신령님께 일곱 녀석에게 복수할 방도를 알려달라 합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신령님은 팥 한 되를 내미네요.

그리곤 팥 농사를 지어 수확한 팥으로 팥죽 할머니의 것만큼 맛있는 팥죽을 쑤어오라 합니다.


그때부터 호랑이의 팥 농사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게 쉽지가 않아요.

까짓 거 대~충 던져 놓은 팥이 알아서 잘 여물리 없잖아요.


이게 뭐야?!


어찌어찌 힘겹게 수확하더라도 다음 고비가 있지요.

이제는 팥죽을 쑤어야 합니다.

그런데 팥죽을 끓이는 일도 만만치 않아요.

뺏어 먹어만 봤지 언제 제 손으로 만들어 먹어 봤어야죠.

쓰고, 떫고, 눌어붙고, 짜고

불 앞에선 호랑이의 고군분투가 이어집니다.


퉤! 퉤! 무슨 맛이 이래?!



그런데 이상합니다.

분명 복수하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일을 할수록 할머니 생각이 나요.


할머니도 팥밭 일구느라 힘이 드셨겠지?

할머니도 뜨거운 불 앞에서 팥죽 쑤느라 고생했겠지?


호랑이는 할머니 생각에 자꾸만 미안한 마음만 듭니다.


여러 날을 고생해서 꽤 맛있는 팥죽을 만들게 된 어느 날,

호랑이는 무심결에 할머니께 팥죽을 맛 보여 드리고 싶단 생각을 해요.

호랑인 할머니가 뵙고 싶어 쏜살같이 달려갑니다.


할머니의 초가집 앞에 도착한 호랑이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이 떡 벌어졌어요.

뭐해 할멈! 우리 덕분에 산 걸 잊었어?!


지게, 멍석, 절구, 개똥, 알밤, 자라, 송곳이 할머니를 머슴처럼 부려먹고 있었던 거죠.

지게의 으름장 놓는 소리가 바깥까지 쩌렁쩌렁 울립니다.

잠시 후, 부뚜막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의 목소리도 들려요.


"에구... 차라리 그때 호랑이 밥이나 될 것을..."


호랑이의 표정이 복잡합니다.

일곱 녀석의 갑질과 할머니의 처지가 모두 자기 때문인 것만 같아서 괴로워 보여요.

호랑이는 이 상황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모두가 잠든 밤, 호랑이는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해요.

마당 가운데 몇 개의 덫을 놓고요,

함정도 팝니다.

그리곤 웬만한 특수요원 못지않은 속도로 하나둘씩 녀석들을 차례로 제압해요.

 

"잘 걸렸다 이놈!", "지게 살려!!!!"



부엌에서 쪽잠 자던 팥죽 할머니가 소란을 듣고 밖으로 나옵니다.

호랑이는 할머니에게 넙죽 절을 올려요.


"할머니, 이제부터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호랑이는 잡힌 일곱 녀석을 회유해요.

앞으론 팥밭도 일구고 팥죽도 만들며 할머니를 도와 잘 살자고요.

딱히 갈 곳이 없던 일곱 녀석도 동의를 합니다.


그렇게 호랑이와 일곱 녀석은 할머니와 함께 초가집에서 살게 됩니다.

농사일도 돕고, 집안일도 도우면서요.

그중에서도 호랑이가 제일 좋아하는 건,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며 팥죽 쑤는 일이었지요.


겨울이 오고, 펑펑 눈이 내리는 날.

도란도란 둘러앉은 아홉 가족이 웃으며 팥죽을 나눠 먹습니다.


팥죽 할머니가 흐뭇하게 말해요.


"호랑아, 팥죽이 아주 맛있구나."

"맞아요!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요!"






책을 덮고, 아이들의 표정을 살핍니다.

예상치 못한 전개가 약간 당황스러운 것 같네요.

아이들의 혼란스러운 이유는 악당의 반전 때문이겠지요?

비난의 대상이 모호해져 버렸습니다.

처음엔 당연히 호랑이가 악역이었는데, 상황이 바뀌니 할머니를 구한 일곱 녀석이 악역이에요.


아이들에게 절대 '악인'과 절대 '선인'은 따로 없다는 걸 알려줄 수 있는 좋은 계기인 것 같습니다.


사실 여기에 덧붙여,

사람을 볼 때 단편적인 행동만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모습을 함께 봐야 한다는 점과,

사람의 초심이 변하는 과정까지 말하고 싶었는데요.


여기까진 너무 혼란스러울 것 같아 말을 아꼈습니다.  




흔히 알고 있는 이야기의 반전이 어떠셨나요?

저는 이 책을 읽고 일상을 살고 있는 믿음의 균열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우리가 가진 세계관이란 것은,

어릴 적 부터 갖고 있는 당위성에 대한 균열로 부터 비롯되었을 테니까요.

당위적 믿음의 배신, 그리고 균열,

깨진 믿음의 틈으로 새로운 사고의 확장이 일어나지요.

완고한 사고의 벽은 쉽게 확장될 성격의 것이 아니니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잘 알려진 고전을 요리조리 뜯어보는 재미가 있는 동화였어요.



상황과 인간됨의 반전,

당연하게 고착된 믿음의 균열로

총체적인 사고의 틈을 열어준 동화


[팥죽 호랑이와 일곱 녀석] 입니다.






저는 팥죽을 싫어해요.

특유의 텁텁함과 먹으면 속이 쓰라린 게 싫어서요.

덕분에 여태껏 아이들은 팥죽을 한 번도 먹어보질 못했습니다.


아이들이 팥죽할멈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물어요.

팥죽은 도대체 어떤 맛이냐고요.

참 대답하기가 난감합니다.

팥죽이 팥죽 맛이지, 무슨 맛이겠냐고 되물을 수도 없고요.


얼마 전, 올여름 열일한 빙수기를 넣었어요.

가을바람과 함께 올해 빙수 시즌이 끝났습니다.

그런데 냉장고에 빙수용 팥이 많이 남았네요.

갑자기 예전 전주 한옥마을에서 겨울 별미로 단팥죽을 내어줬던 게 기억이 났어요.

누가 봐도 빙수용 팥으로 만든 단팥죽이었죠.

'요걸 어떻게 활용을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팥죽이 궁금해? 엄마가 단팥죽 만들어줘?"

"응!!! 팥죽 만들어줘!!!!"

"팥죽! 팥죽!!"


냉장고의 빙수용 팥을 꺼내 냄비에 넣고 물을 1.5배 정도 넣어서 뭉근하게 끊여 봅니다.

소금 간도 살살하고요.

감자 샐러드용 매셔로 팥알을 살살 뭉개가며 한참을 끓였어요.

어라... 제법 그럴싸하네요.


잡솨봐~



아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조심조심 맛을 봅니다.


"웩! 맛없어!"


둘째 쭈가 먼저 숟가락을 놓네요.


"현아, 넌 먹을 만해?"

"음... 좀 달긴 한데... 근데 어디서 많이 먹어본 맛인데..."


이제야 쭈가 남긴 단팥죽을 한 입 먹어봅니다.

음... 끓인 비비빅 맛이 나는군요...

달아도 너무 달아요...


"현이도 그만 먹어. 엄마가 다시 끓여서 아이스크림 만들어야겠다."

"응."


미련 없이 놓는 걸 보니 현이 입에도 그닥이었나 봅니다.


아이들을 재우고 식은 팥죽을 아이스크림 통에 부어두었는데,

음... 결과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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