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움 Aug 25. 2022

[동화#4] 꽃이 된 로봇

  현재의 아이와,
  한때는 아이 었던 엄마에게 다가온
  동화책의 작은 울림을 기록합니다.   

    [책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의 숨소리가 잦아듭니다.

딸아이의 목소리는 잠기고,

아들은 오늘도 눈물을 훔쳤습니다.

모른 척 고개를 돌려 눈가를 닦았지만, 빨개진 코 끝의 감정을 숨길 수가 없네요.


저는 동화책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아이들에게 매일 읽어주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동화책은 젠체하지 않으면서도,

인간과 인생, 삶과 죽음, 관계와 마음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이야기를 전합니다.

어느새 잊고 살았던 중요한 것들이 담긴

잊혀힌 보물상자 같달까요.


오늘은 특히 그렇습니다.


나이 듦, 꿈, 사람의 마음, 사랑에 대한 이야기

「꽃이 된 로봇」입니다.


김종혁 지음, 출판사 씨드북 (*사진출처: 예스 24)





여기 꽃집 할머니 한 분이 계십니다.

봄이 왔지만, 어쩐지 할머니 표정이 밝지 않아요.

'친구가 있으면 좀 나아질까?'


할머니는 세상 어딘가에 있다는 소원 들어주는 보물 항아리를 찾아가

친구를 만들어 달라고 해야겠다 결심 합니다.


할머니의 계획을 듣고 사람들이 말려요.

위험하다, 혼자 어떻게 가냐, 나이가 많다...

할머니를 위하는 척하며

할머니의 계획에 찬물을 뿌리죠.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의 할머니는 거리낄 게 없습니다.

모험이 위험하면 하늘 나는 튼튼한 배가 있으면 되고요.

나이 든 할머니를 도와줄 로봇이 있으면 되니까요.

손재주 좋은 할머니는

프로펠러 달린 멋진 통통배 한 척과,

음료수 깡통 몸을 가진 로봇 하나를 뚝딱 만들었어요.


"반갑구나 얘야. 우리는 소원을 들어준다는 보물 항아리를 찾아 여행을 갈 거란다. 옆에서 이 할미를 도와주렴."

 


할머니와 로봇은 보물을 찾기 위해 온갖 고생을 합니다.

넓은 바다를 헤매고,

세상 가장 높다는 산꼭대기에 올라 동그란 달이  때까지 땅을 파고,

꽝꽝 언 강을 곡괭이로 깨 보기도 하고요,

유령 나온다는 성에도 찾아갔어요.


사람들은 할머니의 통통배를 볼 때마다 손가락질을 합니다.

바보 같은 할머니와 멍청한 로봇 이라고요.

있지도 않는 보물 때문에, 꿈 때문에 저 고생을 한다고요.


하지만 할머니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바보 같다고 생각했어요.


"바보 같은 꿈이라도 가지고 사는 게 아무 꿈도 없이 사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로봇과 할머니는 아주 많이 가까워집니다.

그럴 만도 하죠.

함께 산전수전은 다 겪으니까요.

때론 달을 보며 할머니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첫눈도 같이 맞고요,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눕니다.


인간의 마음이 궁금한 로봇은 할머니에게 많은 질문을 해요.


할머니,

좋아한다는 게 뭔가요?

사랑이란 뭔가요?


할머니는 골똘히 생각하다 답을 해요.


"사랑이란, 소중해서 아껴주고 싶고, 보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이야."


그런 할머니의 눈에, 로봇이 가득 차 있어요.

로봇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얼굴이 발그레하게 빛 납니다.


시간이 흐르고, 이제 할머니는 나이가 많이 들었어요.

할머니는 점점 힘이 빠지고, 기력이 없어져요.

식사도 하지 않고, 침대 밖으로 나오지도 못해요.

할머니가 이상한 로봇은 그저 질문만 할 뿐입니다.


할머니 왜 그래요?


어느 날 할머니가 말해요.


"이제부터 보물은 너 혼자 찾는 게 어떻겠니?"


"그리고 보물 항아리를 찾으면 나 대신 소원을 빌어다오. 널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고 말이야."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로봇은 쇠로 만든 심장에 검은 녹이 스는 것만 같았어요.


로봇은 매 순간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보물을 찾아 나섭니다.


할머니라면... 할머니라면...


사람들은 여전히 손가락질해요.

하지만 로봇은 멈추지 않아요.


시간이 흘러 로봇도 나이를 먹습니다.

팔은 녹이 슬어 삐걱거리고,

기름칠도 소용이 없습니다.

가슴에 있던 할머니 사진도 닳고 닳았어요.

그렇게 매년, 홀로 첫눈을 맞습니다.

할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요.


그리고 드디어.



할머니,

사람이 되면 어떤 기분일까요?

사랑이 뭔지 알 수 있을까요?

사람의 마음을 느낄 수 있을까요?

사람이 되면,

내 가슴에 슨 커다란 녹이 사라질까요?

하지만 전 사람이 되지 않을 거예요.

내가 사람이 되어서 알아야 할 모든 사랑은 할머니가 가지고 가버렸어요.


항아리야, 내 소원을 들어주겠니.

나를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예쁜 꽃 한 송이로 만들어 줘.



로봇은 항아리 아래 주저앉아요.

만신창이 녹슨 몸이 그 아래 바스러집니다.

모든 기억이 스치고,

로봇은 낡은 사진 한 장을 품은 채 눈을 감습니다.






아이들이 훌쩍이네요.

저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날것의 감정들을,

아이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겠지요.


삶이란 무엇이던가요.

꿈은 무엇입니까.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틈으로,

내 삶의 가치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까요.


지금도 어딘가에선

현실 장벽에 고군분투하며

나만의 삶의 가치와 꿈을 추구하는 이들이 있을 겁니다.


그들을 보게 되면,

함부로 손가락질 하진 말아야겠습니다.

그들이 품은 가치와 꿈이

깡통 로봇 같은 세상에 뜨겁게 전해질 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메마른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 줄,

마법 같은 동화


[꽃이 된 로봇]입니다.





* 덧붙임: 그림책의 위력을 몸소 느낍니다. 사진을 많이 올리지 않으려 했는데... 그림의 여운이 진하게 남네요. 책이 훨씬 강렬합니다. 마음에 드셨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화#3] 친구의 전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