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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Mar 16. 2022

휴직이 내게 준 것들

월급은 없지만, 마음 만은 행복해

  올해 초, 나는 휴직에 들어갔다. 도무지 사그라 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 상황과 아이의 초등 입학 시기에 맞춘 결정이지만,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많이 지치기도 한 스스로를 위한 결정이기도 했다. 덕분에 바쁘다는 핑계로 놓치고 살던 것들을 찾아가는 재미가 쏠쏠한 요즘이다.   

  


아이들은 일찍 일어나도 신이 난다   

  

  일하는 엄마를 둔 이유로 남매는 매일 아침 엄마와 전쟁 같은 아침을 맞이했다. 매일 아침 7시 10분. 엄마는 창가 암막커튼을 걷고 아이들을 깨웠다. 머리도 쓰다듬고, 다리도 주무르고, 뽀뽀 세례도 쏟아냈지만 아이들은 쉽게 눈을 뜨지 못했다. 특히나 아직 어둑어둑한 겨울철 아침에는 그 시간이 더욱 길었다. 못 일어나는 아이들을 보며 딱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지만, 이 조차 아이들의 운명이다. 출근을 앞둔 엄마의 심리적 마지노선은 그리 넉넉지 않았고, 시한부 애정 타임도 낮게 깔리는 목소리와 함께 이내 끝나버리는 것이다. 엄마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손길이 거칠어질 즈음이면 아이들은 마지못해 부스스 일어났다. 눈도 못 뜨고 방에서 나온 아이들은 일어나자마자 식탁에 앉아 엄마가 미리 차려둔 아침밥을 먹어야 했다. 하지만 일어나자 먹는 밥이 맛이 있을 리가 있나. 어쩔 수 없다. 아이들은 밥을 먹어야 했고, 세수도 해야 했고, 옷도 입어야 했다. 그렇게 아이들은 기상부터 등원까지, 시계 긴 바늘의 움직임을 의식하며 엄마의 군대식 출근 시스템에 익숙해졌다.     

남매의 등교 길. 산책하듯 맞이하는 아침은 아이들도 즐겁다.


  휴직 후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아침 풍경이다. 우선 출근 압박 없는 엄마의 애정 타임이 길어졌다. 아침 침대에서 아이와 나란히 누워 부둥부둥하는 시간이 늘었다. 아들은 눈을 감고 간밤에 꾼 기상천외한 꿈 얘기를 해줬고, 딸은 일어나자마자 엄마 위에 올라가 샌드위치 놀이를 했다. 엄마와 장난을 치고 기분 좋게 일어나면 아이들은 식탁에서도 기분이 좋았다. 오늘 아침은 왜 이거냐, 딴 거는 없냐며 투정을 부리기도 하지만, 엄마의 여유 있는 태도가 보여서 일까. 식탁에서 엄마 눈치 보기가 줄었다. 엄마의 잔소리는 줄었지만 항상 준비하던 시간과 패턴이 몸에 베인 아이들이라 오전 시간을 허투루 쓰지는 않았다. 남매 중 준비를 다 끝낸 쪽은 남은 아이가 준비를 마무리할 때까지 막간의 자유 시간을 누릴 따름이다. 등교 준비를 마치고 현관을 나서는 시간은 같았지만 ‘어서! 빨리! 서둘러!’를 외치며 아이들을 차에 태우는 대신, 따뜻하게 손을 마주 잡고 걸어서 산책하듯 집을 나섰다. 몽글몽글한 아침 풍경에 아이도 엄마도 신이 났다.    

       




일이 아닌 무언가     


  직장, 집의 무한루프 속을 헤매는 도시 유령 괴담이 있다면 십중팔구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일 것이다. 출근 이후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다 아이들 하원 시간이 다가오면 심장박동 수가 급격히 올라간다. 커피 없이도 만끽하는 막강 각성효과를 온몸으로 느끼며 급히 운전대를 잡으면, 불과 몇 시간 전의 피곤일랑 번쩍이는 정신에 뒷전으로 물러난다. 그럴 때면 그저 ‘아이들에게 가야만 한다’는 목표만 남아 지금 당장 전력 질주할 마음의 준비를 끝낸 엄마 치타 한 마리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전력 질주하는 동물들의 수명이 짧다 하던 데, 다른 엄마들은 안녕들 한지 쓸데없는 궁금증이 생긴다. 하지만 무엇이든 어떠하리. 지금 내 새끼가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데. 인간은 정신이 지배하는 동물이 맞는 듯싶다.


  집으로의 출근은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아이들 하원과 장보기, 저녁 준비 등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을 일과가 줄지어 이어지기 때문이다. 폭풍 같은 저녁시간을 보내고 나면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는 건 남편 몫으로 하고 홀연히 집을 나온다. 고질적인 어깨와 허리 통증을 해결하기 위해 병원 신세를 지지 않으려면 좋아도 싫어도 운동을 해야 한다. 그렇게 아침의 도시 유령은 어느새 도시 좀비가 되어있다. 도시 좀비도 살려고 운동을 한다.      


  아직 3월, 초등 1학년 엄마의 여유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적응기간 동안은 아이가 12시 30분이면 하교를 했다. 세상에, 유치원에서도 오후 4시가 되어야 나오는데 12시 30분이라니. 이쯤이면 학교를 다닌다기보다 학교 체험을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롭다는 사실을. 별다른 휴식을 하지 않아도 항상 몸에 배어 있던 불필요한 긴장이 빠지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 뒷  목과 어깨의 통증도 덜해졌다. 죽지 않으려 하던 운동이 비로소 건강을 위한 운동이 되고 있다. 운동시간도 오전으로 바꿨다. 아이를 보내고 오전 운동이 끝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아이가 돌아오지만, 아이를 맞이하는 시간이 반갑다. 큰 아이에게도 동생 없이 엄마와 단 둘이 보낼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잠시간의 여유지만 모자의 정을 돈독히 하는 데 시간을 할애하기로 했다.




           

그리고 글을 쓰다    

 

  휴직을 결심하고 난 이후, 가장 먼저 계획한 것은 브런치 작가 신청이었다. 항상 무언가 쓰고 싶다는 갈망에 시달렸지만 스스로에 대한 의심과 용기부족에 결심을 미뤘다. 그러다 온라인 글쓰기 수업의 선생님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느낌이었다.     


  ‘글은 누군가에게 읽힐 운명을 타고났어요.’     


  남매에게 읽어주는 전래동화 중 ‘이야기 귀신’이라는 책이 있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도령이 어른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모아 모아 주머니에 담아두고 꽁꽁 묶어놨더니, 본래 구전되기 좋아하는 이야기들이 앙심을 품고 귀신이 되어 도령이 장가가는 날 복수를 계획했다는... 글도 비슷한 운명을 타고 났다면 내 글들도 꽁꽁 묶어두면 안 될 터였다. 그래서 나도 용기를 내기로 했다. 그리고 부디 나의 글쓰기 생활이 휴직기간을 슬기롭게 채워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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