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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Apr 21. 2022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만 돌아가고,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내려놓고


  선택의 기로에 선 이 양가적 인간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길을 나서며 얻는 것과 잃을 것, 쟁취할 것과 감수해야 할 것, 책임과 기회 혹은 설렘과 두려움, 좌절? 숙고하되 장고는 하지 말 것이며, 일단 결정을 하면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결정을 내리고 괜한 아쉬움에 뒤를 기웃거리는 건 그다지 멋지지 않기 때문이다.       


  휴직을 결정하고 내내 속을 울렁이게 만들었던 내적 갈등은 일단락되었다. 커리어와 육아. 이 양립 불가능한 이분법적 갈등은 세상 모든 워킹맘이 겪는 보편적 딜레마 중 하나일 것이고, 나 역시 그 앞에선 별 수 없는 한 사람일 뿐이다. 결혼과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필연적 운명 앞에 선택이란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 결정에 뒤를 돌아보지 않기로 했지만 어쩐지 뜨뜻미지근하게 남아있는 잔열에 속이 쓰린 건 사실이다.   

    

  아이 둘을 낳고 기르다 보니 어느새 중간 경력에 이르렀기 때문인지, 혹은 나의 아주 단편적인 부분만을 보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관리자의 실수인지, 둘 다인지 모르겠으나 생각보다 젊은 나이에 맡게 된 책무를 수행하며 부담과 스트레스, 성취를 모두 겪은 덕분에 스스로에 대한 가능성이 어디까지 일지 궁금해진 건 사실이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도 있을 것도 같았고, 지금부터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아직 어릴 적에 아빠에게 해외 파견 기회가 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그때 아빠가 결정을 내렸다면 우리 가족은 함께 독일로 이주했을 것이고 아마도 꽤 오랜 기간 독일에서 생활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는 아마도 지금쯤 숏 컷의 톰 보이가 되어 한 손엔 담배 개비, 또 한 손엔 1L짜리 맥주잔을 들고 약간은 억센 억양의 독일어로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지 않았을까. 아무튼 아빠는 해외 파견직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정엔 할머니가 있었다. 그때의 결정을 후회한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지만, 아빠인들 그때 다른 결정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을 왜 안 해보셨겠나.      


  내 안의 울렁임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자면 다양한 모습을 한 욕구들을 발견할 수 있다. 교사이자 업무담당자이고, 엄마이자 아내인 동시에, 그 어떤 역할의 이름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만들어낸 모든 동경과 이상, 현실 장벽과 좌절, 그리고 무엇이 되었던 그 이상의 기타 등등. 모든 가치들이 충돌하며 만들어낸 파장에 내내 속이 울렁거렸다. 유능감의 사회적 발현과 따뜻한 양육자의 역할 사이 ‘나’의 위치는 어디쯤이어야 하는 걸까. 워라벨을 외치며 실상은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못하는 자의 애처로움이란 이런 것이다. 충족과 결핍의 시소게임 가운데서 아등바등거리며 중심을 지켜야 한다는 것. 물리적, 체력적 한계 속에 그 어느 쪽도 완전한 충족은 없다. 애처롭게도.


  사실 중요한 시기에 휴직을 선택했다는 것만으로도 답은 진즉에 나와 있었다. 선택은 2순위, 3순위와 공여할 수 없는 것이기에. 현재와 미래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내 삶의 근간이며,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것들을 지키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이 선택에 후회는 없다. 물론 이따금 아궁이에 불쏘시개를 채워 넣듯 갖은 유혹과 기회들이 또 찾아오겠지만, 그렇다 해도 지금의 결정을 후회하진 않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만 돌아가고,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꼭 그곳에만 있는 건 아닌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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