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한 뼘 더 커져있다
시작은 통증 때문이었다. 목과 어깨, 허리의 아주 오래된 통증들은 두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고질적인 신경통으로 변해 있었다. 삼십 대 중반에 일찍이 병원 신세를 지기란 죽기보다 싫은지라 병원을 다니기 전에 운동을 하자는 생각으로 요가를 시작했다. 한껏 삐그덕 거리는 몸을 이끌고 요가원에 처음 등록한 날을 기억한다. 단단한 바닥과 밀도 있게 꽉 찬 수련실 공기가 주는 안정감에 썩 나쁘지 않았던 날. 그날 나는 몸에 딱 붙는 요가복을 입고 유려하게 자세를 이어가던 수련생들 사이에서 홀로 삐걱이는 양철로봇이 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요가원을 나설 때, 전신을 엄습하는 근육통과 밤새 하이파이브를 할 것만 같은 생각에 무척이나 설레었던 날이었다.
요가를 시작한 지 햇수로 사 년이 지났다. 틀어진 몸을 다잡고 근육이 붙기 시작하면서 자세를 하기가 수월해졌다. 어쩌다 운동을 며칠 쉬기라도 하면 금세 돌아오는 통증이지만, 예전에 비해 생활에 불편함이 없을 만큼 좋아진 걸 느낀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자세와 굳이 비교를 하거나, 일정 수준의 과정이 지나면 도달해 있어야 할 이렇다 한 표준이 잡혀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때때로 화려한 수강생들 속에 어중이떠중이, 때론 쭉정이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곤 한다. 요가 선생님들이 ‘자세란 마음가짐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여러 차례 조언을 해주고 많은 도움의 손길을 내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느끼기에 내 자세는 쉬이 깊어지지가 않았다. 이유는 분명했다. 더 깊어지고 싶고, 잘하고 싶은 마음보다 변화에의 완강한 거부감이 내면에 더 크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지어놓은 한계를 넘어서는 일은 부담스럽고 버거운 힘겨루기의 과정이다.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일말의 자신감이 싹트는가 싶더니 이내 사그라들길 반복했다. 몸과 마음의 변화가 일으킬 파문에 애써 정립해온 균형이 깨질까 하는 두려움은 잘하고 싶고, 깊어지고 싶은 마음보다 항상 힘이 셌다. 부담스러운 힘겨루기는 항상 두려움의 승으로 끝났던 것이다. 사실 통증은 내 삶의 흔적이기도 했다. 통증은 나를 아프게도 했지만 분명한 이점을 줬다. 임용시험을 치르던 시기부터, 잠을 줄여가며 직장과 대학원을 병행하던 시기를 지나, 상사와 동료 간의 인간적 갈등이 주는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부터 까다로운 업무처리에 쏟아낸 정신력을 비롯해, 밤잠을 설치며 두 아이를 키워낸 시간과 워킹맘 생활까지. 통증을 담보로 나는 지금껏 많은 것을 이뤄냈던 것이다. 통증은 그 모든 긴장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은 몸의 흔적이다. 그러고 보면 아픈 게 싫으면서도 내려놓고 싶지 않은 건 내 미련인 게 분명했다.
사실 두려움은 직면하지 않고 회피함으로 생긴다. 눈 한번 꾹 감고 맞닥뜨리고 나면 생각했던 것보다 허무할 수도 있고, 괜히 겁냈다며 뒤늦게 자신을 책망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불필요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며 자신을 신뢰하지 못해 자기 의심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양철로봇 마냥 삐걱이는 몸을 어찌할 바 모르며 낑낑대던 시기와 조금씩 뚜둑 거림이 사라지는 과정이 있어 지금의 내가 있다. 그 모든 과정이 없었다면 섬세하게 근육을 조율하고 자세를 완성해 내 몸의 단단함을 찾는 방법과 고요함에 녹아들어 스스로 평안함을 찾아 긴장감을 덜어내는 마음 수련 방법을 어찌 찾을 수 있었겠나. 스스로 깊어지지 않았다고 하나 나도 모르는 사이 요가의 세계로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지금의 나는 의식하지 못한 작은 변화들의 총합인 것이다.
나를 채우고 있는 작은 변화들을 하나씩 들여다본다. 동일한 이름의 자세를 하고 있지만 어제의 자세와 오늘의 자세가 다르다. 심지어 방금 한 자세를 반복하더라도 그 자세는 완전히 같지 않다. 쓰는 근육과 힘의 정도, 집중력, 순간을 스치는 생각과 시시때때로 바뀌는 감정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일상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그 시간을 관통하는 마음가짐과 몸의 상태, 머리를 스치는 생각과 감정이 모두 다른 것처럼, 우리는 매 순간 작은 변화의 과정을 관통하고 있다.
비록 자기 의심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했더라도, 더 깊어지길 거부하며 통증과의 공존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나는 한 순간도 고여있던 적이 없었다. 꾸준하고 묵묵히 보내온 시간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나를 한 뼘 더 성장시켜 놓았다. 굳이 성장하려, 더 깊어지려 애쓰지 않아도, 그저 평범한 일상을 기꺼이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더 나아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