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동등한 시간은 어떤 모습으로 흘러가고 있는가
며칠 전, 식기세척기가 고장이 났다. 이런, 수리가 시급하다. 가전회사 A/S센터에 접수를 하고 가장 빠른 방문 일을 정했다. 그리고 오늘, 수리 기사님이 방문을 했다. 기사님은 식기세척기를 분해하고 빠르게 고장 난 곳을 찾아낸 뒤, 대략적인 수리 시간과 비용을 설명했다. 그리고는 40여 분간 말없이 수리에 몰두했다. 시운전을 마치고 기사님은 내게 식기세척기 사용 시 유의사항을 알려주며 다시 문제가 생기면 연락을 달라는 말과 함께 명함을 내밀었다.
.... 응?? 어쩐지 눈에 익은데...?
이 명함이라면, 분명 예전에 받은 적이 있다. 그것도 서랍장 어딘가에 같은 것이 적어도 두 장은 될 것이 분명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도 식기세척기 설치 일에 한 장, 빨래 건조기 수리 때 한 장을 받았을 것이다. 그제야 나는 고개를 들어 기사님의 얼굴을 주의 깊게 들여다봤다.
나는 얼굴 기록 남기기에 나름 열심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일 년에 한 번, 생일이 있는 달에는 항상 같은 사진관을 찾아 증명사진을 찍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사진관에 들어설 때면 꼭 일 년 전에도 느꼈을 긴장과 설렘이 기억나 몹시도 들뜨고 상기되었다. 전 년에 비해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지금 나는 괜찮은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지난 일 년을 되돌아보는 연례행사였지만 동시에 다음 일 년을 준비하는 마음 작업이기도 했다. 다시 일 년 뒤, 갖은 인상을 쓰고 잔뜩 찌들어 이 자리에 앉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려면 좀 더 웃고, 한 숨은 덜 쉬고, 억울함은 줄이고, 좀 더 둥글둥글하게 관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사의 셔터가 터지는 순간, 나는 지금 매 순간을 충실히 후회 없이 잘 살자 다짐하곤 했던 것이다.
수리 기사님을 배웅하고 현관문을 닫았다. 아마도 일 년 전에도 오늘처럼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똑같이 배웅을 했을 것이다. 그 사이 한 껏 숱이 준 머리칼과 주름 져 형태가 변한 눈매에서 기사님의 시간이 어땠을지 궁금해졌다.
흘깃 거울을 들여다봤다.
나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은 어떤 얼굴로 기록돼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