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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Mar 18. 2022

아빠가 없는 날엔 멸치 김밥과 국물떡볶이

  인생 최대 고민이 무엇이냐 물으면 나는 단연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오늘 저녁 메뉴요.”     


  아침을 먹으며 점심을 고민하는 것과 점심을 먹으며 오늘 저녁을 고민하는 일련의 연쇄적 의식 작용은 삶의 가장 원초적이고도 해결되지 않는 고질적 질문일 것이 분명하다. 먹을 것이 없던 시절도, 차고 넘치는 현대에도 솥뚜껑과 냉장고를 쉼 없이 오가는 모든 어머니들의 최대 고민거리는 먹거리가 아니겠는가. 오늘도 나는 과거로부터 단 한 번도 끊어지지 않았을 역사적 고민 속에 또 한 번의 고민을 더 하며 저녁을 맞이해야만 하는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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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야근!     


  아, 갑자기 머리가 맑아진다.

  남편의 야근 소식이다.      

  

 


  남편의 야근이 기쁠 일은 아니지만... 저녁 메뉴에서 어른의 입맛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반길만한 소식이다. (남편, 오해 길...)


  아이들은 뭐든 잘 먹는 편이긴 하지만 엄마가 해 주는 모든 음식들이 항상 맛있게 먹는 건 아니었다. 한국인의 밥상에 최적화된 아들은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깔끔한 나물 무침을 곁들인 토속적인 한식을 가장 좋아한다. 반면, 일찍이 밀가루 맛에 눈을 뜬 딸은 먹고 싶은 것을 물으면 항상 밥 대신 국수, 파스타, 라면, 떡볶이 라는 대답이 나온다. 두 남매의 입맛을 모두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아 아이들의 입맛을 맞추는 대신 “그냥 먹어”를 시전 하는 엄마지만, 오늘 같은 날 두 아이를 모두 만족시킬 정공법이 하나 있으니, 바로 멸치 김밥과 국물떡볶이다.     



바싹 달달하게 볶은 멸치반찬만 있으면 딱!



  김밥 김을 반으로 갈라 약하게 간을 한 밥과 짭조름한 멸치볶음을 넣고 돌돌 말아서 잘라낸 꼬마김밥은 아이들의 쌍 엄지 척을 받을 수 있는 몇 없는 메뉴 중 하나다. 오늘은 기름에 바싹 노릇하게 구운 쌀 떡볶이에 뭉텅뭉텅 썬 어묵과 양배추, 어정쩡하게 남은 노란 알 배추 몇 잎, 언제나 감동을 선사하는 반숙란 두 알을 넣고 육수와 약간의 고추장, 달달한 올리고당을 곁들인 국물 떡볶이도 했다. 오늘 같은 날은 “그냥 먹어”라는 말 대신, 다정하게 “맛있게 꼭꼭 씹어 먹어”라는 말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식탁에 앉은 아이들 반응이 볼만하다. 떡볶이를 입에 물고 “음~”을 연발하는 딸과 아무 말 없이 젓가락과 입만 바쁜 아들. 이 모습 보는 낙에 음식을 한다.


  오늘도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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