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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Jun 01. 2022

지방선거와 민주시민교육

여덟 살, 여섯 살의 투표 궁금증

  2022년 6월 1일, 제8회 전국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 공보물이 도착했다. 이미 지난 3월 대통령 선거로 '투표'라는 개념을 어렴풋이 갖게 된 아이들은 또 한 번 찾아온 선거에 잔뜩 흥분하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나도 투표할래!!!"


 (아직 어려서 안돼 아들...;;;)


  택배도 아니고 공보물을 반기는 아이들이라니... 그림이 좀 생소하긴 했지만, 이 기회에 일찍이 민주시민교육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아이들에게 광역시장, 구청장, 구의원, 교육감 별로 후보를 정리해줬다. 우리 지역은 시의원은 정원수 충족으로 무투표 당선이 확정된 관계로 공보물이 오지 않았고, 비례대표는 아이들 수준에 이해가 어려울 것 같아 제외했다. 대통령 선거에서 정당정치의 개념(색깔로 구분하는 수준)을 기억하고 있는 여덟 살 아들은 당시 대통령 후보들을 떠올리며 빨간 당, 파란 당, 노란 당을 나누었다. 여섯 살 딸은 공보물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과감하게 합격-불합격을 나눴다. 딸에게 합격-불합격의 기준이 뭔지 물어보니 '못생긴 사람은 탈락'이라고 한다. 그렇게 딸은 탈락된 후보들을 야무지게 모아 자기 책상에 들고 갔고, 잠시 뒤 색연필과 사인펜을 꺼내 예쁘게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속눈썹, 입술, 볼터치, 귀고리, 목걸이... 손이 보이면 네일아트까지... 그렇게 탈락된 후보들은 손샘물 선생님의 메이크업을 받아 블링블링하게 다시 태어났다.


 

  아래는 두 아이들의 의식의 흐름에 따른 선거 관련 질문과 답변이다.



Q1. 엄마, 투표는 왜 어른들만 해? 나도 하면 안 돼?

A1. 법에 만 18세 이상 어른들만 투표를 할 수 있게 돼있어. 어른은 아니지만 고등학생 형아들 중 일부도 투표를 할 수 있지. 너희도 나이가 들고, 신분증을 받을 수 있게 되면 그때부턴 투표를 할 수 있어.

(싫어!! 나도 할래!!! 빼에에엑!!!!!)


Q2. 엄마, 밖에 노래 틀고 마이크 들고 얘기하는 사람들 뭐 하는 거야?

A2. 선거운동하는 거야.(운동? 나도 운동할래!) 아니, 몸 튼튼 운동 말고;;; '나는 어떤 사람입니다. 저를 뽑아주세요.'하고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거지. (아, 전에 나한테 종이(명함) 준 아저씨도 운동하는 거야?) 어, 맞아. 모르는 어른이 웃으면서 말 걸어서 놀랬지? (어! 무서웠어!) 그땐 엄마도 좀 그랬어. 그런데 그렇게 해서 투표하는 사람들한테 '저 좋은 사람입니다. 일 잘합니다. 저 뽑아주세요.'하고 인사하는 거야. 인사하는데 웃어야지 화낼 순 없잖아. (그것도 그러네.)


Q3. 엄마, 이 아줌마 예뻐~~~

A3. 어, 그렇지? 근데 엄만 그 아줌마 안 좋아해.


Q4. 근데 무슨 일해?

A4. 놀이터 바닥 수리하고, 도로 공사하고, 나뭇가지 치는 거 봤지? (어!) 시민들이 불편하고 위험할까 봐, 좀 더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고치고, 정리하는 거야. (아, 그 아저씨들이 그 일 하는 거야?) 아니... 직접 오는 건 아니고... 새로 만들고, 고치고, 수리하는 데 재료비랑 공사비랑 일 하는 아저씨들 일당이랑, 그게 다 돈이잖아. 그 돈이 어디서 나오겠어? (아, 그 아저씨들이 내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 엄마 아빠랑, 시민들이 낸 세금이야. 그런데 세금을 펑펑 쓸 수는 없잖아. 엄마가 돈 있다고 너희 간식 막 다 사주는 거 아닌 것처럼.(어. 근데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 내일 사줄게. 아무튼! 세금을 펑펑 쓸 수는 없으니까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써야 하는지를 의논하고, 결정하고, 살펴보는 일을 하는 거야.


Q5. 뽑히면 좋아?

A5. 좋으니까... 하려고 하겠지...?


Q6. 엄마 이 아저씨도 화장해줘도 돼?

A6. 어, 이왕이면 예쁘게 해 줘. 이리 줘봐. 이 아저씨는 아이라인도 해줘야겠다.


Q7. 엄마는 누구 뽑을 거야?

A7. 글쎄... 달님이가 화장 끝내면 살펴보려고... 엄마가 생각했을 때 '이건 좋은 약속이다.' 싶은 사람 뽑을 거야.


Q8. 약속? 무슨 약속해?

A8. 어. 종이 안에 살펴보면 '저는 ~~를 하겠습니다.'라고 약속을 적어놨어. 사람마다 마음에 드는 약속을 보고 투표를 하는데, 그중에 제일 많은 사람이 '이거 좋다' 한 사람이 당선이 되는 거야. 친구들끼리 놀 때도 달리기랑 모래놀이 중에 다른 친구가 많이 하는 거 하게 되잖아. (난 달리기 할래.) 그래, 친구들끼리는 내가 하고 싶은 거 해도 되는데, 투표는 안 그래. 표를 많이 받는 사람 당선되는 거야.


Q9. 6월 1일은 학교 안 가?

A9. 응. 학교만 안 가는 거 아니고 아빠도 회사 안 가.(유치원도?) 안 가. 학교에 투표소가 차려지기도 하고, 시민들 전부 투표 열심히 하라고 공휴일로 지정된 거야.    


Q10. 재밌겠다. 선거 또 하면 좋겠다.

A10. 딱히 재밌진 않은데... 4년 있으면 또 해. 대통령은 5년 있으면 또 하고.



  그 외, 대의 민주주의와 세금의 쓰임, 투표권 한 장의 값어치와 좋은 후보를 뽑아야 되는 이유 등등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싶었지만, 아직까지 시기상조인 듯하여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했다. 사실 열심히 눈높이에 맞게 설명해줬지만, 글쎄... 어디까지 이해를 했는지도 모르겠고.



  이번 지방선거 사전투표율이 20.62%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는데, 본 투표까지 최종 투표율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공공연하게 정치혐오를 드러내는 사람들, 때로 특정 정당을 지지하며 기꺼이 목소리를 높이고 각을 세우는 사람들이 있어 정치에 대한 소신과 의견을 툭 터놓고 말할 수 없는 토양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아주 작은 모래알처럼 우리 삶 곳곳에 촘촘히 박혀 있는 것이기에.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허투루 날려버리는 일은 자신을 위해서라도 하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 그것이 최선이 아닌 차악일지언정 말이다.


  날이 밝으면 아이들의 손을 잡고 투표소에 가려한다. 엄마가 누굴 찍을 건지는 끝까지 비밀에 부칠 예정이다. 이래 봬도 명색이 비밀투표니까. 나의 가벼운 투표지 한 장이 나와 내 아이와 내 가족의 삶에 긍정적인 결과로 돌아오길 기대하며, 모두들 즐투!!(즐거운 투표)





+ 덧붙임

: 딸의 공보물 메이크업 컬렉션은 며칠간 거실에 전시를 해 두었다가 정신이 사나워지는 관계로 아이가 없는 틈을 타 슬쩍 치워버렸다. 별 말이 없는 걸 보니 본인도 더 이상 아쉽진 않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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