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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이는 오늘도 교실에 가방을 던져놓고는 옆 반으로 홀랑 가버립니다.
하루는 똑똑이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이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원이는 왜 맨날 옆 반가서 놀아?"
"여기서 제가 누구랑 말을 해요!"
"아... 그래...? 선생님이랑 하면 되지~"
"싫어요!"
그러고는 또 나가버렸지요.
아이의 말을 듣고 보니 이해가 됩니다.
저희 반 다섯 명의 아이 중 똑똑이를 제외한 네 명은 대화다운 대화가 되지 안거나(반향어), 언어를 갖지 못한 아이들이거든요.
기본적으로 서로에게 관심도 없고, 의사소통도 전혀 이뤄지지 않으니, '쿵'하고 말하면 '짝' 하고 반응하는 일 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죠.
아이는 대화가 가능한 친구를 찾아 그렇게도 옆 반을 들락거렸나 봅니다.
아이가 마음을 못 잡는 이유는 또 하나 있었습니다.
바뀐 담임선생님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지요.
발달장애 특수학교는 아이들의 정서적 안정과 행복감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아이들이니만큼, 할 수 있는 만큼, 충분히 성취 가능한 범위 안에서 작은 성공경험을 추구하는 데 교육적 역량이 집중돼요.
유아들을 대상으로 한 놀이중심 교육과정과 흡사하기도 합니다.
맞기도 하지요.
아주 더딘 속도로 성장하는 아이들의 대다수가 정신적인 유아 수준에 머물러 있으니까요.
환경이 이렇다 보니 똑똑이들은 잠재된 역량을 채 펼쳐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저는, 머지않아 사회로 진출해야 할 똑똑이를 동화 속 행복한 세상에서만 키울 수가 없습니다.
사실 똑똑이는 정말 장점이 많은 아이예요.
우선, 그림을 정말 창의적으로 잘 그려요.
아이의 그림 그리는 손은 늘 거침이 없습니다. 자기가 그리고 싶은 게 뭔지, 표현하고 싶은 게 뭔지 고민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그려내는 금손을 가지고 있어요.
클레이 만들기는 또 얼마나 잘하게요. 조물조물 클레이를 만져 좋아하는 캐릭터를 구현하는 데 전문가 저리 가라 할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다만, 인내심 부족, 여느 사춘기 아이들과 같은 종잡을 수 없는 감정 기복, 제 마음대로 하려는 고집이 마음에 걸려요.
아이의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싫다는 데 끝까지 참고 해본 경험이 없거든요.
하기 싫고, 지겨워지면 중간에 포기하면 그뿐이에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똑똑이는 '인내'를 가지고 끝까지 마무리해 보는 '성취'의 경험이 매우 적습니다.
그리고 인내를 기반으로 한 성공경험의 부재는 아이를 성장시키지 않습니다.
성공경험의 부재.
그렇습니다. 여기가 시작점이에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지만 쉽게 질리는 똑똑이에겐 다른 무엇보다 인내의 열매가 필요해 보입니다.
어느 날은 급훈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요.
"벽에 붙은 것 말고, 우리 반에 딱 맞는 급훈이 뭐가 없을까?"
"있잖아요. 선생님이 자주 말하는 거!"
"... 그게 뭐지?"
"그거요. '눈을 착하게 뜨자.'요."
사실 전혀 교육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이 말은 처음엔 우스갯소리였어요.
저희 반엔 똑똑이 이외에
환경 재구성(이것저것 손이 닿는 대로 쏟아내고, 뒤집어엎음)이라는 고상한 취미를 가진 아이와,
시선의 창조적 전환(아무 곳에 드러누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아이가 있거든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급할 것 없는 뼈대 깊은 양반집 자제분(움직임이 극히 없거나, 느림)도 한 분 계시고요.
아, 영화 아저씨의 주인공에 빙의되어 '한 놈만 패는' 분도 계시네요.
어쨌든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실에선 아이를 진정시키거나 자제시키거나, 다급히 언성을 높일 일이 많습니다.
말도 못하는 아이들이 사사건건 선생님이 막아서니 화가 날 만도 하지요.
'눈을 착하게 뜨자.'는 말은 서슬 퍼렇게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는 아이들을 달래며 하는 말이었어요.
"그래. 그러자. 선생님이 준비해 놓을게. 같이 꾸밀까?"
"네! 좋아요!"
똑똑이의 입에서 처음으로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