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요! 선생님은 왜 저한테만 그래요?!"
교실 문이 신경질 적으로 열립니다. 아이가 또 옆반으로 도망을 갔어요.
특수학교에는 장애정도와 성향, 특성만큼이나 다양한 부류의 아이들이 모여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똑똑이'들이죠.
상대적으로 경증의 장애를 동반하고, 일상생활에 전혀 혹은 거의 지장이 없고요,
학습도 잘 되는 아이들입니다.
똑똑이들은 사연이 많아요.
일반학교 특수학급에 다니다가 부적응으로 중도에 전학을 오는 경우도 있고요,
장애인시설에서 지내고 있는 아이가 다른 중증의 아이들과 함께 특수학교에 입학하기도 합니다.
특수학교 생활은 전반적으로 행복해요.
학습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되고, 수업도 거의 체험위주로 이뤄지기 때문이죠.
대다수의 수업은 기능적 생활능력 향상을 목표로 합니다.
혼자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최대 목표예요.
그렇다 보니 아이들의 학교생활은 대부분 행복하죠.
자신들의 장애를 누구보다 잘 이해해 주는 선생님들, 친구들,
내 능력에 맞는 과제와 딱 그만큼의 성취, 작은 행동 하나에도 언제든 터져 나오는 폭풍 칭찬들.
아이들에겐 정말 환상적인 곳이에요.
물론 다른 친구의 의도치 않은 공격에 크게 한방 얻어맞고 한 바탕 눈물바람이 나는 날도 많지만요.
똑똑이들의 딜레마는 여기에 있어요.
이 아이들은 대다수의 중증 장애학생들과 다른 속도로 성장합니다.
네, 마음의 성장요.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도 사춘기를 피해 갈 순 없어요.
아이의 장애가 자아정체성의 발달이라는 청소년기 최대 과업을 막아줄 수 없습니다.
중, 고등학교 시기가 되면 똑똑이들의 정체성에도 여지없지 변화가 찾아오고 맙니다.
앞서 교실을 뛰쳐나간 아이는 저희 반 똑똑이예요.
저희 반에서 유일하게 어른 수준의 대화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할 수 있는 아이입니다.
일반학교 특수학급에 배치되어도 친구관계에 큰 문제가 없을 정도로 괜찮은 친구인데,
이차저차 한 사연으로 특수학교를 다니고 있어요.
아이는 초등과정 내내 학년 최우수 학생으로 인정을 받았어요.
선생님들의 인정과 사랑도 듬뿍 받고 중학교로 올라왔습니다.
최근 아이는 사춘기가 오면서 자신의 장애에 대해 진지하게 인식하기 시작했어요.
스스로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시기가 왔습니다.
혼란도 온 것 같아요.
자기가 보기에도 옆에 있는 다른 친구들과 자기는 다르거든요.
그렇다고 일반학교로 전학을 가기는 싫습니다.
'장애인'인 자신이 비장애인 또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를 함께 다니는 건 두려운 일이니까요.
거기다 이미 초등학교 6년을 특수학교에서 다니느라 비장애학생들과 통합되어 본 경험이 없어요.
통합 경험이 없는 중학생 아이가 비장애인들과 함께 학교를 다닌다는 건,
영어를 한 마디로 못하는 토종 한국인이 미국 한가운데 떨어져 어울려 살라는 말보다 무서운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요즘 아이는 마음이 많이 힘들어 보입니다.
학교에서 중증의 다른 아이보다 잘한다는 이유로 마냥 칭찬을 듣는 일도,
이제와 스트레스받으며 하기 싫은 공부를 하는 것도,
아무것도 성에 차지 않아요.
아이는 그저 편안하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칭찬이나 받는 익숙한 학교생활에 안주해 버리고 싶으면서도,
다른 아이들과 동격으로 대접받기는 싫은 것 같죠.
그런 아이에게 2학기 시작과 동시에 호락호락하지 않은 담임선생님이 찾아왔습니다.
네, 저요.
저는 특수학교에 있다고 아이들을 아기처럼 키우고 싶진 않아요.
특히나 취업을 하고 사회에 나갈 가능성이 큰 아이일수록 자신의 몫을 할 수 있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증의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에게는 안전한 환경을,
성장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아이에게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렇게 혼란스러운 사춘기 아이와
아이의 내면에 본격적으로 성장촉진제를 맞추고 싶어진 선생님의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 시작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