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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Apr 22. 2022

'인연'이란 이름에 대한 짧은 고찰

  도로에서 이상한 차 한 대를 발견했다.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굉장히 이상하고 낯설며 이질적인 문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는 빈집정리 전문 업체의 작업 트럭이었고, 험한 작업현장을 반영하듯 온통 상처와 녹슨 흔적, 먼지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트럭은 전체가 하나의 광고판 인양 형형색색의 시트지로 도배되어 있었는데, 거기엔 다음과 같은 단어들이 나열돼 있었다.      


 빈집 정리, 유품 정리, 골치 아픈 집 철거   


  저 ‘인연’이란 단어는 자리를 잘 못 찾은 것이 틀림없다. 트럭을 보자마자 몇몇 신문기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극빈층 무연고 사망자의 쓰레기 더미 집을 청소하는 특수 청소 기사의 인터뷰나, 돌봐주는 가족 없이 쓸쓸히 저물어가는 단칸방 노인의 모습, 주인 없이 폐허로 남겨진 시골집들. 그 위에 오버랩되는 빈집 철거 업체의 낡은 트럭.     


  아이러니하게도, 트럭은 그 자체로 인연들에 외면받아 천덕 꾸리기 신세로 전락해버린 어떤 인생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지나간 인연들을 소화시키지 못한 채 그대로 낡고 녹슬어버린 양철 덩어리. 그리고 그 양철 덩어리는 지금 다른 이들이 남긴 인연의 흔적을 지우고 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갑자기 처연해졌다.      


  사실 ‘인연’이란 단어만큼 인간사를 압축해 놓은 단어가 또 있을까. 거대한 사회 안에서 자아를 키우고 존재를 깨우치며 삶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모든 여정에 인연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으며, 동시에 스치는 인연으로 아프고 상처받고 아쉽기도 하기에 또 이만큼 허무한 게 어디 있으랴. 하물며 잠시 스친 트럭 한 대도 이렇게 씁쓸한 뒷맛을 남기니 말이다.      


  세상 흔한 단어 하나가 새삼 서글프고 애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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