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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May 25. 2022

아이의 눈은 순수한..가?

  여섯 살 딸아이는 요즘 유치원 등원 길에서 이런저런 간판과 현수막 읽기에 한껏 재미를 들였다. 아직 한글에 관심만 많은 단계라 유창하게 읽지는 못하고 몇몇 아는 글자만 쏙쏙 빼서 띄엄띄엄 읽는데, 오늘은 글자를 읽다 말고 갑자기 한 현수막 앞에 멈춰 섰다. 딸은 현수막에 프린트된 광고 모델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고, 한참을 살핀 뒤에 확신에 찬 듯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엄마!! 엄마!!! 이 삼촌 아빠랑 닮았어!!"




최수종 배우님... 죄송합니다...



뭐...? 도대체 어디가...?


"...아...그런...가? (눈 두 개, 코 한 개, 입 한 개...?)" 



  생각해보니 딸의 자체 콩깍지 필터가 작동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몇 달 전, 어느 한 식당에 느지막이 점심을 먹으러 갔을 때 일이다. 우리 가족은 방 한편에 놓인 4인 좌식식탁에 자리를 잡았는데, 마침 내 머리맡에 강소라 배우의 청순한 얼굴이 커다랗게 인쇄된 한 주류광고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그날도 딸은 강소라 배우의 얼굴을 유심히 지켜본 뒤, 뭔갈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 


 "엄마!! 엄마!!! 이 언니 엄마 닮았어!!!"



강소라 배우님......... 죄송합니다...


..... 뭐라고...??!!! 어디가......!!



  딸의 자다 봉창 두드리는 소리에 남편은 표정관리할 생각도 없는 듯 잔뜩 비웃음 섞인 얼굴로 나를 바라봤고, 의도치 않게 머리맡의 강소라와 나란히 투샷이 잡히는 구도 아래 나는 민망함을 숨기려 "뭐?! 왜?!!!!"를 남발하며 버럭 거릴 뿐이었다. 딸의 확고한 표정과 아들의 무표정한 눈빛, 남편의 비웃음 사이로 잠시 뒤 식사가 나왔고, 그날만큼은 늦게 나온 음식에 전혀 불평불만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민망한 상황에 이모님의 표정까지 살피게 되지 않아서 어찌나 다행이었는지. 




  아이는 순수한 눈을 지녔다던데... 우리 딸은 도대체 무얼 본 것일까...

  딸의 미적 기준이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엄마 아빠 한정 애정이 듬뿍담긴 자체 필터 덕분에 난생처음 최수종과 강소라가 되어 봤다.


  그렇게, 우리 집엔 최수종과 강소라가 산다.   (부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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