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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Apr 27. 2022

나도 로또가 되면 좋겠다

이왕이면 1등

  우리 동네에는 로또 당첨자가 많이 나오기로 유명한 명당 편의점이 있다. 소문을 듣자 하니 최근 로또 1등이 또 나왔나 보다. 올해 들어 벌써 두 번째 1등 소식이다. 벌써 이번 당첨자가 사는 아파트며 당첨자의 직업은 무엇인지, 당첨금을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까지 소문이 파다하다. 아이를 유치원에 등원시키고 돌아오는 길. 골목을 따라 길게 조성된 학원가 건물들을 지나치며 ‘이런 건 얼마나 하려나’하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한 건 내 의지와는 무관한 것이라 믿고 싶다.     


  일주일에 한 번, 남편은 잊지 않고 로또를 샀다. 나는 사실 복권에도, 돈에도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어서 매주 잊지 않고 판매점을 들러 로또를 사는 남편의 성실함이 신기할 때가 많다. 하루는 남편에게 왜 번거롭게  매주 복권을 사는지 물은 적이 있다.      


  “좋잖아. 일주일 동안 기대와 행복을 품고 다닌다는 게.”     


  음... 글쎄,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상심이 더 클 것 같은데. 썩 의아함이 해소되진 않았지만, 반박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기로 했다. 본인의 행복이라니 뭐. 커피 한잔 값으로 일주일간의 행복을 살 수 있다면 나름 가성비가 좋기도 하거니와 나는 모를 가장의 무게를 가뿐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이 작은 종이조각은 그것만 하더라도 본래의 역할을 차고 넘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딱히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며칠 전, 이번엔 남편이 내게 물었다.      


  “로또 1등 되면 자기는 일 계속할 거야?”     


  나는 콧방귀를 뀌며 일단 되고나 보자며, 그리고 요새 로또 1등 돼도 퇴직은 꿈도 못 꾼다며 웃어넘겼지만, 지난주 내내 야근에 시달려 한껏 핼쑥해진 남편의 얼굴을 보니 질문의 의도가 뭔지 알 것도 같았다. 퇴근하자마자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낸 뒤 그 자리에 서서 시원하게 들이켜는 폼이, 남편이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짐작이 갔다. 뒤늦게 코로나19에 확진된 팀원 두 명과 개인사로 출근하지 못한 한 명의 일까지 홀로 고군분투하느라 힘들었을 게다. 맥주 한 캔이 위로가 된다면 그것 또한 다행이었다.      


  “왜~ 로또 1등 되면 퇴사하게?”

  “말이 그런 거지. 자기는 일 계속하고 싶어?”     


  이번에도 질문의 의도는 분명했다. 질문은 형식적이고 내용과 답은 정해져 있다. 다만 남편은 내게 있어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물은 것이다. 생업이라는 건 무엇이 되었든 늘 고달픈 것이니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일을 하되, 이왕이면 그 일이 생업(生業, 살아가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 적업(適業, 능력이나 적성에 알맞은 직업)이면 좋겠다고. 단지 먹고살기 위해 하는 밥벌이가 아니라 나의 삶과 인간됨,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가는데 보탬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 다만 경제력을 논외로 하기엔 현생은 녹록지 않은 지라, 상상이든 망상이든, 로또 1등이 되면 정말 기쁘기는 할 것 같다.       


  저녁 준비를 마치고 나도 맥주 캔을 꺼내 들어 남편을 거든다. 그리곤 로또 1등이 되면 무얼 할 것인가에 대해 꽤나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근데, 그런 날이 오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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