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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May 11. 2022

설거지남, 퐁퐁남이 뭔데?

... 그게 어때서?

  어린이날을 빙자한 부모의 힐링 캠프는 아이들이 모두 잠든 깊은 밤에 시작된다. 한껏 서늘해진 밤공기를 들이키며 한 손엔 캔 맥주, 또 한 손엔 육포를 들고 머리 위로 쏟아지는 별빛을 의식하며 불멍을 하는 건 캠퍼들에겐 일종의 의식과도 같다. 한 밤 중의 불멍은 언제나 옳다. 거기에 시답잖은 농담이 곁들여지면 금상첨화다.


  남편이 뜬금없이 말을 꺼냈다.(거의 모든 대화가 뜬금이 없긴 하지만)


  "설거지남이란 말 알아?"

 

  설거지남...? 초식남, 건어물남... 뭐 그런 건가?


  "아니, 모르는데. 그게 뭐래?"

  "요새 유행하는 말이라는데, 설거지남, 퐁퐁남이라고... 남중, 남고, 공대 출신의 순진한 남자들이 결혼해서 와이프한테 잡혀 살며 내내 손에 퐁퐁 묻히며 설거지나 하는 경우를 말한데. 근데... 왜 갑자기 눈물이 나지?"


  ... 그러게... 왜 눈물이 난데... 눈물 훔치는 시늉을 하며 씩 쪼개는 걸 보니... 조만간 엉덩이 근처에서 사달이 날 것 같은데...


  남중, 남고, 공대의 완벽한 스펙을 소유한 이 설거지 전문남은 생소한 신조어에 어지간히 뜨끔했었나 보다. 뭐... 뜻을 듣고 나니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조건인 건 분명한 듯싶다만.


  "근데, 그게 뭐가 문제야? 설거지가 뭐가 어때서?"


  농담으로 시작해서 다큐로 받아들이는 아내의 반박에 남편의 부연설명이 길어졌다. 설명인즉슨, 일찍이 매력 넘치고 인물 좋은 나쁜 남자는 다 만나본 여성이 결혼상대를 고를 때는 상대적으로 여성에 대한 경험이 적고 순진하며 부리기 쉬운 남자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혼을 하면 남자는 밖에서 일은 일대로 하고 집에선 퐁퐁 머금은 수세미를 들고 열심히 설거지를 하게 된다는... 일종의 자조 섞인 말이란다. 비슷한 말로는 '남편은 돈 벌어오는 기계'를 꼽을 수 있겠다.


   음... 첫 번째 조건은 여중, 여고, (여초현상 심각한 학과의) 대학을 졸업한 아내의 입장에서 '연애 잘하는 애들이 결혼을 잘한다더라' 류의 고전적인 통념에 비춰 봤을 때 나름 일리가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유사한 사례는 개인적인 경험에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번째 조건은 도무지 그런 말을 왜, 어떤 이유로, 그런 식의 의미부여를 했는지 나로선 도통 수긍이 되지 않았다.   


  조건이 어떻든 결혼은 당사자의 동의와 사랑을 기반으로 한 것인데 가정과 육아 공동체를 꾸리면서 고작 설거지 따위로 스스로의 존재감을 그리 깎아내릴 필요가 있을까. 당사자들끼리 좋아서 한 결혼인데 손에 흙을 묻히든, 퐁퐁을 묻히는 무에 그리 대수인가. 거기다 전국에 맞벌이 가정의 수가 얼마인데. 무엇보다 이건 보편적 남성성을 깎아내리는 일종의 비하 발언이며, 평범하게 만족스러운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까지 뭉뚱그려 폄훼하는 말이기도 하다. 우스갯소리로 소비하기엔 너무 소모적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배우자가 과거에 내게서 느꼈을 '나만의 매력 포인트가 무엇이었던가'를 상기시켜 보는 것이 훨씬 건설적일 것이다. 자조적으로 비아냥 대기보단 일말의 자존감을 돋우는 게 훨씬 가치 있지 않은가.


  생각이 거기에 미치고 나니 갑자기 남편이 괘씸해졌다.

  아니, '설거지남'이란 단어에 눈물 훔쳐 보이는 과감한 시연까지 하며 동조했단 말이지?  '돈 벌어오는 기계 취급은 받고 싶지 않다' 길래, 그런 기분을 느끼지 않도록 남편과 아빠의 자리를 공고히 만드느라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이건 나에 대한 도전이고 배신이야!!


  나는 불빛에 붉게 물든 남편의 얼굴을 조용히 노려봤다.   

남편은 시답잖은 말 한마디의 파장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 채 맥주만 호록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불 앞에서 멍 때리기는 끝났다. 남은 건 이글이글 타오르는 열기뿐...

칫! 어디 한번 두고 보자...  

기다려라! 설거지와 세탁기를 돌리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곧 만끽하게 해 줄 테니...



캠핑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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