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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Mar 10. 2022

베리 이야기 1

우리가 사랑하는 작은 블루베리 나무 

  여섯 살 아들의 꿈은 농부였다. 할머니 시골집 나들이를 할 때면 아들은 늘 제일 먼저 뒷밭으로 달려갔다. 할머니가 광주리를 들고 뒤를 따르면, 돌아올 땐 광주리 가득 수확한 작물들이 담겨있었다. 싱그러운 풋내 가득한 방울토마토와 싱싱한 가지, 오이, 고추, 부드러운 상추와 새콤한 앵두알. 아들은 자기 손으로 딴 작물들을 자랑스레 내어 보였고, 직접 수확한 찬거리로 가득한 시골밥상에 자부심을 느꼈다.

  하루는 큰맘 먹고 할머니 텃밭에 당근과 오이를 심기로 했다. 야무지게 호미를 쥔 아들은 조심조심 땅을 파고 할머니가 알려준 대로 구덩이마다 작은 모종을 옮겨 심었다. 토닥토닥 흙을 덮어주고 끙끙거리며 물 바구니를 옮겨 첫 물을 흘려주었다. 그리곤 식물의 여린 잎을 애정 어린 손길로 어루만졌다. 며칠간 이어지던 폭염에 직접 심은 당근 잎이 타들어가면 꼭 그만큼 타들어갈 것 같은 표정으로 부지런히 물을 뿌리던 아이였다. 

  한동안은 집 근처 공원에서 바지 주머니 가득 도토리를 주워왔다. 아들은 겨울잠 자러 가는 다람쥐마냥 도토리를 모아 집안 도토리 바구니를 열심히 채웠는데, 하루는 가득 모인 도토리를 흐뭇하게 보며 말했다.       


  “엄마, 우리 이거 심자!”

  “어? 심어? 도토리를???”

  “어! 도토리를 심어서 커다란 도토리나무를 키우는 거야. 그러면 거기서 도토리가 많이 열릴 거 아니야? 도토리를 많이 따서 묵을 만드는 거지!"

  "응? 아하하... 멋진 생각이구나.”

  “응! 멋지지?”     


  아들은 잔뜩 기대에 부풀어 눈을 반짝였다. 아들은 자기가 맘먹은 일은 쉽게 잊지 않는데, 본인의 기대만큼이나 난처해진 엄마의 심정일랑 꿈에도 모르는 게 분명한 표정이었다. 그리곤 며칠 동안 도토리를 심는 일로 엄마를 채근했다. 아들의 등쌀에 못 이겨 도토리 싹이라도 틔워 보려던 찰나, 생각지도 못한 구원자가 나타났다. 아들의 작은(?) 소망을 들은 아빠가 한 가지 대안을 내놓은 것이다. 

    

  “아들, 블루베리 나무는 어때?”


  아들의 눈이 똥그래졌다. 


  “우와! 집에서 블루베리 나무 키울 수 있어?!!”     


  일 년 내내 맛있는 과일을 먹기 위해 아주아주 커다란 과수원을 만들겠다던 아들이 마다할 리 없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아빠와 아들의 합의 끝에 두 부자는 인근 농원에서 작은 블루베리 묘목 한 그루를 사 왔다. 아담하고 귀여운 삼 년 생 블루베리 나무였다. 아들은 잔뜩 신이 나서 말했다.

      

  “엄마, 오늘부터 이 나무는 베리야. 베리.”     


  그렇게 베리가 우리에게 왔다.


                                                                                          - 2020년, 봄이 올 것 만 같던 늦은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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