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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May 24. 2022

인간관계 미니멀리스트로 살려합니다

스트레스의 9할은 관계로부터 비롯되니까요

  코로나가 할퀴고 간 흔적들은 잔혹하고도 쓰라린 것이지만, 당장 눈앞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그나마 주어진 삶을 어떻게든 긍정하는 것 말곤 아무런 선택권을 가지지 못하는 나란 인간에게 그래도 코로나 시대의 긍정할 거리를 한 가지 꼽으라 하면 나는 주저 않고 '관계 다이어트'라고 말할 것이다. 


  도무지 인기가 식을 줄 모르는 MBTI 성격유형검사(참고로, 2차 세계대전 중 적재적소 효율적인 인력배치를 목표로  개발된 검사이기도 하고, 인격을 도구로 활용한다는 점에 반감이 들기 때문에 개인적으론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다. MBTI는 재미로만 보자!)의 에너지 방향성 지표로만 보자면 나는 독보적 E형(외향형) 인간이다. 주로 외부활동과 넓은 인간관계 안에서 열정과 활력을 찾는다는 E 유형이지만, 통상적인 해석이 무색하게도 나는 내게 주어진 여유시간의 대부분을 혼자 있는데 할애하길 선호한다.  


  어릴 적부터 유달리 주변인에게 눈치를 많이 보기도 했고, 사회에서 규정한 일정 틀과 기준에 스스로를 옥죄기도 한지라, 일찍이 남이 정해놓은 허울 좋은 기준과 평가에 집착하는데 신물이 났달까. 때로는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기준에, '장녀'라는 가족 내 역할에, 친구관계에서 오는 '의리'라는 압박에, 그 외 사회가 부여한 당위적 역할 기준에 숨이 턱턱 막혀올 때면, 어째 규격화된 박스 안에 어떻게든 몸을 구겨 넣는 애처로운 아이를 목도한 것 마냥 속에서 열이 후끈하게 올라와 가슴이 답답해 졌다. 특히나 웃고 떠들고 왁자지껄하게 보낸 시간 뒤에 찾아오는 공허함이 싫었다. 경계 없이 앞뒤 재지 않고 신나게 쇼핑을 한 뒤 집에 와서 잘 포장된 껍데기를 벗겨 옷걸이에 옷을 걸어놓는 순간 찾아오는 허망감과 비슷하달까. 목적도 없고 눈치는 봐야 하고 신경 쓸 것만 많은 영양가 없는 관계들이 재미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의 파이를 필요 이상으로 타인과 공유하지 않기로 했다. 그 시간에 나와 나를 이루는 세계와 나를 있게 한 사람들에 좀 더 집중하기로 했다. 







  생각보다 세상은 개인의 세계에는 관심이 없다. 무수한 개인의 세계가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사회지만, 정작 서로는 나와 맞물려있는 다른 사람의 세계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얼마나 다행인가. 공동체의 해체던, 파편화된 개인화가 야기하는 여러 문제던 간에, 인접한 서로의 세계를 함부로 들여다보지 않는 형태의 새로운 도덕적 선()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특히나 외부의 관심이 고맙기보단 압박으로 느껴질 때는 적당한 무관심이 반갑기도 한 법이다. 



  두 아이를 키우다 복직하며 몇 가지 다짐한 것이 있다.


  첫째, 굳이 좋은 사람이 되려 하지 말 것

  둘째, 싫은 건 싫다고 거절할 용기를 가질 것

  셋째, 선의를 베푼다면 그건 전적으로 나의 의지로 행할 것

  넷째, 타인의 긍정적 평가를 바라지 말 것

  다섯째, 타인의 행위에 함부로 의미 부여하지 말 것

  마지막으로, 다른 누구도 아닌 '나'로 살 것


  타인의 사회적 관계 유지를 위해 필요 이상의 관심 쏟는 건 그 누구의 요구도 아닌 나 자신의 욕망일 따름이다. 주체가 내가 되면 모든 게 편해진다. 스스로가 호구가 된 것 같은 기분이라거나, 내가 뭔갈 잘 못 한건 아닌지 조마조마할 이유가 없어지고, 억하심정에 속 상할 일도 줄어든다. 타인의 요구에 필요 이상으로 예민할 필요도, 내 시간을 저당 잡혀 피해를 입는다는 생각을 할 필요도 없다. 오롯이 남겨진 시간의 틈에 크게 숨을 들이켜고 또 하루치의 자신을 건져 올리며, 오롯이 '나'로 서있을 뿐이다. 그리고 불필요하게 소진되지 않음으로 나와 내 주변을 이루는 것들에 보다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큰 아이의 초등 입학이 준 또 한 번의 기회 덕분에 나는 요즘 휴직의 시간을 만끽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도 해제되고 아이가 하교하기 전까지는 자유의 몸이라 여차하면 그간 못 본 사람들과 시끌벅적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되도록이면 지인과의 약속을 잡지 않고 홀로 남기를 택한다. 나의 일과는 별다른 변수 없이 일정하게 반복된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을 보내고, 등산을 하고, 잠시 숨을 돌린 뒤 요가 수련을 하고, 간단히 점심을 먹고, 짬짜미 집안일을 하고, 귀가한 아이들을 돌보고, 저녁 준비와 아이들 공부, 육아 퇴근을 하면 고요의 시간을 맞는다. 그리고 오늘도, 다음날도 같은 날을 맞이한다. 


  온전히 내 앞에 놓인 시간들을 사랑한다. 일정하게 반복되고 고요할 수 있는 자유가 있음에 감사하다. 버팀과 집착, 억압과 압박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어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오롯이 나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준 아이들이 있어 다행이다. 


  육아는 족쇄인 동시에 자유다. 엄마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사회적 자아를 움켜쥐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나'라는 사람과 '자녀'라는 관계 속에 진정한 의미의 개인적 자유를 선사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두 아이는 그 자체로 행운이다. 


  진정한 나와의 대화 속에서 나는 누구인지, 어떤 삶을 지향하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내 기분은 무엇으로 움직이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끊임없이 알아간다. 나와 내 세계를 이루고 있는 것들. 내 앞에 놓인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지에 대한 고민이 주는 행복. 그 안에 충만한 나를 만난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인간관계 미니멀리스트로 살 예정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와 좀 더 친해 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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