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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Jun 03. 2022

어른이 된 금쪽이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우리 모두의 내면아이에 대하여

  이 글은 가히 '열풍'이라 불릴 만한 '오은영 매직'과 관련된 조선일보의 기사를 읽고, 한 때는 대학원에서 나름 열심히 공부했던 상담심리 전공자로서의 지극히 개인적 생각을 정리한 것임을 먼저 밝힙니다.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2/05/28/W2TBHLMVC5HQ5EF6YQMMRJPKLI/





  시작은 원가족에서 비롯되었을지 모른다. 부모의 손길이 생존과 직결되는 영유아 시기의 아이에게 '부모'라는 세계는 실체를 알 수 없는 세상의 전부이자 전 우주와 같다. 부모의 그늘 아래에서 숨을 쉬고, 밥을 먹고, 키가 크고, 머리가 크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온, 어쩌면 보편적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개별적인 개인의 역사는 스스로를 '분별력 있는 어른'이라 칭하는 지금까지도 각자의 삶 속에 유효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부모의 미성숙한 양육태도 때문이라던지, 가족 안에서 반복적으로 노출되어 자연스레 체득되어 버린 행동양식이 만든 부적응이랄지, 혹은 나도 모르는 사이 깊은 내상으로 남아버린 특정 경험이랄지. 원인이 무엇에 있든 간에 나름대로 열심히, 치열하게 살다 보니 어느새 '사회적 어른'이 되어버린 금쪽이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내 어렴풋한 기억에 따르면 아마도 내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그러니까 대략 17,8년 전후 '자존감'이라는 용어가 사람들의 입에 심심찮게 등장했다. 사회적 역할과 관계 속에 부적응적 경험을 할 때 파생되는 감정의 덩어리-우울감, 분노, 좌절, 수치심 등등-에 압도된 경험이 있다면, 적어도 한 번쯤은 내 자존감의 높낮이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왜 자존감이 높지 못할까, 이런 상황에 왜 의연하지 못할까, 나만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아.'와 유사한 의식의 흐름이 '내 자존감이 높지 못한 이유'를 탐색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게 찾다 보면 어릴 적 보살핌이 충분치 않았거나, 가족 내 불화가 있었거나, 억압적이고 통제적인 가풍이 있었거나 하는 등등의 나름의 이유를 찾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일부는 정말 그로부터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나에게도 애증의 대상이 있다. 바로 일전에 '나의 할머니' 편에서 언급한 친할머니와 아빠, 두 분이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전편에 남겨두었으니 오늘은 아빠에 대해서만 언급하려고 한다. 4남 1녀의 막내아들로 일찍이 15세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첫째 형님을 아버지로 여기고 자란 아빠는, 지나치게 엄하고 무서웠던 아버지를 회상하며 당신께서 가정을 꾸리면 자녀들에겐 절대 아버지와 같은 사람은 되지 않겠다 마음먹으셨다 한다. '친구 같은 아빠'를 지향하는 아빠셨지만, 안타깝게도 자녀들에게 '친구 같은 아빠'는 되지 못하셨다. 친구 같은 아빠로 남기엔 우리 아빠는 지나지게 독단적이고 기분파에 다혈질이었던 것이다. 한없이 다정하다가도 순식간에 불같이 화를 내거나, '그때는 맞고 지금은 다르다'는 식의 일관되지 않은 태도 덕분에 아직도 자녀들에게 그다지 존경을 받지 못하고 계시다. 하루는 아빠와 술을 마시며 아빠의 말투와 행동에 상처받은 일을 슬며시 꺼내 놓은 적이 있다. '그때는 ~라고 말해줬으면 좋았을 거라고.' 허심탄회하게 꺼내놓은 말에 내 얘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아빠는 소주잔을 한잔 더 기울이고는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아빠는... 그렇게 말을 하는 방법도, 어떤 식으로 말을 해야 하는 건지도 배우질 못해서 그런다... 아버지는 무서웠고, 늬 할머니도 알지 않냐..."


  그날의 아빠는 참 낯설었다. 자존심 세고 남에게 굽힐 줄 모르는 아빠가 딸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지나치게 솔직한 아빠의 대답이 어색하고 당황스러워서 몸 둘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했지만, 내심 아빠의 진심 어린 고백에 마음이 누그러진 건 사실이다. 아빠의 말이 진심이었단 걸 안다. 그리고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는 말도 진심이었단 걸 안다. 다만, 아빠에겐 '친구 같은 아빠'의 모델이 없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아빠도 50여 년 전엔 그저 아버지의 빈자리가 허전했던 금쪽이었던 것이다.






  어른이 된 금쪽이의 아이러니는 언제까지고 부모 탓만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새삼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 원망을 털어놓기엔 그 부모가 너무 나이가 들어버리기도 했고, 더 이상 부모 슬하의 자식으로만 머물기엔 당장에 할 일도, 책임질 것도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내 가정을 꾸려 내가 부모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응어리진 가슴 아래 성장을 멈춰버린 *내면 아이는 여전히 살아있고, 바깥세상의 나이와 무관하게 여전히 내 삶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내면아이(inner child)
: 대상관계이론의 주요 개념으로, 한 개인의 정신 속에서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처럼 존재하는 아이의 모습을 말한다. 어린 시절의 주관적 경험을 설명하는 용어로 한 개인의 인생에서 어린 시절부터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존재다. (중략)
  한 개인 안에 있는 내면아이는 부모와 유사한 다른 사람을 만나면 마치 어린 시절에 부모에게 했던 것처럼 유아적으로 반응한다. 즉, 미성숙하고 퇴행적인 행동을 한다. 내면아이 치료는 어린 시절의 발달과정을 회상하게 하고, 각 발달단계의 해결 욕구와 미해결 상태를 발견하도록 해준다. 상처받은 내면아이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어린 시절에 해결하지 못한 슬픔을 끝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 네이버 지식백과, 내면아이(상담학 사전, 2016) 발췌


  내가 어찌하지 못할 나의 유년시절에 씻기지 않을 흉터를 남긴 부모를 원망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젠 나의 내면아이는 더 이상 부모의 손길로 키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시기는 반드시 오고야 만다. 그렇다면 나는 이 내면아이를 어찌해야 할 것인가. 누가 이 아이를 구제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생각하기에, 벙어리 냉가슴 앓듯 품고 있는 이 가냘픈 존재에게 스스로 손을 내미는 것 말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내 속에 자라지 않고 그대로 머물러 있는 내면아이를 발견하고 아이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것. 아이의 성장을 멈춰버린 어른은 이제 어디에도 없지만, 그를 대신해 어른이 된 내가 아이를 안고, 상처를 보듬어 주고, 대신 사과를 건내는 것. 당시의 내게 진정 필요했던 말을 고심해서 전해주고 아이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곁을 지키고 함께 기다려 주는 것. 계속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잔뜩 웅크리고 있는 무표정의 아이가 눈물을 쏟으며 지금의 나에게 안겨주는 날도 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의 미소를 보게 되는 날, 비로소 내 안의 응어리도 풀어질 날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아이를 발견하는 데, 명상은 큰 도움이 된다.)


  어찌 아냐고. 나도 아직 내 안의 내면아이를 키우고 있으니까.


  11살 나이에 멈춰버린 나의 내면아이는 다행히 느리지만 잘 크고 있다. 작은 창문이 달린 좁은 다락방에 웅크리고 앉아 무표정하게 바깥만 바라보는 일도 이제는 줄었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간절히 필요했던 말을 건내자 아이는 베시시 웃었다. 웃는 걸 보니 마음이 놓였다. 자식을 키우듯 어린 나를 키워보려 한다. 그리고 나는 이 아이를 내 나이만큼 키워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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