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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May 28. 2022

너에게 하고 싶은 말

2017년, 아기수첩에 적혀있던 '엄마의 기도' 중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너의 말에 나는 오늘도 놀라고야 만다. 너의 생각과 말과 표정이 좋아서, 사소한 감탄 하나하나를 잊지 않고 간직하고 싶어서, 언제 이렇게 큰 건지 신기하고 뿌듯하기도 해서. 그렇게 너의 미래를 함부로 기대하지 않으리란 다짐을 잊고 또 너에게 기대를 하고야 만다.


  "○○이 누구 꺼?"라는 질문에 '엄마 아빠 꺼!'가 아닌 '내 꺼!'라고 말하는 거라 가르쳤을 때, 그때의 말은 진심이었단 걸 알아줬으면 한다. 너의 인생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너 자신의 것임을 한 순간도 잊지 않길.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닌 너 스스로의 기쁨을 알고, 응당 누려야 할 노력의 결과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게 되길.   

 

  학교를 마치고 매일같이 들리던 놀이터에서 넌 팔랑이는 한 마리 나비 같았지. 땀을 삐질 흘리면서도 환하게 웃는 모습이 어찌나 반짝이던지. 동생 없이 엄마가 너만 돌봐주고, 너만 챙겨줘서 너무 좋다며, 평소에는 잘 잡지도 않던 손을 꼬옥 잡고 발걸음을 맞추던 너와 함께하는 게 내게도 큰 기쁨이었다. 너의 따뜻하고 작은 손을 잡으니 그간 첫째란 이유로 어른스러움을 요구했던 게 미안하더구나. 하지만 동생이 돌아오면 다시 똑같이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 사실 그게 더 미안했다.


  하지만 앞으론 조금씩 답답해질 거야. 몇 달 뒤면 엄마는 다시 복직을 해야 하거든. 일과를 마치고 놀이터에 나올 수도 없고, 친구와 모래를 파고, 도시를 건설하고, 개미를 잡고, 잡기 놀이를 하던 모든 자유가 너로부터 사라질 거야. 대신 혼자 집에서 간식을 먹는 일과, 시계 알람을 듣고 혼자 가방을 챙겨 학원에 가는 일, 유치원을 마치고 온 동생을 태권도장에서 만나 수업을 하고 엄마나 아빠가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 네 앞에 남게 되겠지.


  누군가는 말하지. 당연한 일이라고. 어쩌면 진작부터 학원을 다녔으면 그 생활에 익숙해졌을 거라고. 혹은 어차피 학년이 올라가면 시작해야 할 건데, 조금 일찍 시작한 거다 생각하라고. 그래. 그렇게 생각해 보려고 해. 누구나 겪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고, 엄마가 다 채워줄 수 없다면 다른 선택지도 없으니. 하지만 아들아. 어쩔 수 없이 학원을 가야 한다면 엄만 네가 꼭 기억해 줬으면 하는 게 있다. 모두가 세상에 등 떠밀려 가더라도 그 속에서 너는 너의 속도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걸 잊지 않길 바란다. 너는 늘 잘하고 싶은 맘이 커서 생각처럼 잘 안되면 크게 좌절하곤 하니까. 당장의 시험과 비교 보단, 배움 안에 너의 기쁨을 찾고 새롭게 알게 된 것만큼의 조금 더 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길. 학원은 단지 너의 머리를 채워주는 곳이 아니라 네 앞에 놓인 과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태도를 배우는 곳이 되길. 학원이 결과보다 너의 동기를 깨우는데 이바지하게 되길 바란다.


  오늘은 너와 마주 앉아 네가 좋아하는 멜론 빵과 복숭아 아이스티를 먹으며 머지않은 미래의 일을 진지하게 얘기했지. 학교 일과 이후를 학원으로 채워야 하는 상황에 대한 걱정과 안타까움을 전하자, 너는 되려 의연하고 씩씩하게 엄마의 상황을 이해해 주었어. 아이로서 당연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말이야. 아이답지 않은 어른스러움이 때론 마음이 쓰이지만, 네가 의젓해준 덕분에 언제나 위로를 받는 쪽은 엄마란다. 너는 몰랐겠지만, 엄마는 너의 기특함에 울컥 터져 나오는 마음을 애써 삼켜냈다. 엄마의 우려가 무색하게 잘할 거고, 잘해 낼 너 인걸 알지만, 아직은 여덟 살 밖에 안된 네게 엄마가 필요한 순간들이 왜 없을까. 그때마다 곁에 있어 줄 수 없어서, 네 스스로 잘 해내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시간들이 벌써부터 속상하고 두렵다.


  어느 날은 길에서 네 또래의 아이가 곤경에 처해있는 걸 본 적이 있다. 친구 간의 다툼이 있었는지, 얼마나 투닥거린 건진 알 수 없으나, 엄마 없이 혼자 귀가하는 아이를 붙잡고 호되게 야단을 치며 언성을 높이던 다른 아이의 엄마를 본 순간, 보호자 없이 홀로 그 모든 비난과 야단을 감수하고 있는 그 작은 아이가 네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심장이 몹시도 뛰었다. 잔뜩 얼어붙은 아이를 차마 홀로 둘 수가 없어서 나는 소리치던 아이 엄마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보호자도 없는 아이를 학교 밖에 혼자 두는 건 위험하단 이유로 임시 보호자를 자처하고는 황급히 아이의 손을 끌고 학교로 들어왔다. 약하게 떨리는 작은 손을 잡고 아이를 진정시킨 뒤, 집에 돌아가서 엄마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반드시 이야기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고 돌려보냈다. 그와 같은 상황이 너에게도 생기지 말란 법이 없어 가슴이 너무도 답답했단다. 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엄마의 세계에서 너의 세계로 한 뼘 더 나아가는 거라 힘듦도 고난도 홀로 이겨내야 한다 늘 생각했지만, 네가 혼자 감당하지 못할 상황에 놓이게 될까 봐, 엄마의 빈자리가 서럽게 느껴지는 날이 올까 봐 벌써부터 가슴이 먹먹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구나.



  아들아. 엄마가 해 준 것에 비해 훨씬 크고 단단하게 자라주고 있는 고마운 아들아.

  엄마는 널 늘 든든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단다. 그리고 잘 커주고 있어 늘 고맙다.

  지금껏 엄마가 해 주던 것들이 너의 몫으로 남겨지겠지.

  혹여나 있을 걱정과 두려움은 엄마에게 기고 넌 씩씩하고 당당하게 나아가려무나.

  엄마가 널 응원할 테니.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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