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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Jul 14. 2022

간장종지만 한

마음의 크기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컨디션이 영 좋지 않다. 밤새 틀어놓은 선풍기 탓이 분명 하나, 목이 쎄 하게 잠기는 것이 예감이 좋지 않아 나는 아침부터 신경이 잔뜩 곤두섰다. 코로나 대 유행 속에서도 여태껏 잘 살아남은 가족 안에서 1호가 될 순 없다는 압박감에 자가진단키트를 꺼내 들었다. 혹여 키트 결과가 양성이면 애들 유치원이랑 학교는 어떡하지. 목이 아프니 어쩐지 열감도 있는 듯하고 머리도 지끈거린다. 다행히 키트는 결과는 음성. 체온도 정상이다. 미지근한 물 한잔을 다 들이켜고 나니 목의 불편함도 조금은 괜찮아졌다. 아이들 아침을 준비하며 지끈거리던 머리도 진정이 됐다. 하지만 이른 아침부터 날카롭게 날이 선 신경은 어찌할 수가 없다. 


  새롭게 맞는 아침은 애, 어른 할 것 없이 모두에게 힘겹다. 아이들은 여지없이 이불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을 깨운다는 핑계로 남매 사이에 누워 가물거리는 의식을 애써 부여잡았다. 간밤 선선했던 공기에 선풍기까지 밤새 틀어놓아 아이들의 팔다리가 싸늘했다. 혹여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나, 나는 어쩌자고 지난밤에 선풍기 타이머를 맞춰놓지 않았던가. 갖은 후회가 밀려올 때쯤, 첫째가 뒤척이며 부스스 눈을 떴다. 


  "아들, 어젯밤 안 추웠어?"

  "... 추웠어."


   아들은 말을 이었다. 


  "엄마, 오늘 아침은 따뜻한 걸로 줘."


   난감하다. 이미 아침식사는 준비를 마쳤기 때문이다. 평소 같았으면 아들의 이런 요구도 '어쩌지, 벌써 아침 준비를 끝냈는데. 대신 따뜻한 우유를 데워줄게.'라고 아이의 의견을 들어주는 척이라도 했으련만, 그 정도의 여유도 없었던 걸까. 나는 아들을 보듬는 대신 엉덩이를 팡!하고 두드리며 '얼른 일어나. 학교 지각하겠어.' 하며 아들의 말을 묵살했다. 사소한 투정도 거슬렸던 것이다. 


  엄마의 출근 준비에 맞춰 칼같이 준비하던 습관이 몸에 배어있는 남매인데, 어쩐지 오늘은 생각처럼 잘 따라주지 않는다. 식사와 세수, 양치와 옷 갈아입기, 가방을 챙기고 마스크 쓰기, 신발 신기 까지. 주토피아 나무늘보 플래시 못지않은 속도감을 자랑하는 남매를 보며 성질 급한 엄마의 눈에는 벌써 수차례 불이 켜지고 있었다. 화가 난다. 소리를 지르고 싶다.


  잔뜩 뭉그적거리는 남매에게 한바탕 샤우팅을 날릴 뻔했으나 간신히 참았다. 아침부터 소리를 지르고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고 나면 하루 종일 잔뜩 겁먹은 아이들의 얼굴이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기분 좋은 하루의 시작을 박탈하는 건 차치하고, 하루 종일 괴로울 나를 위해 참았다. 


  대신 어금니를 앙 물고 복화술을 시전 하며 아이들을 재촉했다. 


  "즈은 믈 흘때 은능 흐르..."(번역: 좋은 말 할 때 얼른 해라.)


  눈치를 보던 아이들은 그제서야 엄마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챘고, 학교와 유치원에 갈 준비를 서둘렀다. 힘겹게 두 아이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옷을 갈아입고 다시 침대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사나운 짐승이 굴 속에서 몸을 웅크리 듯, 잔뜩 날카로워진 신경과 애써 삼킨 화를 진정시키기 위해.






  나는 화가 많은 사람이다. 화라는 것은 급한 성격과 다혈질, 경직된 사고패턴과 이기심의 총체와 같다. 자기 본위의 틀의 너무 완고해서, 틀을 벗어난 무엇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 유연하지 못해 자신에게 규정된 것 이외의 허용을 용납하지 못한 다는 것을 뜻한다. 분노하는 감정은 사람의 본모습을 쉽게 드러내게 한다. 사회적 얼굴로 아무리 잘 위장하고 있다 한 들, 본질은 변함이 없고 밑바닥이 세상에 공개되는 건 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나의 화는 아빠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무섭고 호랑이 같은 성정의 할아버지에서 자란 이유로 15살 무렵부터 당신께선 꼭 자녀에게 '친구 같은 아빠가 되리라.' 다짐했던 아빠였지만, 안타깝게도 아버지로서의 이상은 평생 이룰 수 없었다. 


  아빠는 호탕한 성격에 굉장히 사교적인 호인이지만, 전형적인 기분파였다. 그리고 화가 매우 많았다. 기분이 좋을 때는 한없이 친근하게 대해주시다가, 한번 화가 올라오면 순식간에 돌변해서 그 간의 좋았던 관계를 모조리 엎어버리시는 분이셨다. 훈육의 목적이 아닌 화풀이 대상이 된 자녀들의 눈에 비친 아빠는 '친구'같기는커녕 '신뢰할 수 없는 대상'이었다. 그렇게 넘치는 화가 주체할 수 없이 끓어 넘칠 때면 아빠는 가족들의 마음에 잔뜩 생채기를 낸 후에야 진정이 되곤 했다. 


   어린 나는 아빠를 통해 '기분'과 '감정'이란 것의 하찮음과 난폭함을 목격했고, 이토록 가볍게 휘발되어 버리는 하찮은 것에 힘없이 휘둘려버리는 인간의 '이성'이란 것에 회의했다. 그리고 그와 같은 폭력성의 흔적이 내 안에 짙게 배어 있음에 늘 괴로워했다. 


   나의 유년은 분노에의 투쟁으로 점철된다. 분노란 감정을 함부로 꺼내놓는다는 것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기에, 내 안의 분노가 제멋대로 밖으로 튀어나가 미쳐 날뛰는 꼴을 볼 순 없었다. 늘 노심초사했고, 억누르려 애를 썼다. 마음속 사나운 짐승을 가둬놓듯, 분노라는 감정의 실체를 이해하기보단 무조건 억압했던 탓에 항상 신경이 예민하게 곤두서 있었다. 어쩌다 날카롭게 튀어나가 주변을 할퀴어 놓을 때면 놓쳐버린 자제력에 다시 스스로에게 분노했다. 밖으로 향하지 못한 분노는 안으로 깊게 파고들어, 나는 무수한 날들을 스스로를 할퀴며 보냈던 것이다.  






  나이가 들고 내 가정을 꾸린 후에 이해하게 된 것은, 아빠에게도 다정한 아버지로의 모델이 없었다는 점, 아빠도 (원치 않았겠지만) 그토록 싫어하던 할아버지의 성정을 이어받았다는 점, 그리고 당신께서도 불같은 성정에 평생을 많이 휘둘리시며 많이 후회하셨을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한평생 자녀들에게 그다지 존경받는 어른이 되진 못하셨다는 점에서 말이다.


  아빠는 존경을 받지 못하셨지만 인정은 받으셨다. 시간의 힘은 강해서, 어느덧 딸은 흰머리와 투닥거리는 나이가 됐고, 아빠는 여성호르몬의 증가로 한껏 부드러워지셨다. 감정을 내세우지 않고, 과거의 일들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아빠의 속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날들이 많아졌다. 아빠도 잘해보고 싶으셨지만 잘 안되셨던 것이다. 자녀들에게 존중받고 싶은 마음과 생각처럼 따라주지 않는 가족들에 대한 서운함이 '화'의 근원이었다. 뒤돌아 보고서야 아빠의 행동이 이해가 됐다. 


  내 안의 아빠를 극복하는 건 아직도 내게 평생의 숙제로 남겨져 있다. 나는 젊은 날의 아빠와 같이 여전히 화가 많고, 작은 일에도 쉽게 흥분하고 분노하길 반복하기 때문이다. 다만 드러내지 않으려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 뿐이다. 분노에 잠식당해 내 주위의 사람들과 아이들에게 되돌릴 수 없는 실수를 하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분노와 마주하기 위해선 확증편향을 경계하기 위한 고뇌와, 힘들더라도 상대와 대화를 시도할 용기, 자기본위의 판단을 유보하는 신중함, 무지와 아집, 완고함을 인정하는 수용력이 필요하다. 나와 타인의 경계를 분명하게 세워 타인의 감정에 쉽게 전이되지 않기 위해 심리적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그 모두를 위해 나는 여전히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화를 잘 내지 않는다. 감정이 들어가면 훈육은 화풀이가 되기 쉽다. 훈육을 빙자한 화풀이를 하지 않기 위해 내 감정과 상태를 끊임없이 살피고 되돌아본다. 정말 화를 내야 할 때면 몇 번을 곱씹어 나지막이 말을 꺼낸다. 


  "엄마가 정말 화가 났으니까. 오늘은 그만하라." 고


  정말 신중하게 뱉은 말인데도 아이들은 움찔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아이들은 엄마의 목소리보다 눈빛에서 엄마의 화를 먼저 감지하기 때문이다. 하루는 둘째가 유치원 선생님께 '엄마가 너무 무섭다.'라고 속내를 털어놨나 보다. 그날 선생님은 내게 '아이가 무서워하니 조금만 덜 혼내시라.'며 당부를 남겼다. 정말이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나는 그날 조금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항상 마음이 넓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타고나길 허허실실이 잘 되지 않는, 이 못돼 먹은 성질머리와 조바심이 아니라, 너그럽고 푸근한 마음을 가진 여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타고난 성정을 잘 다스려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분노 없이 편안한 삶을 살게 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 그런데 그런 날이 오긴 올까.


  그간 마음의 크기를 많이 키워왔다 생각했는데, 여전히 아무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내고 있는 걸 보니 착각이었나 보다. 난 내 마음의 크기가 전골냄비쯤은 되는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 간장종지다. 


  딱,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간장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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