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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Aug 03. 2022

바다 한가운데서는 모른다

이 물결이 날 어디로 인도할지

  요가 수련은 매일 큰 변동 없이 일정한 자세를 반복한다. 주말 동안 한껏 굳은 어깨가 뻐근하다. 운동을 해야 몸이 풀릴텐데 어쩐지 운동을 하러 가기 싫은 날이다. 익숙한 몸의 움직임을 따라 수련실에 앉아있으면, 그다음부터 몸은 마음에 연연하지 않고 습관처럼 움직인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 수련은 큰 변동 없이 일정한 자세를 반복하는 과정이다. 변하는 건 오직 마음가짐이다. 오늘의 마음가짐이 어제와 다르고, 내일과 다를 뿐이다.


  백 개의 다른 자세를 하는 것보다 하나의 자세를 백 번 하는 게 더 어렵다. 같은 자세를 반복해도 사용하는 근육의 정도와 강도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고, 자세의 완성 여부도 달라진다. 수리야나마스카라를 반복하다가 문득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여 살아낸다는 것'의 의미가 궁금해졌다. 쳇바퀴 돌 듯 그저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위한 일인지 알지 못한 채 돌고 돌다 어느 날은 매너리즘과 마주하고, 또 어느 날은 번아웃에 빠진다. 끊임없이 수렁에 빠지고, 건져내길 반복하는 우리네 삶에서 '반복되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휴직기간 동안 내 하루는 큰 변동 없이 일정했다. 아이들 이외의 별 다른 변수를 만들지 않았다. 약속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잡지 않는다. 애초에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나는 별 다른 기복 없이 매일을 의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동경한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 재활용 쓰레기봉투를 정리하시는 경비 아저씨가 그렇고, 통로에서 마주치는 요구르트 아주머니가 그렇다. 매일 아파트 복도를 반질반질하게 닦아 주는 청소 여사님부터, 자주 가는 단골 과일가게 총각, 새벽 수업을 열어주시는 요가 선생님, 친절한 주차장 관리 아저씨가 그렇다.


  여유만만, 얼굴 가득한 미소와, 가볍게 주고받는 농담 사이로 삶의 내공이 느껴진다. 고단함과 고뇌가 없을 리 만무하다. 다만 그들은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다. 의연하게.


  경력이란 의연함의 다른 말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닥쳐도 어제와 마찬가지의 하루를 살아내는 유연함은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니다. 감정 기복에 잡아먹혀 기꺼이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휩쓸려 버리는 것은 아마추어의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알고, 매너리즘과 번아웃에 허덕여도, 그저 해 내는 의연함. 그것이 프로의 자격을 만드는 것이리라.


  별 다를 것 없는 평범한 하루를 기어이 또다시 반복해 내는 것. 기복이 없다는 것, 감정적이지 않다는 것. 별 다른 특별함 없이도 그저 매일을 변함없이 살아내는 것. 오늘도 내일도, 그제와 같은 삶을 반복한다는 것. 그것은 사소해 보이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묵묵히 나아가는 삶이 주는 신뢰가 있다.

  그렇게 쌓아간 삶의 단단함을 존경한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살 수 있게 되길 갈망한다.






  우리의 삶은 어디로 향하는가.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서는 모른다. 지금의 풍랑이 나를 어디로 인도할지.

  정신없이 물결에 휩쓸려 가다 보면 문득 깨닫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저 그렇게 보낸 오늘 하루가 '나'라는 개인의 역사에서 하나의 방점으로 남겨질지, 어찌 알까. 그러니 내 앞에 놓인 평범한 하루에 충실할 수밖에. 지금 주어진 삶에 긍정할 수밖에. 그저 의연히 살아가다 절로 단단해진 나를 마주하길 바랄 수밖에.


  글도 삶과 다르지 않다.

  분명한 목표가 유효할 때도 있으나, 본래 삶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반드시 번듯한 목표가 있어야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럴듯한 책 한 권을 출간해 반드시 손에 쥐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글의 본질은 '쓰는 것' 그리고 '읽히는 것' 이외에는 다를 게 없다.


  쓰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어서, 써야만 하는 사람이어서, 존재만으로도 위안을 삼는 '쓰는 사람' 이어서 그렇다. 매너리즘과 번아웃, 감정 기복과 절필의 욕구를 파도에 흘려보내며, 삶을 살아내듯 의연하게 써내려 갈 뿐이다. 그렇게 한참을 표류하다 우연히 어딘가에 가 닿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몽테뉴,「수상록」 중




  *변화 없음에 감사하고, 매 순간 변하고 있음에 감사하라.


  반복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변할 수 있음을 사랑하라.


  매일을 살아내는 힘이 나를 어딘가로 인도하는 날까지.






* 출처: 요가원 화장실에 붙어 있던 문구입니다. 역시 사색은 화장실이 최곱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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