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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Jun 29. 2022

엄마 자판기

  학교를 다녀온 아들이 간식을 먹다 말고 갑자기 책가방을 뒤졌다. 평소 가정통신문도, 알림장도 제때 꺼내놓질 않아 꼭 한 소리를 듣고서야 꺼내오는 아이인데, 먹던 간식도 놓고 오늘은 어쩐 일일까?


  아들은 여덟 살이 되며 경상도 남자로의 정체성에 한 발짝 더 다가갔다. 엄마의 질문에 대답이 짧아지거나, 못 들은 척하거나, 아님 진짜 못 듣거나, 혹은 툴툴대거나. 평생의 로망이 다정한 서울남자 한 번 만나보는 것이었는데, 그것 한 번을 못하고 경상도 남자를 만나 결혼한 게 한으로 남은 나였다. (오해할까 첨언하자면, 남편과 결혼한 것에는 추호의 후회도 없다. 아니 나는... 그냥 연애 한번 해보고 싶었다고~~) 결혼은 경상도 남자와 했지만 아들만큼은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았건만. 자라온 토양이라는 게 무시할 수 없는 건지, 나는 점점 퉁명스럽고 무뚝뚝해지는 아들에게 못내 서운하던 터였다.


  아들은 아직 삼키지 못한 간식을 우물거리며 무신경하게 무언갈 쓱 내밀었다.


  이게 뭐지?



엄마 자판기. 깨알 같은 '코인 넣어'


  

   푸흐흐흐...


  "아들 이게 뭐야?"

  "적혀있잖아. 엄마 자판기."

  (내적 웃음)

  "그러니까. 이거 학교에서 한 거야? 어떻게 하는 건데?"

  (우물우물)

  "사랑 코인 넣어서 내가 좋아하는 엄마를 고르는 거야."

  "이게 네가 좋아하는 엄마인 거야?"

  "응."


  

  녀석. 제발 '대답 좀 해라!' 고 그렇게 다그쳤는데 속으로는 칼 같이 대답하고 있었나 보다. 엄마의 부름에 하나같이 '네!'하고 대답하는 걸 보니. 간식 엄마와 요리 엄마, 의외로 공부 엄마까지 그림 속 엄마들의 얼굴이 모두 웃는 얼굴이어서 다행이었고, 싫어하는 기색 없이 '네!'라고 대답해 줘서 고마웠다. 거기다 평소에 좋아하지 않는 분홍색으로 가득 채운 거대 하트, 칭찬 엄마도.


  엄마의 감동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간식만 우적우적 먹고 있는 무신경한 아들에게서 표현하지 않지만 마음 만은 뜨끈한 경상도 남자의 정을 느꼈다면 조금 과한 해석일까. '마! 오다 주웠다!'며 미리 준비한 선물을 휙 던져주는 과감함이 은근히 취향에 맞는 나였다.


  간식을 다 먹은 아들은 엄마 자판기를 들고 집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엄마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두고 싶다며.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며 여기저기 붙여보고 떼어보고. 진중한 모습에서 아들의 엄마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다.


  이것이 소소한 행복이랄지...



(근데 엄마는 왜 대머리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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