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미혼일 적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먹어도 배가 안 나오는 걸로 유명했다. 먹는 걸 좋아하고 많이 먹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먹는 양에 비해 살이 찌지 않는 편이었다. 체중조절을 하거나 살을 빼고 싶을 때는 운동량을 늘렸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식단 조절을 한다거나 굶는 행위는 아프거나, 건강검진을 하지 않는 이상 해 본 역사가 없는 사람이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만고불변의 진리에 결코 역행하지 않는 몸이 된 지금.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며 당연시 여기던 내 몸에 갑자기 불만이 생겼다. 몇 년 전, 등록한 헬스장에서 인바디 측정 기록지를 들고 '몸이네요. 그냥 몸.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냥 몸'이라 평하던 트레이너 앞에서 기죽지 않고 '애 둘 낳고 이 정도면 양호하죠!'라고 맞받아 친 나였다. 얼굴평가, 몸매 평가하길 좋아하는 여자 상사에게 공개적으로 '똥배'지적을 받았을 때도 '이 정도도 없으면 인간미 없어서 되겠어요?'라며 되바라지게 대꾸하던 나였다. 자랑할 것 없이 보잘것없는 몸이라도 그냥 '내 몸'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무한 긍정을 하던 내가, 내 몸에 불만이 생겨버린 것이다.
불만이 생겼다는 건 좋은 신호다. 첫째와 둘째 출산 직후 좌우 골반이 번갈아 빠지고, 손가락 끝에서 발가락 끝까지 온몸의 관절이 몇 개인지 셀 수 있을 정도로 산후풍을 심하게 겪은 후로 '몸 관리'는 오로지 '통증 관리'에만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살 빼는 건 사치요, 그저 병원신세만 지지 않길 바라는 심정으로 요가를 시작했다. 젊어서 겁 없이 훨훨 날아다니던 이는 온데간데없고, 절대 무리하는 법 없는 '안전 제일주의'가 된 것이다. 그런 내가 살을 빼야겠단 생각이 들었다는 건 통증에 많이 무뎌졌다는 걸 뜻했다. 먼 길을 돌고 돌아, 다시 원래의 몸을 찾을 때가 온 것이다.
식이조절이란 걸 해본 적이 없지만 시도를 할 필요는 있었다. 둥글둥글해진 표면을 깎아내지 않고 잘 먹고 무작정 운동만 해서는 그저 '건강한 돼지'(이 표현이 참 싫다...)로 남을 게 뻔하다. 세상에서 공복이 제일 두려운 사람이지만 일단 시도는 해 보기로 했다.
- 아침: 데일리 견과류 한 봉, 무가당 두유 한 팩 또는 홍초 한잔
- 운동(1): 등산(왕복 1시간 반~2시간)
- 휴식: 비스킷 한쪽, 녹차 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 운동(2): 요가 클래식 1시간
- 점심: 샐러드(닭가슴살 또는 치즈), 통밀 빵 반쪽 또는 과일 약간
저녁 식사는 하루 중 유일하게 가족 모두가 함께 하는 시간이라 굳이 식단을 조절하지 않고 편하게 먹되, 되도록 이른 시간에 먹는 것으로 했다. 아이들과 삼시 세 끼를 다 함께 해야 하는 주말도 제외다. 먹어야 놀아 줄 수 있고, 주말에 먹은 죄책감으로 다음 평일에 다시 고삐를 조일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일종의 합리화가 살짝 적용됐다. 한 가지 문제점은 점심때 먹는 샐러드의 양이 어마 무시하게 많다는 점이다. 오전 내내 운동을 한 보상심리로 엄청난 양을 먹게 되는데, 꼭 먹고 나서 후회를 하게 된다. 코끼리도 초식동물이란 걸 잊지 말아야 하는데. 솔직히 고백 건데... 중간에 고삐가 풀려 떡볶이나 라면을 먹은 날도 간간히 있었다.
아무튼, 5월 둘째 주부터 시작한 스케줄은 6월 말, 현재까지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근 십여 년 만에 복근이란 녀석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아직 상당 부분 덮여있지만, 요리조리 각도를 쪼개 보고 만져봤을 때 분명 탄탄하게 잡히는 녀석이 있다. 하... 반갑다. 오랜만이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렸다.
"남편, 나 복근 생겼어. 요기 요기!!"
".... (뱃살을 가리키며) 이거?"
".........!!!!!"
멱살잡이를 한 번 해야 하나... 찰나였지만 진지하게 고민을 한 순간이었다.
앞으론 몇 가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7월 아이들 방학과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휴가철이 그것이다. 먼 길 돌아온 아이를 이대로 보낼 순 없는 일. 나는 아이들 방학 전까지만이라도 최선을 다해 볼 작정이다. 그 이후엔 아마도 힘겨운 싸움이 시작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