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가 하교하는 시간에 맞춰 학교 교문으로 바삐 걸음을 옮기던 때, 길에서 옆반 친구 엄마와 마주쳤다.
"아, 네. 오랜만이에요~"
친구 엄마의 곁에는 평소 교문 앞에서 자주 마주치던 다른 아이의 엄마가 서 있었고, 찰나였지만 인사를 할까 말까, 내 소개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망설임에 나는 동공이 가볍게 떨리는 걸 느꼈다.
흔한 교문 앞 풍경 (*출처: Pixabay)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은 아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티 안 나게 낯을 가리는 편이다. 낯설거나 친하지 않은 사람과의 대화 상황이 주는 불편함이 싫어, 나는 그 어색한 공기를 모면하기 위해 조용하고 빠르게 머리를 굴려 대화 거리를 모색한다. 그리곤 날씨며, 학교생활이며, 등교시간의 전쟁 등 대화가 될 만한 것들을 기계적으로 뱉어낸다. 내가 '날씨가 덥죠? 애들 교실은 안 더운가 모르겠어요~'와 같은 의미 없는 아무 말을 뱉어내는 것은 '낯가리는 중'이어서 그렇다.
그런데, 상황을 모면하기에도 애매한 경우가 있다. 바로 스치다 마주친 '얼굴만 아는' 사람을 대하는 일이다. 첫째 초등 입학 후 4개월 동안 동시간대에 교문 앞에 서 있다보니, '얼굴만 아는' 사람들이 꽤 많이 늘었다. 게다가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생활권이 겹쳐 굳이 교문 앞이 아니어도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는 사람들이 생겼다. 지인이라 부르기 애매하고 모르는 사람이라 말하기에도 걸쩍지근한데, 아는 척 하기에는 어색하고, 또 모른 척 하기엔 안면이 받치는 어정쩡한 관계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교문 앞에 모여있는 순간, 뻘쭘함은 극치에 다다른다.
친구 엄마의 곁에 있는 모르는 아이의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빨리 아무 말이나 해야 해~~' 하는 압박감에 굳게 닫힌 입을 채근하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내 입에서 말이 나오기 전, 상대방이 먼저 말을 건네 왔다.
"안녕하세요. 1반 웅이 엄마예요."
"네, 안녕하세요. 2반 현이 엄마예요."
휴, 인사했다.
그렇게 우린 공식적으로 아는 사람이 됐다.
어정쩡한 관계가 주는 긴장감이 싫다.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해 어쩌다 생긴 내적 친밀감을 맘껏 드러내어 동네 마당발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렇다고 냉정히 모른 척 지나치기엔 다른 엄마들의 눈치가 보이기도 하거니와 그 정도의 뻔뻔함을 미처 갖추질 못했다. 이 답도 없는 불편함을 극복할 수 있는 묘책이 있을까. 누군가 알고 있다면 꼭 알려줬으면 하는 심정이다.
평소 알고 지내던 엄마가 없는 날이면, 고개를 들고 있기에 적잖이 안면이 받친다. 괜한 머쓱함에 하릴없이 핸드폰만 만지작 거린다. 교문 앞, 나무 그늘 속 조용히 낯가리는 내가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