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움 Aug 12. 2022

나의 소울푸드, 돼지고기 김치찌개

  "있잖아... 칼칼~한..."

  "안돼."

  "... 말 덜 끝났다... 뭔 말을 못 해..."


  내 '칼칼~' 타령은 여지없이 단칼에 커트당했다.  

  


  

  남편과 술을 마실 때 나오는 단골 주제 중 하나로 '우리는 도대체 왜 결혼을 했을까?'가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성격, 말투, 옷 입는 스타일, 취향, 입맛... 무엇하나 맞지 않는 두 사람이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하는 게 아직도 미스터리기 때문이다.


 심지어 피부색까지 다르다. 나는 캐나다인 동서가 "헤이~ 캘리포니아 걸~"이라 부를 정도로 구릿빛의 피부를 가지고 있는 반면, 남편은 누가 보면 건강 걱정하기 딱 좋을 정도의 창백한 흰 피부의 소유자다. 그런데 아이들 둘은 모두 내 피부를 닮았다.


  함께 살을 맞대고 사는 사람끼리 입맛이 맞지 않다는 건, 집안 솥뚜껑 드라이버에겐 사소한 듯 보여도 상당한 스트레스 거리다.


   거의 모든 음식에 청양고추와 고춧가루가 빠지지 않는 집에서 성장한 나는 '맛있는 음식'의 표본을 적당히 매운맛이 가미된 음식에서 찾는다. 엄마의 음식은 경상도 식으로 '칼칼~~ 하다!'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음식들이기 때문이다. 모 고추장 광고에서 "맛있게 맵죠잉~?" 하는 말은 엄마 음식을 보고 하는 소리다.


  반면 시어머니의 음식은 다르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 않으셔서 맵지 않은 고춧가루만 사용하신다. 거기다 김치류나 겉절이류는 제외하고는 반찬에서 빨간 양념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엄마의 음식이 '칼칼~'하면, 시어머니의 음식은 '삼삼~'했다. 내가 엄마 밥에 익숙하듯, 남편도 엄마 밥이 입에 맞는 것이다.


  한 가지 문제가 더 있다. 매운맛이 남편의 장 트러블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결혼 초기에는 음식을 하며 슬쩍 고추를 담갔다 뺐다. 조금씩 익숙해지라고. 하지만 타짜에게 눈보다 빠른 손이 있다면, 남편에겐 입보다 정직한 장이 있었다. 입맛을 속여도 장을 속이진 못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매운맛 길들이기 프로젝트'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


   지금도 우리 집 대부분의 음식은 소금 혹은 간장 양념으로 조리된다. 고춧가루는 극소량. 그것도 아이들의 고춧가루 적응을 위해 슬~쩍 데코레이션으로 뿌리는 수준이다. 가끔 음식을 하다 이성을 잃을 때면 고춧가루를 팍팍! 뿌리거나, 통째로 확! 부어버릴 때가 있다. 아차, 싶어 금방 걷어내긴 하는데... 저 단전에서부터 꿈틀대는 매운맛에 대한 갈망이 가끔은 나를 돌변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던데,

  매운맛에 맺힌 여자의 한은 어찌한단 말인가...

 

  말복을 목전에 두고 서리를 내리게 할 순 없으니, 이쯤 되면 한을 풀어야 한다.






  치밀한 계획형인 나는 오늘을 위해 어제 저녁상에 생일상 코스를 차렸다. 생일인 사람은 없다. 다만 매운맛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소고기 미역국 한 냄비와 잡채 반찬 한 소쿠리를 해 놓은 것이다. 우리 집 맵찔이들(남편, 1호, 2호)의 오늘 저녁 식량까지 한 번에 해결하기 위해.


  오늘은 나를 위해 요리하는 날.

  오늘의 메뉴는 내 영혼의 음식, 돼지고기 김치찌개다.


  우리 집에서 나만 먹는, 엄마의 신김치 통을 꺼내 들었다. 매운 고추양념이 된 김치를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관계로, 신줏단지처럼 냉장고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가 오늘 같은 날 소환이 되는 것이다. 이 순간을 위해 낮에 비를 뚫고 두툼한 찌개용 돼지고기를 사 왔다. 나만! 내가! 먹으려고!!


  신김치 한 포기를 꺼내 큼지막하게 뭉텅뭉텅 썬다. 돼지고기 한 팩이 통째로 투하된 냄비에서는 지글지글 고기 굽히는 소리가 들린다. 돼지고기 기름이 제법 나왔다 싶을 때, 지금이다! 신김치 투하!


   '촤아아아아~~!!'

  

  그렇지... 이 소리지...!


  한 손으로 김치를 볶으며 손질해둔 양파, 다진 마늘 한 움큼을 냄비에 때려 넣는다. 볶은 신김치 냄새가 부엌을 가득 메운다. 나는 냄비에 조림간장을 약간 추가하고 재료를 좀 더 볶은 다음, 포트에 미리 올려놓은 뜨거운 물을 부었다. 김치를 볶던 열기 그대로 냄비가 보글보글 끓어오른다. 끓이다 보니 신맛이 아쉬워 마지막에 식초도 살짝 넣는다.


  자고로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는 오~래 끓여야 맛이 나는 법.

  김치찌개가 끓는 동안 남편과 아이들이 먹을 음식을 준비한다. 미역국과 잡채가 있지만 어쩐지 조금 아쉽다. 냉동실에 손질해둔 오징어와 냉장고에 보관해둔 부추를 꺼내 후딱 오징어 부추전 반죽을 만들었다.


  '촤아아아아~~!!'


  달아오른 프라이팬에 올리니 반죽이 춤을 춘다.

  ... 이거지...!


   남편에게 귀갓길에 동동주 한 병을 주문했다. 이렇게 나의 소울푸드 코스 요리가 완성이다.

   칼칼~하고 적당히 시큼~한 돼지고기 김치찌개 한 그릇에 뜨거운 오징어 부추전, 시원한 동동주 한 잔!


   하... 이쯤 되니 가슴에 맺힌 한이 조금은 풀리는 듯도...




매거진의 이전글 계곡 물놀이의 기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