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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Aug 09. 2022

계곡 물놀이의 기억

 캠핑장에서의 둘째 날.

하루 종일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고 돌아온 아들은 저녁 밥상 앞에서 연신 하품을 해댔다.

그날 밤 아들은 텐트에 누워 나지막이 말했다.  


  "엄마..."

  "응?"

  "평생 기억되면 어떡하지?"

  "뭐가?"

  "눈앞에서 물고기들이 자꾸 아롱아롱(아이의 표현이다) 거려..."


  푸흡!

  아들아... 그럴 땐 '어떡하지'가 아니라 '기억될 것 같아.'라거나 '기억되면 좋겠어.'라는 말을 쓴단다...


  벅찬 감동을 말로 표현하기엔 조금 버거웠던 아들이었다.





   

  여름의 뜨거움은 물속에서 더 빛 나는 법.


  한 여름의 계곡 물놀이는 두 아이를 들뜨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물만 있으면 '어디든 OK!'인 딸과 달리,  '계곡에서 물고기와 소금쟁이를 엄청 많이 잡겠노라.'며 일찍이 원대한 계획을 세운 아들은 족대와 채집통을 챙기며 단단히 각오를 다졌다. 야무진 여덟 살의 얼굴에는 묘한 흥분과 비장함이 감돌았다.


  전날 날씨 걱정이 무색하게, 하늘은 맑고 햇볕은 쨍쨍했으며 날씨는 무척 더웠다. 물놀이를 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다. 캠핑장에서 조금 떨어진 계곡으로 이동하기 위해선 한 동안 숲길을 걸어야만 했다. 평소라면 덥고 땀나고 다리가 아프다며 칭얼대고도 남았을 둘째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싫은 내색 한 번을 하지 않았다. 역시, 놀이에는 아이를 단단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게 분명하다. 나는 물놀이를 하기 위해 이 정도는 충분히 감수하겠단 둘째의 태도에 내심 감탄을 했다. '녀석, 너도 많이 컸구나.'

   비록, 손에 들고 있던 빈 채집통은 선심 쓰듯 엄마에게 양보해 주었지만... 그나마 전부 주면 엄마가 힘들 것 같다고 뚜껑만 달랑달랑 들고 가긴 했지만...


  10분 가량 걸어가자 눈 앞에 별천지가 펼쳐졌다. 이틀 전 장대비가 내린 덕분에 끝도 없이 이어진 너른 계곡 곳곳에 급류가 형성되어 있었고, 계곡 가득 먼저 와 있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쳐흘렀다. 깨끗한 물에 발은 담그니 산에서 갓 내려온 차가운 물의 냉기가 짜릿하게 온 몸을 타고 흘렀다. 더위로 지쳐있던 몸이 한 번에 풀렸다.  



물고기 집중 모드 아들내미와, 물 미끄럼틀에 홀딱 빠진 딸내미, 물고기 찾아다니느라 고생한 남편



  장장 네 시간의 물놀이 끝에 아들은 빨간 채집통을 보여주며 그날의 수확인 작은 새끼 물고기 열댓 마리를 자랑했다. 새끼손가락 만한 물고기를 발견했지만 너무 빨라서 도저히 잡을 수 없었다고도 했다. 아들은 물고기를 담아 둔 통 안에 손을 담그고, 손가락을 간지럽히는 물고기들을 보며 감격스러워했다. 아주 작은 새끼 물고기지만 누군가 잡아준 게 아니라 자기 손으로 잡았다는 게 더 좋았을 테다.  


  딸은 바위틈이 만들어낸 급류 미끄럼틀을 족히 백 번을 넘게 탔다. 덩달아 물살에 휩쓸리지 않게 잡아주고 건져 올리는 엄마의 역할도 백 번은 반복됐다. 날이 저물 무렵, 급격히 차가워진 계곡 물에 물놀이를 강제로 중단시키고 나서야 딸의 물 미끄럼틀 홀릭은 끝이 났다. 딸의 입이 댓 발은 튀어나와 있었다.


  캠핑장으로 돌아오는 길. 계곡에서 실컷 놀았냐는 질문에 두 아이의 대답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아니! 실컷 못 놀았는데!"


  ... 얘들아 살려줘...


  




    아이 둘을 모두 재우고, 계곡 한편에 담가놓은 맥주 캔을 꺼내 남편과 마주 앉았다. 잠들기 전 아들의 말을 전하자 남편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고생한 보람이 있네."


  어깻죽지가 빠질 듯한 아내와, 물고기를 찾느라 허리 한 번을 못 편 남편은 맥주 한 캔으로 무사히 마무리된 하루를 자축하며, 한결 단단해진 육아공동체의 전우애를 다졌다.


  귓가를 울리는 계곡 소리와 서늘한 밤공기.


  한 여름날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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