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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계란 May 29. 2019

02. 나의 세컨드 홈, 말레이시아

나의 대학생활은 열심 그 자체였다. 매일 아침 영어회화 수업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서너 개의 과외를 하였으며, 수업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으며, 교내외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참여하며 바쁜 대학생활을 보냈었다. 한 번이 아닌 두 번 만에 올 수 있었던 대학이었기에, 더더욱 시간을 헛으로 쓰지 않기 위해 바삐 살았던 듯싶다. 그 결과, 장학금을 항상 받을 수 있었고, 20살이 가지기에는 엄청 큰돈을 모았었다. 2학년 1학기 때는 총장 명예학생활동을 하고, 틈나는 대로 통역 아르바이트, 컨벤션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인적인 스케줄로 살았다. 그런 삶이 반복되어가다 보니, 지쳐갔고,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했을 때, "교환학생"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보통 미국이나 호주 등으로 가려면 토플 점수가 필요했고, 비자 준비를 위해 1년 전, 최소 6개월 전에 지원을 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정말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었고, 당시 토익점수로도 지원 가능했고, 최선의 선택은 말레이시아였다. 그렇게 2012년 7월 말레이시아로 교환학생에 가게 되었다. 당시, 동남아시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나라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한국보다 발전이 늦은 말레이시아로 가는 나를 많은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하지만,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꼽으라면 말레이사 아를 뽑을 만큼, 천국 같은 시간이었다. 매일 한 시간씩 듣던 영어 회화 수업은 말레이시아에서 수많은 외국인을 만나며, 절정에 이르렀고, 한국 밖의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몸소 느꼈다. 영어로 듣는 수업들은 낯설고 어려웠지만,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환경들은 신기하고, 설레기만 했다. 내가 있었던 곳은 페낭이라는 섬이었었는데, 휴양지인만큼 평화롭고, 한적했다.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떨어지는 데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말레이시아에서의 6개월은 너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고,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연장하고 싶을 만큼 떠나고 싶지가 않았다. 엄마한테 조금만 더 있으면 안 되냐고 때를 쓸 만큼 말레이시아를 떠나고 싶지가 않았었다. 하지만, 겨울방학 은행 인턴십과 교직이수는 날 한국으로 가게 만들었고, 꿈만 같은 삶을 떠나, 현실로 돌아왔다. 말레이시아에서의 영어 사용은 영어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키워주었고, 한국에 돌아와서 "영어실력을 유지"하기 위해 나는 영어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다. 덕분에 토익 900점대에 이르게 해 줬고, 영어 스피킹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게 해 주었다. 수많은 영어 관련 활동, 국제회의에 참여할 수 있는 원동력을 마련해주었고, 해외인턴십 등 많은 기회를 누릴 수 있었으며, 머나먼 땅 미국까지 이끌어주었다고 생각한다. 





쉽게 마음만 먹으면 다시 갈 수 있을 줄 알았던 말레이시아를 난 그때 이후로 갈 수 없었다. 봉사활동, 인턴십, 해외 프로그램 등 수많은 이유로 옆 나라들을 갈 때, 말레이시아를 지나칠 뿐이었다. 지금 말레이시아는 내가 사는 곳에서 지구 반대편이며, 더더욱 머나먼 나라가 되어버렸다. 3링깃의 나시고랭, 1링깃의 로티도 그립다. 무엇보다 그리운 것은 그때의 나의 청춘, 천진난만한 용기와 자유가 아니었을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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