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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계란 Jun 03. 2019

04. 우연과 우연을 거듭하여

수많은 탈락을 맛보았지만, 결코 아프거나 슬프지는 않았다. 만 23살인 나의 나이는 어렸었고, 더 좋은 회사, 기업에 들어가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 조급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2015년 2월 대학을 졸업하고, 내게는 서울대학교 에너지자원연구소에서 회사 직원으로 자원 개발 관련 교육 프로그램에 4개월 동안 참여라는 길이 주어졌었다. 그곳에서 듣는 지질학은 생각보다 너무 재밌었고, 포항, 대전, 통영, 인천, 제주도, 미얀마 양곤으로 가는 현장도 너무 즐거웠다. 같이 교육받는 언니들도 너무 좋은 분들이셔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연락을 주고받는다. 언니들, 오빠들이 해주는 삶의 조언도 많이 받고, 좋은 사람들을 너무 많이 받아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종종 4개월 후의 일을 걱정하며, 시험과 면접을 보러 다녔었다. Plan B로 마련해두었던 교원자격증이 있어서 교육 쪽도 많이 썼었고, 지질학 관련 회사도 많이 지원했었다. 

                      


                                                                                                                                          


그러던 중, 5월 말 목요일 밤이었다. 컴퓨터를 만지다가, 교육부와 한국 연구재단에서 수학 혹은 과학 교사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을 미국에 보내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와!! 이런 것도 있구나. 사범대만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또 마침 이 프로그램은 내가 이 공고를 본 날 오후 4시까지 이미 마감되었다. 당시 대전을 며칠 동안 다녀와서 정신이 없었었고, 그렇게 잊혔다. 왜였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일요일 밤에 아주 우연히(아마 켜고 끄지 않았던 것 같다) 이 공고 홈페이지를 다시 들어오게 되었고, 월요일 아침 10시까지 연장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 그래"마음은 이랬지만, 출퇴근 시간이 2시간 넘게 걸렸던 나는 잠들었고, 똑같이 월요일 아침 서울대로 출근했다. 9시쯤, 교육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연장된 공고"가 머리를 맴돌았고, 나의 모든 이력서가 들어있던 USB를 들고 컴퓨터가 많은 카페로 달려갔다. 그리고, 부랴부랴 지원을 했다. 정말 신기하게도 교육 분야, 외국 가는 프로그램을 많이 참여해서 지원서가 내가 그동안 써놓았던 것과 비슷했고, 9시 59분에 73번째로 지원을 마쳤다. 제출하고 나서 그 아찔함. 뭔가 희망을 갖지는 않았지만, 좋은 일이 생길 것 만 같았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가, 1차 면접 연락을 받았다. 당시 하고 있었던 일이 많아서, 안 가려고 했었는데, 지원하게 된 배경이 너무 신기하고, 서울역(내가 살고 있던 곳과 서울대의 중간) 이어서 가봤는데, 4명 조별 면접이었다. 너무 쟁쟁한 사람들이 많아서 긴장을 많이 했지만 회사 면접을 많이 보러 다닌 보람이 있었다. 며칠 뒤, 2차 면접 연락을 받았다. 2차 면접은 미국에 있는 교수님들과 화상 면접이었고, 수업시연을 간략하게 준비하는 것이었다. 2차 면접이 대전이었으면 못 갈뻔했는데(당시 단체로 지방 출장 가는 날이었다.) 다행히 서울역이어서 점심시간에 잠깐 다녀올 수 있었다. 그렇게 정말 모든 게 내 편의에 맞춘 듯이 딱딱 잘 되었고, 나는 20명 안에 들게 되었다. 알고 보니, 오래전부터 이 프로그램을 지원한 사람들이 엄청 많았고, 나처럼 생각 없이 아주 우연하게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시 아부다비 석유대학 유학을 지원할 예정이었었고, 중앙대에서 했던 국제기구에 인턴십을 보내주는 환경 관련 교육을 받고 있었던 상태라 많은 고민을 했었다. 수십 년 전, 미국 이민을 꿈꾸셨던 아빠의 추천과,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대륙이라는 신기함에 내 선택은 미국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꿈꿨던 것과 달리, 단 한 번도 미국 교환학생, 미국 인턴십, 미국 여행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내게 미국은 참 멀고, 머나먼 곳이었다. 난 그렇게 2015년 8월 21일 20명 중 한 명으로 미국에 왔다. 뉴욕이 어딘지, LA가 어딘지도 모르는 지식으로 아주아주 생각 없이. 미국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말이다. 우연히, 가지게 된 좋은 기회에 신기에 하며, 10개월 과정인 이 프로그램을 교환학생 갔던 심정으로, 인턴십 갔던 마음으로 똑같이 왔다. 10개월은 금방 지나갈 것만 같았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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