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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계란 Jun 04. 2019

05. 혼자 있는 시간


8월 21일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깜깜한 금요일 밤이었다. 나리타 공항에서의 환승시간이 갑자기 길어지는 바람에 예상보다 더 늦게 도착했다. 공항에는 Program Director인 K 박사님께서 나와계셨다. 그리고 큰 버스를 타고, 대학 기숙사로 갔다. 어두 깜깜한 밖, 쌩쌩 달리는 버스 안에 있었던 나는 미국에 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없었다. 토요일, 일요일은 기숙사 주변을 걸어서 돌아다녔다. 뭔가 낯선 곳이어서 혼자 못 다니고 몰려다녔다. Grocery shopping으로 한인마트와 Walmart에 갔다. 얼마나 넓고 크던지, 설렘이 가득가득했다. 돌아오는 주에는 영어 인터뷰를 봤고, 간단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그리고 8월 31일부터 일정이 시작되었다. 오전에는 영어수업을 들었고, 오후에는 writing, 영어수업, 봉사활동을 이렇게 번갈아가며 보냈다. 밤에는 Praxis 관련 수업을 했다. 금요일에는  뉴욕의 여러 명소를 가고, 구경하는 날이었다. 처음 며칠은 뉴욕이 신기해서, 금, 토, 일삼을 연속 뉴욕에 나갔다. 기숙사에서 뉴욕은 버스로 2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곧바로 9월부터는 P라는 시험을 준비했다. 과학교사자격증을 가지기 위해서는 General Science와 전공인 Earth Science 두 개를 봐야 했기 때문에 엄청 부담되었다. 지구과학은 천문학, 해양학, 대기과학, 지질학 4가지로 구성되어 있어서, 공부하기가 너무 벅찼었다. 그뿐만 아니라 생물, 화학, 물리는 머리가 터질 거 같았다. 한국말이 아닌, 영어 용어는 생소했고, 인강, 스터디그룹 등도 하며 새벽까지 공부하다 잠들었다. 11월 2일에는 전공시험, 11월 4일은 공통과학 시험을 접수해두었다.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스트레스는 쌓여만 갔고, 걱정이 되었다. 혹시 나만 떨어지면 그건 무슨 창피일까 하면서 말이다. 




9월 중순쯤, 뉴욕에서 "세바시"강연이 있었다. 그때, 가수 이소은 님의 강연을 듣게 되었고, 그 뒤로 "세바시" "스타특강쇼" "TED"등 좋은 강연을 들으며 많은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 사실은, 마음을 나눌 친구 한 명 없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날 외롭게 만들었다. 개인주의인 내게 모든 것을 함께 해야 하는 스무 명의 그룹 생활은 너무 힘들고 낯설고 어려웠다. 전혀 다른 시차에 있는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자꾸 반복되니 너무 미안했다. 대신 엄청난 많은 책을 읽었다. E-book으로 구할 수 없는 책은 비싸도 알라딘 USA를 통해 배송되었고, 정말 읽고 싶은 책은 엄마한테 부탁하기도 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혼자 있는 시간의 힘" "미움받을 용기" "김미경의 인생이 답"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나는 상처 받지 않기로 했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 등 어쩔 때는 매일 한 권씩 읽었다. 책이 친구였다. 기숙사에는 Lounge가 있었는데, 내가 가장 좋아했던 장소이다. 거의 그곳에서 밤을 새우다시피 살았다. 그곳에서 책 읽는 것, 미드 보는 게 너무 좋았다. 침대가 있는 방안보다 라운지가 좋았고, 도서관과 기숙사만을 반복했다. 라운지에서 새벽 2~3시는 기본이었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도 라운지에 갔다. 라운지에서 밥 먹는 것도 행복했고, 아무도 없는 라운지에서 나 혼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 좋아하지 않는 초콜릿과 커피를 마시고 또 마시며, 해도 끝이 없는 과학 공부를 계속했다. 진심으로 말할 수 있다. 내 삶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했던 때라고. 시험 전날, 같이 공부하던 언니한테 말했다. "떨어지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다시 공부한다고 해도 이렇게 열심히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후회는 없어요." 다행히 나는 두 개다 합격을 했고, 그 뒤로는 시험의 부담감은 떨칠 수 있었다.                    

                                                                                                                                      




시험이 끝나고부터가 더 힘들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아는 대로 아는 사이가 되어서였을까, 편한 사이가 되어서였을까.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고, 다른 삶을 살았던 20명이 함께 살기가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개인적으로 기숙사 생활을 "내게는" 끔찍했다. 미국 생활 중에서 가장 싫을 만큼 최악이었다. 나의 개인 공간은 허락되지 않았고, 개인 삶은 꿈에도 꿀 수 없었으니까. 서너 달 동안 참고 참고 또 참던 것들이 터지기 시작했고, 심리상담 센터에서 스트레스 상담을 받아야 할 만큼 상황이 악화되었다. 계속 눈물이 나고, 또 났다. 이렇게 살 거라면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수백 번 생각했다. 하루빨리 2016년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나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는 홈스테이 생활을 바라고 또 바랬다. 12월 중에는 상태가 많이 심각해져서 거의 매일 상담을 받으러 갔다. 상담사가 물었다. "Do you want to kill yourself?" 나는 "Never. I love myself a lot. I will never kill myself in any situation. It would be better kill others." 그 상담사는 나의 대답에 엄청 놀랐었다. 내가 많이 울어서 혹여 자살을 시도하면 어쩔까 걱정되었던 것 같은데, 어렸을 때부터 내 가치관은 "살인을 하면 했지, 자살을 하지는 않는다."처럼 자기애가 강했다. 따라서 더 이상 심리상담을 받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12월 23일쯤,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다만 수업을 들어도 되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어서 행복했다. 그리고 또, 룸메이트가 여행을 가서 10일 동안 방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도 너무 좋았다. 그때, 핫요가를 만났다. 처음에는 한 번만 가보자는 생각에 한 번만 갔고, 괜찮아서 일주일권을 끊었고, 마음에 들어서, 한 달 권을 그리고 나서는 무제한 패키지를 등록했다. 그때 만난 요가가 나를 살렸고, 나의 전부가 되었다. 그때, 요가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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