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18일, 미팅에 갔을 때, 프로그램을 총괄하던 K 박사님은 "직장은 누구도 찾아주지 않는다."라고 하셨다. 참 와 닿는 말이었다. 2014년 후반기부터 취업 준비를 위해 많은 회사에 공채를 지원하고, 직장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했던 내게 취업 준비는 결국 모두 나의 몫이라는 것을 너무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었다. 그 미팅 후, 누군가는 열심히 레쥬메와 커버레터를 준비하여, 학교에 선생님이 되기 위해 지원하고 또 지원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당시 난, 아이엘츠 시험이 4월 초에 있었고, 원하는 아이엘츠 점수가 먼저였다. 그렇게 아이엘츠 시험 후, 뒤늦게 나도 미국에서 선생님을 하기 위한 레쥬메와 커버레터를 준비했다. Writing Center도 가고, 여러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온라인 교정도 받고, 적어도 수백 번 고치고 또 고치며, 한 학교에 처음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취업 준비를 하는 내내,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레쥬메와 커버레터를 고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누군가는 이미 잡 오퍼를 받았음에도 여유롭게 4월 중순에 있던 일주일 방학 동안 보스턴에 갈 버스표와 숙소를 예약했다.
오래전부터 꼭 가고 싶었던 하버드와 MIT가 있는 보스턴에 갈 기대에 엄청 들떠있었던 그때, 계속 같이 미국에 온 한 사람들이 하나 둘 학교로부터 계약서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머리를 쾅 한대 박은 것처럼 "아차" 싶었다. 난 아직 지원도 안 해보고, 인터뷰도 안 가봤는데, 그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렇게 보스턴에 가기 하루 전, 처음으로 브롱스에 있는 차터스쿨에서 인터뷰를 봤다. 나름대로 준비를 해갔지만, 들어가자마자, "오! 이곳이야"하며 이곳에서 꼭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인터뷰 후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첫 번째 인터뷰 후, 데모 레슨을 해야 가능성이 있는데, 깜깜무소식이었다. 보스턴으로 향하는 버스는 탔지만, 나는 버스를 탔던 4시간 동안, 레쥬메와 커버레터를 지원하기 급급했고, 몸은 보스턴에 있었지만, 마음은 잡서칭과 인터뷰 준비에 있었던 듯싶다. MIT, 하버드, 퀸시 마켓, 미술관 등 보스턴은 정말 유럽풍 하고 아름다웠지만, 나는 보스턴을 즐길 준비를 하지 못했었고,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만큼 급했고, 초조했다. 보스턴에서 지원을 여럿 한 덕분에 다행히 몇몇 연락을 받았다. 두 번째 간 학교는 집에서 20마일쯤 떨어진 가톨릭 학교였다.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고, 걸어서 그 학교에 들어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너무 예쁘고 좋았다. 꼭 여기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역시나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그 후, 한두 명씩 계약서를 받고, 취업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더 초조해지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나만 안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나를 압박했고, 잠도 거의 자지 못하고 자더라도 꼭 불을 켜고 잤다. 한국에서 취업 준비하던 때가 생각났다. 내가 도움을 많이 받았던 선생님께서 "500개를 지원해서 안되면 그때 포기하자."라고 하셨고, 500개 지원을 목표로 연락이 오지 않던, 떨어졌다는 연락이 오던 무심할 만큼 양으로 승부보기 시작했다. 기차를 3번씩 갈아타고 면접에 가기도 하고, 한 시간 넘게 걸어서 면접에 가기도 하고, 내가 사는 주 전역을 곳곳을 면접 다녔다. 어떤 곳은 페리를 타고 가야 하는 곳도 있었을 만큼 처음 들어보는 지역이 많았다. 엄청 오래 걸려서 갔는데, 막상 면접이 5분도 안되어 너무 짧게 끝날 때면 허무하기도 했다. 브루클린, 할렘, 브롱스 등 뉴욕 곳곳도 참 많이 다녔다. 막상 뉴욕에 왔는데, 현실은 인터뷰 후 다음 인터뷰를 위해 빨리 돌아가야 했었다. 전화 인터뷰도 수십 번 봤다. 그렇게 4월을 불태운지도 한 달이 되었다. 내 분야는 Earth science였는데, SAT와 AP 과목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요가 거의 없었다. General science만으로는 한계가 있자,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초조해졌고, 내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도 지원하기 시작했다. Math, Elementary, Biology, Physics, Chemistry, Engineering, Korean 등 가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 5월이 되어 T 지역의 차터스쿨에 Engineering 교사 인터뷰를 보러 갔다. 같은 프로그램의 언니가 수학교사로 계약서를 받았기 때문에, 나도 계약서를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고, 조언도 많이 받아서 기차 타고, 버스 타고, 3시간 넘게 걸려 학교에 도착했다. 그런데 웬걸, 인터뷰를 보기로 했던 교장선생님이 갑자기 일이 생기는 바람에 슈퍼바이저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내가 지금까지 만난 인터뷰어 중 가장 까다롭고 날카로웠다. 그렇게 기대했던 학교는 날아갔구나 생각하고 2주가 흘렀다. 왜 나는 안되었을까 하는 자괴감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때, 교장선생님께서 다시 한번 와보라고 기적 같은 연락을 주었다. 그렇게 나는 왕복 6시간의 길을 다시 갔고, 교장선생님은 내게 스마트하다는 말과 함께 일주일 후의 데모 레슨의 기회를 주었다. 처음 해보는 데모 레슨이었기 때문에 부담이 컸다. 프랙티컴을 하는 동안 호스트 선생님의 수업만 봐왔기 때문에, 직접 수업을 하는 것은 겁이 났다. 플랜을 만들고, 수업자료를 만들고, 학습지를 만들고 열심히 준비해서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T에 갔다. 그런데 부유한 곳에서 실습을 하던 내게 그곳의 학교시설은 낙후했고, 학생들은 내가 말하는 동안 핸드폰을 사용했고, 학교에는 벨 시스템도 없었다. "아, 망했구나." 그렇게 거의 울면서 밖을 나왔고, 또다시 계속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