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성보다 무서운 것은 소통의 실패
이쯤에서 탈진실 시대의 커뮤니케이션을 논할 때면 항상 거론되는 영화 <돈룩업 (Don't Look UP)>을 살펴보겠습니다. <돈룩업>은 단순한 재난 코미디를 넘어 정치, 경제, 언론, 그리고 대중까지, 현대 사회 전반을 휩싸고 있는 부조리들을 날카로운 풍자와 유머로 해부하는 사회 비평적 성격이 강한 영화입니다. 영화의 스토리를 따라서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인사이트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돈룩업>의 감독은 미국의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프로듀서인 아담 맥케이로 정치적 풍자와 사회 비판을 재치 있게 풀어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2008년 금융 위기를 다룬 <빅 쇼트>(2015)는 복잡한 경제 문제를 흥미롭게 풀어내며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했습니다. 2018년에는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의 이야기를 다룬 <바이스>를 통해 권력의 부패와 이면을 날카롭게 풍자했습니다.
2021년 <돈룩업>에서는 혜성 충돌이라는 인류 멸망급 재앙을 앞두고도 정치, 언론, 대중이 진실을 외면하고 각자의 이득에 따라 움직이는 세태를 날카롭게 풍자합니다. 이 영화를 통해 지금까지 살펴본 가짜뉴스, 탈진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결과를 유발하는지 등 오늘날의 커뮤니케이션 실태와 그 변화를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설명을 위해 영화의 내용을 부득이하게 소개해야 하므로 아직 관람하지 않으신 분들은 스포일러에 유의해 주십시오. 영화는 넷플릭스에서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아직 못 보신 분들은 이번 주말 꼭 한번 관람하시길 추천드립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영화의 시작은 미시간 주립대학교의 천문학 박사 과정생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와 그녀의 지도교수 랜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지구를 멸망시킬 거대 혜성을 발견하는 충격적인 사실에서 비롯됩니다. 이들은 과학적으로 99.7%의 충돌 가능성을 확신하며, 백악관을 찾아가 대통령(메링 스트립)에게 인류의 멸망이 임박했음을 경고하려 하죠.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할리우드 재난영화의 시작과 유사합니다. 대부분의 재난영화는 이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담 팀을 구성하고 그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죠.
하지만 <돈룩업>은 다른 전개를 보여줍니다. 케이트와 민디 박사는 첫날 대통령을 만나지도 못하고 하염없이 대기만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그들이 마주한 것은 놀라움과 위기의식이 아닌, 무관심과 정치적 무능이었습니다. 제이니 올린 대통령과 그의 아들이자 비서실장인 제이슨 올린(조나 힐)은 중간선거와 대법관 임명이라는 당장의 정치적 이해관계에만 골몰하며 이 인류 절멸의 위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객관적 사실이면 통한다고 생각했던 케이트와 민디 박사는 자신들이 발견한 엄청난 진실을 알리기 위해 이제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으로 발을 들여놓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시도는 처참하게 실패하죠. 영화는 이 과정을 통해 오늘날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에 깊은 통찰을 제시합니다.
1. 탈진실 시대에는 객관적 진실만으로 부족합니다.
케이트와 민디 박사가 99.7%라는 압도적인 과학적 근거를 들고 가도 백악관의 그 누구도 진지하게 듣지 않는 것처럼, 오늘날 브랜드들도 비슷한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 제품이 가장 좋다"는 객관적 데이터를 아무리 제시해도 소비자들이 쉽게 믿어주지 않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한 스마트폰 브랜드가 "배터리 지속시간 20% 향상"이라는 팩트를 광고하더라도, 소비자들은 "또 광고 문구네", "실제로는 별로 차이 없을 거야"라고 반응합니다. 진실보다는 개인의 경험과 감정, 그리고 이미 형성된 브랜드 이미지가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현실입니다.
브랜드는 이제 팩트를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그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맥락과 감정적 연결고리를 함께 제공해야 합니다.
2.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짜 위기를 감지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매년 종말 관련해서 하는 회의가 몇 번일 것 같아요?"
케이트와 민디 박사의 지구 멸망 관련 정보를 다 듣고 난 후 나온 대통령의 반응입니다. 너무 많은 정보에 둘러싸여 진짜 중요하고 긴급한 위기 신호를 놓치고 있는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 결과 대통령이 혜성 충돌보다 중간선거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처럼, 우리도 수많은 정보 속에서 정말 중요한 메시지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브랜드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장의 작은 변화나 소비자 불만의 신호를 놓치다가 큰 위기를 맞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중요한 것은 노이즈 속에서 진짜 시그널을 구분하는 능력입니다. 브랜드는 소비자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시장에서 일어나는 진짜 변화가 무엇인지 민감하게 포착해야 합니다.
3. 진실을 전달하는 '메신저'의 신뢰도가 메시지보다 더 중요합니다.
영화에서 민디 박사와 케이트는 백악관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데, 그들이 '하버드나 MIT' 출신이 아니라 미시간 주립대학교 소속이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언급됩니다. 객관적인 과학적 증거보다 발신자의 '명성'과 '스타 파워'가 먼저 평가되는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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