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박사의 메릴랜드 일기 51
어쩌다 미국에서 한글학교 교사가 된 나는 가을학기를 무사히 마쳤다. 9월 9일부터 시작한 학기가 12월 9일 마무리가 된 것이다. 뭐 이리 시간이 빨리 가는지, 간단한 소회를 남겨보고자 한다.
교사 오리엔테이션에 간 날, 내가 경험이 없으니 그냥 맡겨 주시는 반으로 지도해 보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래서 가장 나이가 많은 6, 9, 10학년이 있는 반으로 배정이 되었다. 아주 어린아이들보다는 어느 정도 한국말을 잘하는 아이들이 더 쉬울 것 같아서 그 반을 맡기로 했다.
첫날은 기본적은 단어 시험과 높임말 시험을 보았다. 생각보다 어려워하는 것을 보고 앞으로 가르칠 것이 많겠구나. 생각했다. 뭔가 열의에 가득한 나는 이런저런 수업 자료를 급하게 수집하느라 분주하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뭔가 단계적이고 체계적으로 준비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나 스스로 이번 학기는 30점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다. 고등학생들의 바쁜 스케줄도 한몫했지만, 뭔가 지속적으로 복습과 예습이 이어지는 수업을 하지 못했다.
*아이들 드롭 및 픽업하느라 고생하신 학부모들과 함께 기념사진
내가 스스로에게 형편없는 점수를 준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처음에 학생들의 수준을 알아보고자, 초등학생 교재의 단어를 학년별로 알아보는 시간을 갖었지만, 단어의 알고 모름으로만 갖고는 한글 공부의 수준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또한 처음부터 나의 목표는 학생들의 글쓰기의 능력을 향상해 보고자 마음을 먹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초등학교 1학년한테 작문 연습을 시킨 격이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네 가지 언어 영역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를 나눠서 수업 내용을 쪼개고 또 쪼개는 방식으로 커리큘럼을 짜지 못한 것이 실패의 원인인 것 같다.
*우리 막둥이는 가운데에서 노래하고 큰딸은 우쿨렐레를 켜고 있다.
오늘 종강식을 하면서 13주가량의 학습 계획서를 제출하고 왔다. 이것을 작성하면서 이게 아닌데, 속으로 부끄러웠다. 뭔가 제대로 하지 못한 아쉬움과 그 아이들이 한글 공부를 멀리하면 안 되는데 이런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우리 학생 중에 고등학생 4명은 오늘 결석을 했다. 각 반 별로 장기자랑을 준비해야 하는데, 급하게 지난주에 결정하느라 애국가 1절과 2절을 부르기로 했다. 반주로 나온 박자와 아이들이 연습한 박자가 달라서 아주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된 기분이다.
*다 같이 모여서 피자를 먹고 다음 학기를 기약하며 이별
세상에 쉬운 일을 없다는 게 딱 들어맞는 것 같다. 오랫동안 글쓰기 (과학 논문, 과학 저널에 연재)를 많이 해왔다고 생각하고 미국에서 한글교사하는 것을 아주 식은 죽 먹기로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워진다.
하지만 내가 또 누구인가, 후회는 짧게, 앞으로의 내가 지향해야 할 일들을 미리미리 준비해나가는 자세를 갖고 있는 사람 아닌가... 내년 2월 봄학기에는 나도 만족스럽고, 학생들도 만족스러울만한 콘텐츠를 준비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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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의 한 꼭지(짧은 글)를 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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