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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댐민 Jan 23. 2021

커피가 아니라 입장권을 파는 카페, 식물관 PH

프레임을 바꾼 카페

2020.10.11 

친구의 결혼식이 수서역 근처에 있어, 언젠간 가보려 했던 식물관 PH에 다녀왔다. 인스타 덕에 찾아간 이 곳은 아파트 단지 사이에 위치한 온실 같은 공간이었다. 난 사실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들을 얄미워하면서 어떤 수를 썼는지 궁금해 찾아다니는 편이다.  

또 하나의 그런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들어간 이 곳에선 커피 메뉴에 따라 값을 지불하는 것이 아닌, 입장료 13,000원을 지불해야 했다.  

커피값으론 꽤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공간 안에서 열리는 전시들을 관람할 수 있다는 말에 어느 정도 수긍했다. 사실 바로 그 지점이 카페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의 경험 프레임을 바꾸는 것이었다. '복합문화공간'을 내세우며 운영 중인 카페들은 대부분 8~9천 원대의 비싼 음료값과 함께 약간의 볼거리들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에게는 어디까지나 비싼 카페로 느껴질 뿐이었다. 그런 카페들과는 다르게 식물관 PH는 처음부터 미술관, 갤러리를 표방했다. 3개의 기획전시를 관람하기 위한 입장권을 구매할 때, 무료로 음료를 제공한다.  

이런 전략은 이 공간을 찾는 소비자들에게 당신은 전시를 감상하러 온 관람객이고, 우리는 맛있는 음료를 서비스로 제공한다는 뉘앙스로 소비자들을 교양있는 갤러리 손님으로 탈바꿈하는 프레임을 취한다.   






우선 1층의 온실 공간은 누구나 좋아하는 햇빛, 식물, 유리로 구성된 널찍한 공간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진을 찍게 만들기 때문에 이벤트에 따라 다양하게 공간을 구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며칠 뒤 유퀴즈온더블럭 공유 에피소드의 촬영 장소로 쓰이더라.) 적은 수의 테이블과 굿즈 판매대는 마냥 그 공간을 온실처럼만 느껴지지 않게 했다. 또 유리 선반에 진열한 금속공예 전시는 과하지 않게 잘 어울렸다.  



그리고 2층은 본격적인 카페의 테이블로 구성된 층으로 1층을 내려다볼 수 있고, 1층에선 느끼지 못했던 높은 층고의 개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너무 차가운 느낌을 내는 스틸 소재로 이루어진 가구들이 다소 이질적이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3층에선 플랜테리어 공간을 연출하는 슬로우파마씨의 전시가 이어졌는데, 카페를 즐기는 이들의 취향을 아주 잘 공략한 일본식 정원과 함께 회전초밥처럼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위 정원 소품, 미니 정원 가꾸기 체험까지 참 영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올라오는 계단의 창 바로 앞으로 보이는 어느 분의 묘를 보고선 아주 정교하게 사용자 경험을 고려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은 했다.)   


그리고 이어진 4층의 전시는 누구나 들으면 알 법한 예술가들의 포스터 전시가 이어졌는데, 사실 사진전이기 때문에 전시로서의 가치보다는 친절히 마련된 포토존과 함께 그 공간 자체가 전시보다는 포토존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싼 입장료 덕분에 여느 카페들처럼 줄서서 기다리는 정도의 난잡함 없이 여유를 유지하고, 전시 공간이 필요한 이들에게 전시관을 내어줌으로써 대관료도 챙길 수 있도록 영리하게 경험을 설계한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식물관이라는 이름답지 않게 공간의 소재 곳곳에서 차가움이 느껴지는 것에 대해서는 신경 써야 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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