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없는 지혜를 향하여
신을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몇몇 종교인은 진심으로 존경한다. 법정 스님이나 가수 션이 그러한 경우다. 그들의 삶의 태도와 행보를 보고 있으면, 종교가 말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이 오늘날에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앞으로도 종교를 가질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불교가 말하는 ‘자비’나 기독교가 말하는 ‘사랑’처럼 종교가 지향하는 고결한 가치들은, 종교에 대한 믿음과 무관하게 우리의 삶과 사회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던지고 싶은 질문은 이것이다.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우리는 어떻게 그런 가치들을 배우고, 삶 속에 내재화할 수 있을까.
알랭 드 보통의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는 전제한다. 우리가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철저한 무신론자로 남아 있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종교가 유용하고, 흥미롭고, 위안이 된다는 사실을 때때로 발견할 수 있다고. 또한 종교의 관념과 실천 가운데 일부를 세속적인 영역으로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 역시 흥미롭다고 밝힌다.
그리고 덧붙인다. 우리는 한편으로 기독교의 삼위일체설(Trinity)이나 불교의 팔정도(八正道) 같은 교리에 냉담하면서도, 또 한편으로 여러 종교가 설교를 행하고, 도덕을 장려하고, 공동체 정신을 일으키고, 미술과 건축을 선용하고, 여행에 영감을 주고, 정신을 훈련시키고, 봄의 아름다움에 감사하는 일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즉, 종교에서 교리를 제외한 지혜를 선별적으로 습득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책은 말한다.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교리 없는 지혜’란 신의 존재나 초월적 진리를 믿지 않더라도, 종교가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삶의 기술과 정서적 훈련을 세속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다. 그것은 믿음의 문제라기보다 인간의 나약함을 전제로 한 실천의 문제이며, 도덕을 명령이 아니라 반복과 교육의 산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종교를 거부하면서도 종교를 닮은 태도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교리 없는 지혜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외부에서 주어진 절대 기준에 의존하지 않는다. 옳고 그름을 정답처럼 암기하지 않는다. 대신 상황·맥락·관계 속에서 스스로 판단한다. 가치의 출처를 전통이나 권위가 아니라 자기 성찰에 둔다.
교리 없는 지혜에 관한 통찰은 니체의 사유와도 맞닿아 있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신이 사라진 세계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는 초인(Übermensch)을 이상형으로 제시한다. 여기서 초인은 '신 없이도 스스로를 심판할 수 있는 인간'이다.
애초에 니체는 신앙 그 자체보다 교리가 인간의 사유를 대신하는 교리화를 혐오했다. 니체의 문제의식은 인간이 자신의 판단 능력을 외주화 했다는 점에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초인은 새로운 교리를 만드는 자가 아니라, 교리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성숙한 인간이다. 이는 방종이 아닌 오히려 훨씬 더 가혹한 자기 성찰과 책임을 요구한다.
결국 '교리 없는 지혜'는 니체가 말하는 초인이 도달하고자 했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나 역시 엄격한 자기 성찰과 책임 의식을 바탕으로, 신의 이름이 아니라 나 자신의 이름으로 교리 없는 지혜를 실천해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