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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래 Oct 04. 2020

첫 차의 추억 2

아들에게 첫 차를 마련해 주었다.

  차가 없을 때는 그때 상황 맞춰서 살아가게 마련이다. 맞추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차가 없는 모드에서 상황이 설정된다. 내가 살던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발령이 나면 으레 그곳에서 방을 얻어 꾸역꾸역 몇 해를 나고 다시 온다는 생각으로 간다.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곳에만 여행지가 있고, 출장을 가더라도 도착 시간과 돌아 올 시간들이 계산되어 정해진다. 

  차가 흔해지고 누구나 갖게 되면 모든 상황들은 이 조건에 맞춰진다. 직장도 출퇴근이 가능한 범위가 넓게 정해지고, 여행도 예전에 생각할 수 없었던 곳까지 확대된다. 물론 직장에서의 출장도 차로 오가는 시간 범위 내에서 정해진다. 문명이 사람 삶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킨다.   


  애틋했던 첫 차의 느낌과 추억은 나만의 감정은 아닐 것이다. 어제 아들에게 첫 차를 마련해주었다. 내가 첫 차의 느낌을 떠올리게 된 계기도 그 때문이었다. 

  내가 설레었고 기뻤고, 긴장됐던 것처럼 아들도 어제오늘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빨리 내일이 와서 떨리는 손으로 시동을 걸고 정신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를 만큼 혼란스러운 기분으로 운전을 하게 될 것이다. 

  2013년식 투싼을 선택했다. 무리하지 않는 범위내서에서 최선을 다했다. 사실 더 기다리며 아들이 스스로의 경제력으로 해결하게 하고 싶었지만 휴학을 할 정도로 일이 계속 들어오고 촬영 장비와 스텝들의 이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한강에서 촬영하고 늦은 밤 축 쳐진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안타까움을 그냥 바라만 보기엔 너무 무책임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내게 얘기하지 않는 아들 깊은 속이 더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결심했다. 내가 기대하는 우량주에 장기투자를 하기로. 일이라고 해야 알바 수준이지만 스펙 쌓고, 더 큰 일들을 하기 위한 조건을 만들어 주기 위한 투자.  


  길거리에 주차할 공간도 찾기 힘들 만큼 빼곡하게 널린 차들의 주인들은 뭘 하는 사람들일까. 차를 한 대 소유하기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이 문득 떠오르는 생각만으로도 만만치가 않음을 알 수 있다. 웬만한 수익으로는 적자 인생이기 십상이다. 

  얼른 생각나는 것만 대충 따져보자. 연초에 날아오는 자동차세를 시작으로 자동차 보험, 주기적으로 넣어야 하는 유류비, 엔진오일을 비롯한 각종 소모품 교환 등 정비, 차를 세우기 위한 주차비, 길을 달릴 때 내는 통행료, 너무 달려서 내는 과태료, 흙먼지를 뒤집어쓰면 세차를 하고, 몇 년에서 가깝게는 매년 자동차 검사도 해야 한다. 

  차가 있으면 지갑에 블랙홀이 생긴 것 마냥 들어오는 속도보다 나가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추세는 직장에 들어가면 집보다 차가 먼저다. 내가 초창기 시작이었다면 지금은 문화 수준이다. 길에 차가 가득해서 보도엔 걷는 사람이 드물다. 짧은 거리도 자동차가 데려다준다.  


  그런 돈 먹는 하마 같은 차를 아들에게 줬다. 곧 졸업하고 경제력을 갖게 되면 차에 관한 모든 것들을 다 돌려줄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밟고 올라 설 디딤돌을 괴어 주고 싶다. 번쩍번쩍한 새 차는 아니지만 계속 생기는 일감이 끊이지 않기를 바라면서. 일을 맡기는 사람 입장에서는 보면 장소나 장비의 이동과 시간의 구애를 덜 받는 등등의 이유로 아들이 하나라도 더 많은 능력을 갖은 사람으로 보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내일이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등록 업무가 시작되면 오전에 차 키를 받을 수 있겠지. 내가 첫 차에서 느꼈던 긴장 되며 설레고 기뻤던. 세상에 뭔 일이든 다 할 수 있고, 세상을 다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을 아들도 갖겠지.  

  차를 고르고 계약서에 서명하면서 본 아들의 얼굴 표정이 기억난다. 긴장한 듯 보였다. 그 긴장감은 기쁨과 기대감, 미안함이 믹싱 된 혼란에서 오는 것이었으리라. 이리저리 자금 조달을 계획하는 대화에 불쑥 끼어들어 "이자는 내가 버는 데서 내야지." 하는 말 한마디에 느껴지는 미안함과 책임감에 잘 결정했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안전하고, 즐겁게 일하다 보면 경제력이 생겨 언젠가 네 손으로 네가 원하는 좋은 차를 살 수 있지 않을까. 네겐 다 계획이 있음을 믿는다. 첫 차의 좋은 추억을 만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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