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래 Oct 04. 2020

첫 차의 추억 1

설렘과 기쁨과 긴장 속에 건네받은 열쇠

  내 첫 차는 1995년 10월쯤으로 기억된다. 차 번호는 충북 1드 2100.(이일 빵빵이라고 불러서 더 잊히지 않는 듯) 1990년식 쥐색의 현대 엑셀이었다. 뒷문은 수동으로 돌려서 내리고 올렸지만 옵션이 들어 간 앞 문은 버튼으로 올리고 내리는 자동이 유일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대학시절 자취방을 얻으면서 보증금으로 부모님께 받은 250만 원을 가지고 귀향해서 지금은 철거된 제천농고와 신백동을 잇는 고가다리 밑에 있던 신제천 중고매매상에서 구입했다.  


  서른을 한 해 남겨두고 막차처럼 얻어 탄 직장을 다니게 되었다. 하루 3번 다니는 시골에서 시내에 있는 직장까지 출근을 했고, 결혼에 대한 중압감에 친구의 중매로 여자(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됐으니 거금을 들여서라도 차를 사야만 했다. 당시 60만 원이 채 안 되는 봉급을 받으면서 차량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연애와 결혼에 필수적인 것이 차가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끔씩 삐삐로 8282가 울리는 비상소집이 되곤 했지만 실제상황보다는 훈련상황이 많았고, 통상 예고가 되어 있어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연애는 달랐다. 9시면 끊기는 버스 때문에 저녁에 출근해 학원에서 강사를 하는 여자를 만나기란 불가능했다. 그때 아내는 벌써 자주색 세피아 새 차를 몰고 다니는 내 기준의 신세대 여성이었고, 늦게 만날 때면 나를 집에 데려다주곤 했다. 아마 이게 내가 차를 사야만 하는 당위성에 젤 크게 한몫을 했던 이유였다.   


  차를 사야겠다고 맘먹었을 때 부모님께 상의를 드리지 않았다. 직장 얻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봉급도 적다며 말릴 것이 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모님도 낼 모래면 서른 살이 될 장남이 장가도 못 갔는데 연애를 하려고 차를 샀다고 하면 뭐라 못하시리라는 내 나름대로의 당당한 변명이 있었다. 

  "아들이 장가를 가려면 차가 있어야 해요"라고   


  첫 차의 열쇠를 받아 들 때는 허름한 중고차일 망정 설레고 기뻤다. 빨리 달려 보고 싶었다. 운전은 대학 졸업 후 지역신문사에 잠깐 있을 때 많이 했던 터라 문제가 없었다. 

  하루 종일 중고차 시장을 기웃거리고 망설이다 겨우 선택하고 서류 등록까지 마쳤을 때 마음은 기뻤지만 몸은 지쳤고, 날은 이미 어둑어둑해졌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운전하며 집으로 나오는 시간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세상에 뭔 일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뭐 든 다 될 것 같았다.   

  어둠이 떨어진 마당으로 들어오는 낯선 차에서 내리는 나를 보고 아버지는 의외로 놀라지도 않으면서 '차 샀어?'라며 짧고 당연하다는 듯이 평온하고 침착하게 물으셨다. 물음이라기보다는 인정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아버지도 내심 '너한테 그게 필요하지'라고 생각하고 계셨구나 하고 아전인수격으로 내 속 편하게 해석했다. 휴무인 다다음날 엄마는 흰 실타래와 북어 한 마리 그리고 막걸리를 준비해서 고사를 지냈고 힌 실타래를 목에 두른 북어는 트렁크에 보관되었다. 


  그렇게 마련한 첫 차는 결혼을 하고 첫 딸을 낳고, 아들이 태어나는 동안 우리 가족의 소중한 발이 되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봄날 장모님과 가족들을 데리고 청풍으로 벚꽃놀이 구경 갈 때 사달이 났다. 꽃놀이를 나온 차들이 붐비는 2차선 도로에서 갑자기 차가 멈췄다. 놀라고 당황스러웠지만 잠시 후 시동을 거니 걸렸고, 조금 가다가 다시 시동이 꺼졌다. 그 주기가 반복되었고, 짧아졌다. 어찌어찌해서 면 소재지까지 도착했지만 꽃놀이는 뒷전이었다. 어떻게 시내까지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먹구름처럼 가득했다. 올 때의 요령으로 몇 백 미터를 달리고 다시 여유 있는 길에 비켜서서 잠시 시동을 껐다가 가기를 반복하며 겨우 위기를 모면했다. 그 일을 두고 장모님은 꽤 오래도록 재미있게 웃으셨다. 아마 장모님도 그 차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계실 것이다. 연료 모터가 고장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2006년 6월 초순 어느 날 퇴근길에 하소동 4차선 교차로 중간에서 드디어 차가 멈췄다. 예전의 기억으로 시동을 걸려고 심폐소생술처럼 몇 번을 시도했지만 기약이 없었다. 그때 차를 길 가장자리 한쪽으로 밀어 놓고 견인차를 불렀다. 수리하러 정비소에 갔지만 차값보다 훨씬 비싼 수리비가 나온다는 소리를 듣고 더 이상 첫 인연 끈을 계속 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새로운 인연으로 새 차 트라제 XG를 구입했다.  


  소용의 가치를 다 하고 그는 폐차장으로 가서 이리저리 뜯겨 재활용의 길을 걸었으리라. 인정 많은 친구를 떠나보내는 것처럼 서운했다. 그 후 가끔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그의 쇠붙이 어느 한 조각이 녹아서 내가 두서너 번 바꾼 차 어딘가로 다시 나를 찾아왔는지도 모른다고.  

  '첫'이라는 글자가 붙은 내 차의 기억이 이처럼 오롯이 남아 있는 이유는 그 설렘과 기대 때문이리라. 아쉽게도 가지고 있으면 큰 일날 첫사랑 사진처럼 그 사진 한 장 없네. 

  당신의 첫 차는 어땠나요? 

매거진의 이전글 앞에 두고 멀리 돌아가는 어리석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