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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래 Feb 22. 2021

엥! 흉가체험?

소중한 추억이 잠자고 있는 곳입니다

  수 백 수 만년의 시간에 견주어 50년이란 촌각에 불과하지만 한 개인의 역사에서 볼 때는 짧지 않은 시간이다. 현재의 삶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다 문득 되돌아보았다면 그 시간의 의미와 소중함은 더 깊고 크지 않을까.   


  "흉가체험??" 

  가족방에 올린 사진을 본 딸의 한마디는 이랬다. 당연한 반응이다. 나도 상상이나 느낌만으로 다가갈 뿐이었으니까. 당시 두 살이었던 아내에게도 '내가 잠시 머물렀던 곳이었구나' 하는 정도였을 게다. 

  하지만 폐허로 무너진 빈 집을 바라보는 장인, 장모의 시선은 달랐을 것이다. 빈손으로 시작해 남의 집 살이를 하다 처음으로 내 집을 사서 이사했을 때의 기쁨과 설렘을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고 말할 수 있을까. 

  잡초 무성한 마당에 들어서 집을 나가는 골목을 보고서야 '이 집이 맞다. 여기가 방이고, 저기가 부엌' 이라며 덤덤히 말하는 음성 속에 가느다란 떨림이 전해졌다. 손으로 이곳저곳을 가리키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거슬러 오르는 시간과 현재처럼 다시 살아오는 추억과 감정들을 어찌 주체할 수 있겠는가.  

  빛 한점 들지 않는 캄캄한 굴속 같은 미래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단 하나였고, 삶이 유지될 수 만 있다면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이었으면 참 슬펐겠다. 그리고 그 슬픔을 슬픔으로 느낄 새도 없이 살아왔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러 마른 잎처럼 죽은 듯 잠자던 기억이 스치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 바스락하며 내 가슴에 문득 살아오면 그 기분은 어떨까. 

  젊은 날 광부가 되어 이역만리 독일에까지 가서도 광부로 기어코 살아야 했고, 다리 뻗으면 닿을 서너 평 남짓한 단칸방에 살면서 다른 방은 세를 놔 형편을 나누던 시절의 이야기. 그 당시를 살았던 세대들이 처한 환경과 상황의 차이는 있겠지만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삶의 무게였으리라.

  담장은 무너지고, 잡초 무성한 마당에서 쓸쓸히 허물어져 가는 누군가에겐 폐가가 누군가에겐 소중한 사연을 지켜고 있는 것이라면 달리 바라보게 될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며 옛이야기를 듣는 내내 그 고단했을 삶의 흔적들이 가슴에 와 닿아 먹먹했다. 당신들은 무슨 힘이 있어 지금은 생각하기 힘든 그런 시간을 견뎌 낼 수 있었을까. 지금 내게 그런 삶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규정된 속도로 차를 달리는 순간에도 앞서지 못해 안달하는 이들이 비웃듯 수없이 나를 스쳐 앞서갔다.  


  세상에 무엇 하나 사연 없는 사물은 없다. 작으면 작은대로 소중하면 소중한 대로 나름대로 사연과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다만 내가 모를 뿐이다. 핑계 없는 무덤 없고 허투루 지나는 풍경 없다.

  따스한 봄날이 시작되는 일요일 오후는 쓸쓸했고 설레었으며, 경건하고 엄숙했다. 

  지금을 살고 있는 내 시간도 어딘가에서 차곡차곡 쌓여 꾸역꾸역 발효되고 있는 것이다. 잊고 있던 추억을 찾고 돌아보는 일이 내 미래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단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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