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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래 Nov 14. 2020

'클래식'이 클래식이 되었다

다큐멘터리 같은 소재를 다 담고도 영화는 로맨스가 되었다.

  예전 영화채널에서 봤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극장에서는 보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영화 '클래식'은 2013년 1월 30일 개봉했으며 관객 1.5만여 명이 관람했다. 

  추워지기 전에 일찌감치 김장을 하자는 엄마의 성화를 받았다. 휴일 아침 시골집에 도착하니 벌써 20여 포기의 배추가 버무려지고 있었다. 지난해 보다도 더 적게 김장을 담갔다. 이 또한 변하지 않는 연 중 행사의 하나였기에 점심까지 먹고 아내와 난 청풍호가 내려다 보이는 호젓한 마당에 차를 세웠다. 준비한 보온병의 뚜껑을 열자 구수한 커피 향기가 차 안에 가득 찼고, 창 밖엔 난리 난 가을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걷기엔 좀 춥기도 하려니와 가둬 놓은 향기가 날아갈까 꼼짝도 않고 그림 같은 경치를 유리창 너머로만 감상했다. 옆자리 주차칸엔 벌써 여러 대의 차가 자리를 바꿨다. 털끝만 건드려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감정이 가득 차 올랐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기운이 부침을 계속했다. 그 기운으로 영화를 보기로 했다. 노트북을 꺼내 넷플릭스를 열었다. 모든 것들이 손 안에서 해결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을 새삼 실감했다. 


  좋은 풍경에 어울릴 영화를 검색했다. 액션, 스릴러 등등의 검색어는 지나쳤다. 왠지 풍경과 시간에 맞지 않아 감정을 오염시켜 버릴 것 같았다. 중국어 공부하는 드라마도 끌리지 않았다.  

  스치듯 지나가다 마우스의 눈이 올라앉은 곳은 '클래식'이었다. 오래된 영화였고,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지금 여기서 잘 어울릴 것만 같았다. 

  TV영화채널과는 다르게 광고도 없이 이어서 볼 수 있었다. 영화가 만들어진 때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지나온 탓이기도 하려니와 다른 영화들을 많이 섭렵했기에 대사가 어설프다고 느껴지기도 했고, 다음의 장면이나 스토리가 엷은 커튼의 가림처럼 보이기도 했다.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시대의 많은 소재와 장면들이 등장 하지만 모든 결론은 '사랑'이었다. 첫사랑의 설렘과 기다림과 그리움의 행복, 가슴 뛰는 감정은 스토리 속에 내재된 반전, 복선 등의 장치들을 무색하게  했다. 

  처음엔 소나기의 첫사랑 같은 순수함이었으며, 중반부터는 로미오와 쥴리엣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같은 느낌. 주희와 준하의 사랑과 지혜와 상민의 사랑이 그랬다. 데자뷔같이 반복되는 사랑 이야기가 지루함보다는 가슴 찡한 감동으로 전해졌다. 마치 내가 영화 속 비련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행복했고, 슬펐고, 안타까웠다.   


  영화 속에는 소나기 내리는 원두막이 나오고, 편지를 주고받는 애틋한 사랑과 캠퍼스에서 옷으로 우산을 만들어 빗속을 뛰는 모습과 복무를 위해 떠나는 열차의 이별이 나온다. 

  영화는 현실과 과거가 액자 속 이야기처럼 비극적 운명의 사랑과 인연을 운명을 만드는 행복한 사랑을 교차시킨다. 

  영화는 가끔 뜬금없는 설정으로 보는 이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결국엔 관객의 바램을 져버리지 않는다. 영화라는 장르는 관객들을 만족시키고 감동을 주기 위해 존재한다. 클래식의 주희와 준하의 사랑이 지혜와 상민으로 사랑으로 옮겨간 것처럼.  


  시간이 지나 오래된 것들이 고귀해지고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려면 사람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휑한 들판에 홀로 우뚝 선 석탑 한 조각이 애잔한 것은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클래식'은 수많은 시대의 사건들 속에서 젊은 이들의 순수한 사랑을 쏙 빼낸 이야기다. 한 떨기 살랑이는 바람에도 가을이 와장창 떨어지는 감정이 차고 넘치는 이때에 보기 딱 좋다. '클래식'은 클래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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