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에 올라 하늘을 보며
단양(丹陽) 적성(赤城)에 올랐다. 찻길에서 아득히 보이는 곳을 손가락만 가리키며 수년을 지나치기만 했다. 유명 문화유적지가 아니어서 주변에 상권이 형성된 것도 없고, 떠들썩하게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도 아니다 보니 오랜 시간만큼이나 기억에서 소외된 곳이다.
오르는 입구를 찾기도 어렵거니와 시멘트 포장길은 외길이라 내려오는 차라도 만나면 워낙 가파르고 좁아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될까 걱정이 앞선다. 게다가 중간쯤 있는 공동묘지까지 올라가면 안내가 없어 더 가야 할지 말지 망설이게 된다. 차 돌릴 곳이나 있을까 하는 막연한 걱정과 호기심만으로 조심스레 갔더니 문화재 안내문 앞에 조그만 공터가 반갑게 비어 있었다.
왼쪽 2-30m 옆엔 중앙고속도로 북단양휴게소가 있고, 그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출퇴근 길이 바로 적성을 오르는 길이었던 것이다.
성벽을 오르는 돌계단 양 옆으로 무덤들이 즐비하다. 가지런히 나무가 심긴 잘 손질된 무덤과 잡초와 칡덩굴이 휘감긴 무덤들이 대비되면서 죽어서도 이렇게 다르구나 싶다가도 죽어서 다름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가파른 듯 보여도 한 발 한 발 옮기다 보니 숨도 차지 않게 쉽게 올라졌다. 아주 천천히 뒷짐 짓고 오르는 계단의 맛이 참 좋다.
리베카 솔릿의 <걷기의 인문학>과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의 예찬> 등 요즘 걷기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다. 처음엔 하정우의 <걷는 사람 하정우>에서 시작해 관련 책들을 찾다가 운동에서부터 철학까지 사고의 깊이가 걷기에서 시작된다는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중이다. 육체의 에너지를 정신의 에너지로 바꾸는 걷기의 정의가 여기서 체험되는 듯했다.
소나무 숲을 뒤로 지고 제198호 국보 단양 신라 적성비가 누각 안에 모셔져 있다. 울타리가 멀리 처져 있어서 안에 있는 적성비 얼굴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신라가 고구려 영토를 점령한 뒤 세워진 비석으로 진흥왕 6-11년 사이(545~550년) 사이로 추정된다고 하니 그 시간은 상상만으로도 닿기 어렵다. 억겁의 시간 동안 수많은 밤과 낮 그리고 계절들을 살아냈으니 당당하고 화려할 만도 하건만 외려 겸손하고 쓸쓸하다.
소나무 숲에 솔솔 소리를 내며 솔바람이 지나간다. 박재삼 시인의 <천년의 바람>이 생각났다.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 새 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년 전의 되풀이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 일이다. / 사람아 사람아/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 탐을 내는 사람아
성벽이란 오르려는 이와 막으려는 이들의 경계를 짓는 곳인데, 허물어지고 빛바래져 욕망의 의미가 퇴색된 곳에서 솔바람소리를 듣고 있으니 시구가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시인의 눈썰미와 감성은 언제나 경이롭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심한 천년의 바람은 여지없이 불고 있으니...
홀로 성벽 위에 앉아 있으니 두 감정이 뒤섞였다. 하나는 고독한 행복감이고 다른 하나는 쓸쓸한 무상함이다.
'앞 강물 뒷 강물 연달아'(김소월 '가는 길' 중에서) 흘러 만들어 내는 구불구불 정겨운 저 푸른 남한강과 먼 산 능선의 아스라한 부드러움. 따스한 봄햇살. 맑고 푸른 하늘 아래 드넓은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밀려오는 행복을 맘속 가득 채울 수 있다. 눈이 시원해지고, 가슴이 뻥 뚫려 기분이 둥둥 떠다니는 듯했다. 주체할 수 없는 나 혼자만의 행복감.
그러다 깔고 앉은 돌 틈새에서 피어나는 작은 제비꽃 한 송이를 보면 바람 빠진 풍선처럼 기분이 착 가라앉는다. 먼 과거부터 현재를 지나 까마득한 미래까지 타임라인을 그려 보면 강물처럼 빼곡한 시간은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나와 상관없이 흘러왔고, 흘러갈 것이다. 나는 거기서 한 점도 되지 않는다. 성벽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말없이 가만히 있어왔다. 소나무 가지를 스치는 바람과 마른 풀잎 사이로 새싹을 내는 어린 쑥까지 천년 동안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시간 위에 앉아 있는 나의 존재가 무상해진다.
인터넷에 회자되는 '거지 차'같은 갈등과 차별의 논란. 이전투구식의 거짓과 정의의 싸움. 먼지 같은 욕망을 앞세우는 청맹과니 같은 어리석은 짓들은 까마득한 그 시절에도 있었을 테고, 지금까지 한 번도 예외 없이 이어져 왔을게다. 그래서 지금 내가 밟고 있는 한 줌 흙 아래 한층 한층 켜켜이 쌓여 있다.
그래서 시인은 조용히 눈을 감고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아직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달라질 건 없다. 역사는 그렇게 이어져왔고,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적성에 오른 다는 건. 낡고 헐어 버린 성벽에 기대고,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의 역사를 생각하며 그 길을 느리게 걷고, 그러다 나도 모르는 새 쓸데없이 채워진 내 몸속의 욕심들을 발견하고 부끄러워 모두 버리고, 가벼워진 새 몸에 바람과 꽃과 쑥향으로 말끔하게 휑궈 다시 행복을 채워 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