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봄! 어디서 오는 걸까
당신은 무슨 색입니까?라는 질문에 나는 쉽게 답할 수 없다. 갈색, 갈색인가? 아니 노랑과 파랑, 초록, 빨강 등등이 합쳐진 무지개 같은 색이었다가 지금은 햇살에 그을려 빛바래진, 옛 골목길에 그려진 그림 같은 색? 이리저리 고민해 봐도 자신 있게 답을 얻기는 쉽지 않다.
봄은 무슨 색일까? 머릿속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뭔가가 있지만 쉽게 표현하기는 좀 어렵다. 그래서 그냥 봄은 봄 색깔이라고 말해야겠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연두가 아닐까? 겨울이 웅크린 낙엽 밑에서 살며시 눈을 치켜뜨며 나타나는 녀석이 바로 그 녀석이니까. 높은 산등성이 등산로 옆 잔설 속에서 굳세게 피는 복수초를 생각하거나 김유정의 봄봄에 나오는 생강나무를 떠올리면 노랑이다. 아니 설중매나 동백을 떠올리면 분홍에서 붉은색으로 변하다가, 변산 바람꽃이나 목련으로 옮겨가면 흰색으로 오고 만다. 손에 잡힐 듯하던 봄의 색은 잡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느낌으로 알 수 있는 색이 있다.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보여 하찮은 듯도 하지만 아버지처럼 언제나 가장 부지런한 아침 같은 개나리와 담벼락 햇살 아래 수줍은 듯 피는 연보라 제비꽃, 키 큰 나뭇가지의 눈송이 눈물 같은 목련, 재잘재잘 참새 수다 같은 벚꽃, 향기로 퍼지는 보물주머니 같은 라일락, 민들레, 금잔디, 영산홍, 진달래. 또 무엇, 무엇, 무엇이든....... 봄은 온통 찬란한 색깔이다. 봄은 색을 주물러 세상을 칠하고 있는 아들이고, 환호하는 딸이고, 늘 어깨를 마주 기대고 있는 아내다.
봄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있는 곳이 있다. 햇살 좋고 바람 부는 이른 3월. 시멘트 보도블록을 걷다 보면 손톱보다도 작은 흙을 움켜쥐고 향기를 알 수 없는 노란 꽃을 피우는 가려린 냉이에서 오고, 지난여름 기세 좋게 높은 담장을 타고 오른 담쟁이가 후회 같은 얼굴로 메마르게 붙잡고 있는 그곳에 얼굴을 들이밀고 보면 가지 사이사이로 삐죽삐죽 나오고 있는, 울다 그친 아이 표정 같은 싹에서 봄이 오고 있다.
추위를 피해 어딘가로 달아나다 멈춰서 만나고 모이는 담장 밑 양달 진 어느 낙엽 속에서 멈춰진 것 같은 흑백의 무채색 풍경 위로 꼬물거리는 봄. 아이언 재질 같은 나뭇가지에서 가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 둘 삐져나오는 뾰루지 같은 꽃망울과 새싹들이 온통 봄 색이다.
아직 봄 색깔을 설명할 수 없다면 아직 봄을 다 보지 못한 것이고, 다 알지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