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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벽우 김영래 Mar 27. 2019

외로움은 자유다

새로운 공간에 대한 인식

  며칠 전 업무와 관련된 교육을 다녀왔다. 주로 하는 업무에 비껴서 하는 사이드 메뉴 같은 일이지만 중요하기에 외부 전문기관에서 운영하는 교육이었다. 마침 옆 동네에 근무하는 아는 직원의 이름이 있어 반갑고 안심이 되었다. 아는 얼굴이 없는 낯선 곳에서의 일주일이란 교육을 받는 일보다 어색함이 더 힘든 일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교육입교 날 보니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 집안의 애사로 불참을 했다. 이제 오십여 명의 교육생들 중에서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게 되었다. 

  일단 밥 먹는 일이 좀 어색했다. 식당에서 아무도 아는 이 없는 곳에서 혼밥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많으니 서로 짝꿍을 찾아 식사를 하는데 혼자서 먹으려니 이만저만 부자연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저 멀리 혼자 떨어지는 것은 더 그랬다. 무턱대고 낯선 이들의 틈에 끼어서 식사를 했고, 그때마다 휴대폰이 위로를 해줬다. 

  수업이 끝나고 나머지 빈 시간의 활용도 문제였다. 저녁식사를 마쳐도 6시가 겨우 넘으니 초저녁부터 잠을 잘 수도 없고, 취미활동을 하기 위해 찾은 탁구장은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무인 매점 한 귀퉁이에 습기에 쪄들고, 표지가 낡은 어느 문학사의 시 전집이 반쯤 누워서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턱대고 두 권을 꺼내어 주르륵 손으로 면을 한번 훑으니 고여있던 책 냄새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그 특유의 냄새가 내 외로움을 달래 줄 위안이 될 듯했다. 나는 숙소로 돌아와 책이 비스듬히 누워있던 모양처럼 베개와 이불을 등에 대고 누워 책장을 넘겼다. 내가 하지 생각하지 못했던 시인들의 시선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시간을 좀 보내다가 체력단련실에 가서 달리기를 하면서 스포츠 중계와 뉴스를 보았고, 다시 돌아와 씻고, 잠들기 전까지 가져 간 소설책도 읽었다. 저녁 늦게 숙소를 찾아온 합숙자에게 처음 말을 걸었다. 거의 하룻만에 대화란 걸 한 듯했다. 

  다음날도 거의 비슷했다. 그런데 셋째 날부터 어쩐지 맘이 너무 푸근하고 자유스러워지는 게 아닌가. 밥 먹고 싶을 때 밥 먹고, 쉬는 시간에 봄 햇살을 맞으며 남의 시선 의식하지 않고 여유롭게 산보하고, 가끔 수업 시간에 시집을 꺼내 놓고 낙서하듯 한편을 따라 써보고. 뛰고 싶을 때 뛰고 눕고 싶을 때 몸을 쉴 수 있으니. 이게 자유인가 싶었다. 

  업무적인 절차와 규정에 대한 자신감에 외로움을 자유로 바꾼 시간이 두배로 의미 있었다. 아마도 낯 섬에 대한 스트레스와 신경 쓰임에만 집착했다면 이런 반대적인 자유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동전의 뒷면처럼, 내가 보지 못했지만 내 뒤에 존재했던 또 다른 세상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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